위대한 개츠비

진솔한 사랑의 꿈이 주는 위로

by 프리맨

위대한 개츠비 영화를 보거나, 책을 읽고 난 후 한참 후에 떠오르는 기억은

롱아일랜드 대저택의 화려한 불빛과 파티 장면이다.

대공황을 맞기 전 20세기 초 미국의 풍요와 프라이드가 넘쳐나는 시대다.

그 가운데 위대한 개츠비가 있었고, 그는 이미 남의 부인이 되었지만

사랑했던, 그리고 늘 그리워하는 데이지에 대한 열망으로 살아간다.

그가 돈을 모은 것도, 파티를 여는 것도, 숨을 쉬는 것도 모두 데이지를

위한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바보 같지만 그런 순수한 사랑이 삶의 동력이 되고 에너지가 되어 많은 성과를

거두어 낸 것은, 어찌 보면 미국의 역사와도 같은 면이 있어서 개츠비 앞에는

위대한 이라는 수식어가 따라붙는 것 같다.


그렇지만 개츠비의 순수한 사랑은, 가장 사랑하는 데이지와 그의 남편에 의해

무고한 죽음이라는 비극으로 끝난다.

보잘것없는 환경에서 태어나 소외된 삶을 살았고

동부의 화려한 삶을 꿈꾸고 그보다 나은 환경의 데이지를 사랑했던 개츠비는

죽음마저도 명예와 존중을 지켜내지 못하고 말았다.

미국의 화려한 삶과 풍요 뒤에는 개츠비처럼 억울한 삶과 죽음을 사는 사람이

엄연히 존재하고, 과거나 현재를 통틀어 세계 어디에나 약자에 대한

부당한 대우는 계속 이어지고 있다.

약자의 가장 큰 슬픔은 억울함을 당했어도 이에 대항할 힘이나 능력이 없어

그저 견뎌내야 하는 것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 소설에서 강자로 대변되는 곳은 동부이고, 동부는 선망의 대상이다.

강자의 세계에 편입하고자 하는 욕망은, 자본주의 사상에 가장 적당한

유인이며 당근이지만, 자칫 개츠비처럼 파멸로 가는 길일 수도 있다.


이 소설은 닉이라는 화자를 통해 전개되는데, 닉의 생각과 시선이 재밌다.

아무도 돌보지 않는 개츠비의 죽음을 앞에 두고, 닉은 연민의 시선으로

그의 허물을 모두 알면서도 덮어주고 감싸주며 최대한 존중의 마음으로

개츠비를 하늘나라로 보낸다.

화려한 시대에 개츠비에게 은혜를 받은 사람 누구도

개츠비의 장례식에 나타나지 않았다.

닉도 서부에서 온 사람이고, 그는 결국 다시 고향인 서부로 돌아간다.

닉의 시선은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잘 나타낸다고 할 수 있다.


위대한 개츠비가 지금까지 세계에서 큰 사랑받는 이유는

미국이라는 나라를 가장 잘 설명하면서 인간애에 바탕을 둔 휴머니즘이

살아있기 때문이다.

부자든 부자가 아니든, 서부에 살든 동부에 살든

모든 사람은 차별 없이 존중받아야 한다.

이 원칙을 지키는 사람은 닉처럼 자신의 삶도 만족감을 키워가고

유한한 삶을 아름답게 가꾸어 나갈 수 있다.


소설을 읽으며 다시 한번 인생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게 된다.

어느 한쪽으로 지나치게 기울지 않고, 스스로를 지켜내며 산다는 것은

죽을 때까지 염두에 두어야 하는 숙제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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