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마다 오래된 관행처럼 내려오는 것들이 있다. 친목회도 그중 하나다. 경조사 때 함께 마음을 보태고, 때로는 직원 여행도 함께 가자는 취지로 생겨난 제도. 그러나 세월이 흐르면서 그 의미는 점차 옅어지고, 남들 따라서 그냥 하는 형식에 가까워진 경우가 많다.
아내는 올 학기 초에 친목회비 9만 원을 냈다. 하지만 곧 깨달았다. 자신은 직원 여행에도 가지 않고, 회식 자리에서도 따로 음식을 준비해야 하는 상황이었다는 것을. 결국 본인이 낸 돈이 남을 위한 비용으로만 쓰이고, 정작 본인은 그 어떤 혜택도 누리지 못한다는 사실이 불편하게 다가온 것이다.
그리고 아내는 결심했다. “나는 이번 학기 친목회에 가입하지 않겠습니다.” 이미 낸 9만 원을 돌려달라는 말까지 직접 건넸다. 사람들 시선이 의식되지 않았을 리 없다. 다 같이 하는 일에서 홀로 빠져나온다는 건 손쉽게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그럼에도 아내는 주저하지 않았다.
그 선택 이후 아내는 후련하다고 말했다. 남을 거스르는 게 아니라, 단지 자기답게 살기로 했을 뿐인데 그렇게 마음이 가벼워질 수 있다는 사실을 스스로 증명한 셈이다. 《미움받을 용기》라는 책에서 말하는 것처럼, 타인의 시선보다 자기 삶에 솔직해지는 용기를 몸소 보여준 것이다.
나는 지난 10년 동안 아내를 지켜봐 왔다. 어느 날 갑자기 변한 것이 아니라, 작은 선택들을 조금씩 쌓아가며 차근차근 바뀌어 왔다. 그 결과 지금의 아내는 10년 전과는 전혀 다른 사람이 되어 있었다.
결국 이번 친목회 탈퇴는 단순히 9만 원의 문제가 아니었다. 앞으로 자기 삶을 선택하는 방식에 대한 선언이었다. 남들처럼 살아야 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나, 자기다운 길을 걷겠다는 조용한 선언. 나는 그 결심이 무엇보다도 대단하고, 무엇보다도 따뜻하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