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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나, 너는 너

비교의 마음에서 존중으로

by 해피엔딩

어느 날 문득, 나는 아내에게 이렇게 말했다.
“내가 웃으면서 인사했으니까, 너도 웃으면서 인사해야지.”

말을 하고 나서도 마음 한구석이 불편했다. ‘나는 잘했으니 너도 해야 한다’는 말 속에는, 상대를 존중하기보다 내 방식대로 통제하려는 마음이 숨어 있었기 때문이다. 책을 읽고, 운동을 하고, 기름진 음식을 멀리하며, 나름대로 삶의 습관을 바꿔온 시간들이 있었다. 그 변화가 뿌듯해서, 어느 순간 ‘나는 이렇게 사니까 특별하다’는 우월감이 생겼던 것 같다. 그 우월감은 곧바로 비교가 되었고, 비교는 통제가 되었다.

그러다 문득 깨달았다. 사실 나는 그냥 나의 방식대로 최선을 다해 살고 있을 뿐이고, 아내도 아내의 방식대로 하루를 살아내고 있다는 것. 뿌듯함은 나만의 몫으로 간직하면 되는데, 굳이 그것을 들이밀며 “너도 따라와”라고 하는 순간, 존중은 사라지고 괴로움이 시작되는 것이었다.

또한, 나는 종종 동료들을 보며 질투와 불편을 느낀다. 어떤 사람은 연수에서 당당히 앞에 서 있고, 또 어떤 이는 보조 강사로 이름을 올리며 존재감을 드러낸다. 그럴 때마다 내 안에서는 “저 사람이 뭘 한다고?” 하는 시선이 올라온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친하게 지내며 속사정을 잘 아는 친구에게는 질투가 거의 없다. 그 차이는 분명하다. 알면 이해가 되고, 모르면 오해가 된다. 결국 질투는 모름에서 오는 감정이었다.

최근 아내가 읽고 있던 책에서, 인지 왜곡을 바꿀 수 있는 방법을 들려주었다. ‘재구성하려는 문장은 100% 참이어야 하고, 불편감을 확 줄여주어야 한다.’ 예컨대, “그 사람은 그냥 자기 인생을 살고 있을 뿐”이라는 말은 그럴듯하지만, 내 마음을 크게 가라앉히진 못한다. 반대로, “그 사람은 아이 둘을 키우며 빠듯한 살림을 이어가야 하기에 그렇게 한다”는 문장은 구체적이고 참이다. 그 문장을 떠올리면 신기하게도 내 불편이 눈에 띄게 줄어든다.

이 과정을 통해 배운 것이 있다.
첫째, 뿌듯함은 나만의 기쁨으로 간직하되, 그것을 타인에게 강요하지 말자.
둘째, 질투는 상대를 잘 모를 때 올라오는 감정이니, 조금 더 알기 위해 다가가 보자.
셋째, 불편한 마음이 올라올 때는 추상적인 위로보다 구체적인 사실로 스스로를 다독이자.

나는 완벽하지 않다. 여전히 질투도 하고, 우월감에 빠지기도 한다. 하지만 이런 솔직한 마음을 마주하고 성찰할 때, 오히려 더 인간적인 내가 되는 것 같다. 존중은 거창한 덕목이 아니라, 내 뿌듯함을 상대에게 억지로 씌우지 않고, 타인의 사정을 조금 더 알아주려는 작은 태도에서 시작되는 것임을 배운다.

오늘도 나는 마음속으로 다짐한다.
“나는 나대로, 너는 너대로. 그 다름을 존중하며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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