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일상에서 느껴지는 큰 기쁨
아침에 산책을 나가다 보니 공원주차장에 칼을 갈아준다 래핑이 된 차를 보게 되었다.
칼을 간다.
어떨 때 쓰는 용어인가 생각해보니,
통상 복수를 다짐할 때, '조용히 칼을 간다' 라는 의미로 많이 사용한다.
와신상담의 의미로 쓰이는 '칼을 간다' 라는 문장이,
현대 사회에서는 어떻게 쓰일 수 있을까?
내 성격이 금방 잊는 성격이라 그럴 수도 있지만, 누군가에게 복수를 해야겠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다.
어쩌면, 그럴만한 일을 겪은 적이 없다고 표현하는 것이 맞을 지 모르겠다.
반대로, 누군가 나를 겨냥해 칼을 갈고 있지는 않을까? 라는 생각을 해보게 되었다.
생각할 수록 섬뜩하지만, 이에 대한 대답은 잘 모르겠다.
모든 사람이 나와 같은 성격을 가진 것이 아니고, 나의 아무 의미 없던 말이 상대방에게는
칼처럼 꽂히며, 받은 칼을 돌려주겠다며, 조용히 칼을 갈고 있을 지도 모르니깐 말이다.
어딘가에서 날 향해 칼을 갈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 칼의 방향을 바꿔주기 바라지만,
혹시나 그 칼을 다 갈고 나서 나를 찌른다면, 겸허히 받아들여야겠다.
언제부터 갈았을 지 상상도 못하지만, 오랜 시간 복수의 칼날을 갈았다면,
그 긴 시간 칼을 간 효과를 제대로 봐야 되지 않을까?
오래도록 칼을 갈았음에도, 복수에 성공하지 못한다면, 그것만큼 안타까운 것도 없을 것 같다.
민주사회의 기본 원칙 중 하나는 사적 복수를 허용하지 않는 것이다. 사적 복수 대신 죄가 있으면,
그 범죄에 해당하는 징벌을 판사가 결정하여 선고를 한다.
그런 의미에서 봤을 때, 칼을 간다는 것이 복수를 다짐한다는 뜻으로 보기는 어렵지 않나 생각된다.
그렇다면, 현대사회에서 칼을 간다는 것은 무엇을 뜻할까?
앞서 말했던 와신상담은 현대에 와서, 복수보다는, 원하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하고 싶은 것을 참고, 노력하는 것을
의미할 때가 많다. 그렇다면 칼을 가는 것도 비슷하게 원하는 목표를 위해 나아가는 모습을 형상화 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너무 무겁게 생각을 이어 오다보니, 차를 래핑해서 칼을 갈며 돈을 버는 사장님의 모습이 떠올랐다.
요새는 집에서 칼을 갈 줄 아는 사람이 없으니, 이런 사장님도 생겨난 것이겠지만,
사장님조차 위의 와신상담처럼 무겁게 생각하며 칼을 갈지는 않을 것이다.
오히려 칼을 갈며 가족들을 먹여 살린다는 생각에 뿌듯할 것이고,
본인이 간 칼 덕분에 더 맛있는 요리가 완성되어 기뻐할 사람들을 떠올리지 않았을까?
요리를 하지 않으니, 덜 갈린 칼로 무엇인가를 짤라본 적도 없고,
잘 갈린 칼로 무엇인가를 썬다고 생각하니, 혹시나 베이지 않을까 걱정도 된다.
출장 칼갈이 사장님을 부르며 집 또는 가게의 칼을 갈려는 사람들의 모습을 떠오르니,
그 칼로 만들어질 맛있는 음식과 그것을 함께 먹을 사람들의 미소가 떠오른다.
이렇게 돌고 돌고 돌다 보니, 작은 것도 결코 작지 않을 수 있음을 느끼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