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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연 Feb 26. 2024

말질에 대처하는 나의 자세

알짜배기 사람들로만 곁에두다.


하루는 엄마로부터 전화 한통이 왔다.

오랜친구가 “딸 둘다 그렇게 되서 어떻게 ”라는 말을 듣고 기분이 상하셨다 한다.

내 동생은 어린나이에 이혼과 미혼모로 힘들게 살고 있고, 그 나마 잘살고 있다고 생각한  나마저 장애아이를 낳아 힘들게 살고 있다 생각해서 였다.

엄마는 화가 단단히 나셨다. 이젠 그 사람이랑 손절 하겠다 하셨다.  


나라도 잘 살았어야 했는데, 그런 말을 듣게한 내가 불효자 처럼 느껴지는 순간이였다.


하루는 친구로 부터 통화를 하다 내가 농담하고 웃으며 잘사는 것처럼 보였는지

 “ 너 왜 이렇게 잘살아”  정말 미친거야?

라는 소리를 들었다.


“어 그러게 ..나 정말 미쳤나봐. 왜 잘살지? ” 상처받은마음을 애써 감추며 넘어가려했다.


그 밖에 …….

남편이 결혼을 잘못했다. 너가 몸관리를 잘했어야지 …등의 말들을 들었다.


막 아이를 낳고 매일 죽음과 마주하는 순간에 축복이 아닌 이런 말을 듣고 나는 사실 많이 힘들었다.


하지만 , 시간이 지나고
그 순간을 인내하고
죽지 않고 살아남자 ,
나는 어느덧 다른사람의 말질에  기분 나빠하지 않는 아량 같은게 생겼다.


사실 그런 말들은 유리멘탈인 나에겐 밤잠도 못 이루게 했을 말들이다.

막상 되갚지도 따지지도 못하면서 , 그때 갚아 줬어야 하는데 라고 분한 마음을 품은채, 혼자 온갖 독소들로 나 스스로를 망치고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

그래서 나는 나를 지키지 위해 착각하기로 한다.


장애아이를 낳은 안타까움에 그들의 표현이 서툰것뿐, 어떻게 위로할지 몰라 단어를 잘못 선택한것 뿐 정말로 나에게 고의적으로 상처를 주기 위해 한 말은 아니였을 것이라 착각하기로 했다.


24시간 이여가는 간병인의 생활속에서 그런 말들까지 신경쓰는 것 또한 사치이다. 아이 케어에 지장이 간다. 그런 사소한 곳에 에너지를 쓸 여력이 없다.

나는 14키로 된 아이를 안고 먹이며 재우고 재활병원 매일 6시간 상주하며 아이의 치료에 에너지를 써야만 했다.

그렇게 나는 다른사람의 말질에 조금 둔해져야 했다.


그래도 그런 말을 한 사람들과는 잘 지낼수는 없었다. 조용히 거리를 두었다. 조용한 손절이 외롭지 않았단건 그 밖의 좋은사람들이 더 많았기 때문이다.

그들은 묵묵히 내가 일어날때까지 기다려 주었다. 내 말과 하소연들에 귀기울여주고, 함께 울어주기만 할뿐 말을 아끼는 사람들이였다.

그들은 내가 먹지 못할까봐 조용히 문앞에  반찬거리를 놓고 갔고 ,아이를 낳고 수십통의 위로의편지를 주었으며, 사정이 어려운 할머니들도 쌈짓돈을 꺼내 전해주셨다.


그렇게 나는 가라지는 다 겉어내고 알짜배기 사람들로 내 인간관계를 채워갔다.

알짜배기 사람들은 열손가락 안에 꼽을 만큼 적었다. 그럼에도 그런 사람 한 두사람만 있어도 인생은

제법 살만했다.


아이와 함께 엘레베이터를 타거나 공원에 산책을 나가면 쯧쯧쯧 하시는 분들이 많다. 그 역시 이젠 크게 신경쓰지 않는다. 그것 역시 안타까움이 말로 튀어나온것일뿐이라며 , 되려 그들을 이해하는 나를 발견하곤 한다.


가끔 남편이 어떤이의 말로 힘들어할때 ,

나는 “왜 그래 , 아마추어 같이 ”라며 남편을 다독여 줄때가 있다.

유리멘탈인 내가 철판이 이렇게 두꺼워진건 왜일까?

나도 모르게 생긴 짬빠에 내 자신이 대견해 보이는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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