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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ady Spider Sep 04. 2023

중국 애들은 예의가 없어.

딸 아이의 반중주의

# 글을 쓴다는 것의 책임

갑자기 원래 쓰려던 주제와는 살짝 벗어난 독백 같은 것을 해본다. 15년 경력을 단숨에 버리고 완전히 다른 세계에 입문해서 새로운 업무를 익히기 바쁜데, 1일 1글을 스스로 다짐해 놓고 지키지 못하고 있는 내 자신을 자각하게 되었다. 어느덧 추동력이 살짝 잃었을 때는 애초에 내가 왜 이 브런치 북을 쓰고 있는지를 다시금 떠올려야 한다.


나는, 지금, 내 딸이 너무나 보고 싶고, 그립기 때문이다. 그리고 내가 워킹맘이면서도 사실 /워킹 = 맘/이 아닌 /워킹 > 맘/으로 살아오면서 딸 아이가 요 근래 나에게 더 새침하고 어쩔땐 차가운 이유가 그 때문인가 싶기도 하고, 언제나 그렇듯 현재의 어떠한 상태를 고정된 결과치로 보고 어느새 또 과거를 샅샅이 뒤지고 있는 나를 발견하기도 하면서. 다시 묻게 된 것이다. 왜, 글을, 쓰고, 있나.


어제 주중대사관에서 함께 근무했었고 지금은 세종시에 계시는 지인분이 나의 새출발을 축하하고 싶다며 멀리 서울까지 올라오셨다. 우리는 추억을 더듬고, 상처를 보듬으며, 또 내일을 기약했지만 그 분이 마지막으로 해 준 부탁의 말은, "오 서기관님, 아니, 겡끼쌤, 브런치 글 계속 써주세요."였다. 그러고보니, 일종의 숙제처럼 내가 쏟아내던 회상과 오답노트가 되었든 감정배설이 되었든 하얀 바탕 위의 검은 글씨들을 누군가는 기다리고 있었다는 것.


내가 쓰는 이유, 계속 써 나가야 하 이유는 결국, 책임이었다. 내 결정과 선택에 오롯이 책임지는 것, 과거에 대한 고찰과 함께, 미래를 내다보는 행위, 글로써 소결 지으려 했던 그 발악, 그 몸부림의 흔적을 누군가는 함께 하고 있다는 것이고, 나는 그 누군가에 대한 책임이 있다는 것이다.


# 다시, 본론으로.

그래,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서. 오늘은 내 딸의 반중정서에 대해 쓰려고 한다. 나는 분명 외교부에서 차이나 스쿨이었다. 마치 노예 리스트를 벗어나려 하듯이 "난 중국어를 몰라요, 중국 업무 안했어요"하며 이른바 탈중(China Exodus)을 꿈꾸던 동료들과 달리, 나는 조직에서 차이나 스쿨이 되기를 자처했다. 외교부 안에서 보기 어려운 동료들 간의 가족 같은 끈끈함, 싸라있는 으리, 동지애, 세상 어려운 문제를 풀고 있다는 자뻑, 그리고 무엇보다 중국음식과 백주 사랑 때문이었다.


그런데 그런 엄마와는 달리, 내 딸은 중국을 좋아하지 않는다. 단순히 중국을 좋아하지 않을 뿐 아니라, 중국 음식점 안으로 들어가는 것조차 싫어하고 중국 아이들을 싫어한다. 참으로 아이러니했다. 켈리의 태몽에는 시진핑 주석 내외가 등장했었는데. 켈리가 중국을 싫어하다니. 어쩌면 이게 태몽이 아니라 2014년 7월 시진핑 주석의 한국 방문을 미리 알려주는 단순 예지몽 같은 것이었을 수도 있다. 켈리가 초등학교 2학년 때 어김없이 주말 출근 때 사무실에 데리고 나왔을 때, 국장님이 "켈리'도' 중국 좋아하니?"라고 했을 때, 켈리는 단호하게 "아니요"라고 하면서 "중국에서 미세먼지가 날아오고 중국 사람들은 한복이랑 김치를 자기네 것으로 우기기 때문"이라고 그 이유까지 분명히 밝혔었다. 너무나 똑부러진 말이기도하면서. 한편으론, 미안하기도 했다. 아, 어릴 때 중국에 있으면서 많이 다쳤었구나.


# 중국애들은 예의가 없어. 

저출산하면 한국이 강국이지만, 중국도 만만치 않다. 지금은 바뀌었지만 1자녀 정책을 오랜 기간 고수하다보니 외동 자녀가 대세가 되었다. 아이 하나에 부모님, 친 조부모, 외 조부모 해서 총 6명이 한 팀으로 붙어 전담마크한다. 중국 근무기간 동안 아파트 단지 안이나 쇼핑몰 같은 데서 흔히 볼 수 있던 풍경이기도 하다. 6명의 어른이 한 아이의 일거수 일투족을 초집중 상태로 바라보고 있는 모습들...


어느 날 켈리가 "엄마, 근데 중국애들은 정말 예의가 없어" 라고 했었을 때 그냥 무심코 유치원에서 무슨 일이 있었나? 하면서 "그렇구나~" 하고 넘어갔었는데. 그 이후 얼마 안되어서 같이 놀이터를 갔었는데, 중국 아이 한명에 늘 그렇듯 대여섯 명의 어른 사람이 달라 붙어 있었고, 다들 미끄럼틀을 타려고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었지만 그 한 아이만 계속 탈 수 있도록 어른들이 줄을 막고 있는 것을 보게 되었다. 그걸 보고 켈리는 씨익 웃으면서 "거 봐, 중국애들은 양보를 할 줄 모르잖아."라고 했다. 흠, 정말 그렇구나.


중국 외교를 담당했던 외교관으로서 나는 언젠가는 북경에서 다시 근무할 생각이 있었고, 그 때마다 켈리는 "엄마가 중국 나가면, 엄마랑 같이 가는거 신중히 검토할거야~" 라고 말했었다. 나는 피식 웃으며 "누구 딸 아니랄까바, '신중히 검토' 는 또 어디서 주워들었니?" 라고 했지만, 내심 정말로 나중에 내가 중국에 다시 발령나게 되었을 때, 켈리가 한국에 남으면 어쩌지? 하는 걱정이 들었었던 것 같다.


이제는, 그러한 고민도 끝~. 참 다행이고 마음이 가볍기도 하지만 한켠으로는 살짝 아쉽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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