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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ady Spider Aug 28. 2023

참사관님, 사랑해요!

사회생활 조기교육

# 사회생활 조기 교육


아이를 옆구리에 끼고 주말에 출근하는 것이 교육적으로 어떠한 영향을 미쳤을까? 아직 아이가 다 크지 않았으니, 결과를 알 수 없을 뿐더러, 어떠한 결과가 형성되더라도 이러한 나의 방식이 그 결과의 직접적인 원인인지 여부를 확인할 길이 없기 때문에, 사실은 잘 알 수가 없다.


내 일터에서 소위 "똥줄" 을 타며 문서를 작성하고 있는 엄마의 모습, 결재 받는 중 상사의 피드백을 받는 모습, 문서 수정과 결재 루프를 반복하는 모습... 그 모든 것을 켈리는 지켜보았을 것이다.


한 가지 확실한 건, 나는 일하는 엄마의 직장생활을 아이에게 노출시키면서 1)삶이 녹록치 않다는 것 2)상황이 시시각각 변화한다는 것 3)맡은 일은 끝까지 완수해야 한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어떠한 지식을 가르쳐 주기보다는, 동료들과 눈빛을 교환하고(눈빛으로 지시하기 신공), 상대방 의도나 감정을 읽어내고, 자기 의도를 관철시키는 것을 몸소 보여주는 것이다.


# 참사관님, 사랑해요! 

그런데, 알고보니, 내가 켈리를 가르칠 입장이 아니었다. 켈리는 내가 사회초년생일 때 몰랐던 기술을 아주 어린 나이에 구사할 줄 알았던 것이다.


"괜찮아, 일은 할만큼 했자나" 사건 이후 어느 주말에 나는 여느 때처럼 켈리를 데리고 주말에 출근을 했다.오로지 컴퓨터 자판 소리만 들리고, 나는 나의 일을, 켈리는 켈리 나름의 일을 하는 익숙한 침묵의 시간이 흘렀다. 중간 중간에 켈리가 뭘 쓰고 있는지, "엄마 참사관에서 "관"자 어떻게 쓰는거야?" 라고 물어서 가르쳐 준 것 빼곤 나는 문서 작성 삼매경에 빠져있었다.


초안이 다 되어서 고개를 들었더니 켈리가 없었다. '옆에 출근한 동료 방에서 놀고 있나?' 생각하고 전에 "사람은 나쁘지 않은" 참사관님께 문서를 보여드리러 갔다. 참사관님 책상 앞에 앉았는데 참사관님 표정이 평소보다 엄청 밝았다. 내 보고서를 다 읽은 것은 아니니 자료 작성이 잘 되어서 그런건 아닌거 같고, 뭐지? 했는데.


참사관님이 자기 컴퓨터 스크린 옆에 붙여준 엽서를 보여주었다. 켈리가 아까 살짝 들어와서 주고 갔다는 것이다. 그 엽서에는 귀여운 하트 표시와 함께 삐뚤빼뚤한 글씨로 "참사관님, 사랑해요" 라고 써 있었다.


피식 웃음이 나왔다. 아, 이제 모든게 이해되었다. 아까 켈리가 나에게 잠깐 "엄마, 근데 그 * 참사관님 방이 엄마 바로 옆 방이야? 문에 "***"이라고 이름이 써져 있어." 라고 물어보아서 "응, 맞아" 했었다. 켈리가 그 참사관님 이름을 기억하고는 그 분에게 엽서를 써 준 것이다.


엄마 괴롭히지 말라고. 단순히 "참사관님이 우리 엄마 혼냈어요?" 한 것도 아니고 대신에 "참사관님, 사랑해요" 라고 했다. 참사관님 마음을 풀어서 엄마에게도 잘 해 줄 수 있게.


켈리가 엄마를 생각하는 마음, 사안을 바라보는 눈, 모든 것이 참 신비롭다. 아마도 15년 전 외교부 입부 직후의 나는 전혀 생각해 낼 수 없는 발상이다. 켈리를 "인생 N회차"라고 하는게 무리가 아닐 수밖에 없는 것이다. 내가 도치맘일 수밖에 없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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