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폭염이 기승을 부리던 한 여름에도 뇌출혈은 오더라

01. 마르지 않는 엄마의 목욕사랑

by 마흔아홉

평생을 하루같이 엄마의 목욕 사랑은 유별났다. 하루라도 목욕을 안 하면 가시가 도는지 대중목욕탕 정기권 몇 달 치를 끊어놓고 하루도 빼놓지 않고 대중목욕탕을 드나들었다.



01. 마르지 않는 엄마의 목욕사랑


그런 엄마에게 있어 코로나로 인한 대중목욕탕의 영업제한 조치는 굶으라는 말과 다르지 않았다. 7월의 여름, 그 날도 한낮 기온이 35℃로 불볕더위가 기승을 부리던 날이었다. 엄마는 대중목욕탕의 영업제한 조치가 풀리자마자 몇십 년 동안 그러했듯이 대중목욕탕으로 향했다.


안 그래도 더운 여름, 새벽이라고 해도 덥기만 하던 그 계절에도 일흔이 넘은 엄마는 아랑곳하지 않고 온탕과 냉탕을 오가며 목욕을 즐기던 그런 일과를 즐기던 여느 날과 같은 하루였다.


동도 트지 않은 새벽 아빠로부터 전화가 걸려 왔다. 아빠는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나에게 전화를 하신 적이 없다. 언제나 엄마를 통하곤 했었는데, 그런 아빠가 평생 처음으로 전화를 하셨다. 그것도 새벽에. 그 사실만으로도 놀라기에는 충분했는데, 엄마가 쓰러졌다는 소식이었다.


“엄마 쓰러져서 OO대병원 응급실로 간다.”


그렇게 달려간 응급실에서 엄마를 만났다. 검사를 해봐야 정확하게 알겠지만 일단 뇌경색으로 보인다며, 다른 검사를 할 동안 대기하라고 했다. 응급실에서 만난 엄마는 울먹였다. 얼굴의 반과 팔다리에 감각이 없다며, 내 몸이 내 몸이 아닌 것 같아 무섭다며 떨었다.


떠는 엄마를 달래고 있는 와중에 동생이 들어오는 것이 보였다. 내 시선을 따라가던 엄마는 동생을 보았고 엄마의 눈빛이 순간 반짝인 듯했다. 애타게 기다리던 사람을 바라보는 바로 그 눈빛으로. 아빠나 나에게는 단 한 번도 보이지 않았던 눈빛이었다. 엄마의 그 애달파하는 눈빛이란...


"이 와중에도 엄마한테는 아들밖에 없구나"


검사를 마친 의사가 뇌경색이긴 하지만 수술할 정도는 아니니 중환자실로 이동한 다음에 경과를 보고 수술여부를 결정하겠다고 했다. 엄마는 중환자실로 이동했고 우리는 주치의를 만나야 했기에 자리를 뜰 수가 없었다. 30분이나 지났을까? 기다려도 주치의는 오지를 않았고 동생네는 일 때문에 가봐야 한다고 차후 상황에 대해 전화를 달라고 하고는 자리를 떴다. 나와 남편, 아빠만이 빈 복도에 남았다.


12시가 다 되었을 무렵 주치의를 만났고 엄마의 상태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응급실 의사의 말대로 수술을 할 정도의 뇌경색은 아니고 약물만으로도 치료가 가능할 것 같다고 했다. 약물 치료를 진행해 본 추후 경과를 보고 수술 여부를 판단하겠다고 했다. 엄마의 입원이 결정되었고, 입원수속을 밟았다.


엄마가 복용하던 약과 수술 여부 등을 확인했다. 중환자실로 들어가면 정해진 시간 외에는 면회가 불가능했고 그때부터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그렇게 우리는 다시 일상으로 돌아갔고 엄마만이 중환자실에 남았다.


일주일 정도 진행한 약물 치료는 호전을 보였고 엄마는 수술 없이 일반병실로 이동했다. 하지만 간병이 문제였다. 지병이 있기도 하고 팔순도 넘은 아빠에게 간병은 무리라고 생각했고 우리 부부와 동생부부 모두 일을 하는 상황이라 간병인을 이용하기로 했다. 나와 동생이 각각 50%의 금액을 간병인 계좌로 이체하는 것으로 협의를 마쳤다.


간병인이 돌아가자 동생은 각각 보내지 말고 자기 계좌로 50%를 보내주면 자기가 한꺼번에 간병인 계좌로 지급하는 것이 좋지 않겠냐며 나를 설득했다. 어이없었지만 단호하지 않게 연말정산을 핑계로 돌려서 거절했다. 분명 본인 혼자 모두 부담했다고 하고도 남을 거란 걸 알기에 빌미를 주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엄마의 짧은 투병생활이 시작되었다.

traces-5096047_1280.jpg

소시오패스's 우리의 평범한 일상 속에서 심리적 폭행, 가스라이팅을 한다 by Matha Stout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