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_편향된 아들 사랑은 어떻게 사회적 괴물을 만들어냈나
갑자기 쓰러진 아버지를 가장 먼저 발견한 가족이 아버지를 병원으로 이송하고 입원, 수술 등의 급한 일을 처리했다는 것을 뒤늦게 알게 됐을 때 소시오패스는 어떻게 반응할까?
왜 나한테 먼저 말을 안 했느냐고 화를 낸다. 소시오패스는 아버지의 목숨보다 내 권리가 더 중요하기 때문에 화를 낸다. 소시오패스의 가장 중요한 특징 중 하나가 필요할 때만 남한테 잘하고, 필요가 없어지면 가차 없이 버린다는 사실이다.
프롤로그_내 옆의 소시오패스
몇 년 전쯤으로 기억한다. 계단에서 넘어진 아빠는 광대뼈 아래 피부가 3cm가량 찢어졌다. 병원 갈 필요 없다며 담뱃잎을 짓이겨 찢어진 피부 사이에 발라놓으셨다. 아빠 어릴 적(1940년대)에는 이렇게 해놓으면 감쪽같이 상처가 다 나았다는 쓸데없는 말씀과 함께.
친정에 잠시 들렀던 나는 기겁을 했고, 그 즉시 가까운 응급실로 아빠를 모시고 가 찢어진 피부를 꿰매었다. 다행히 뼈는 다치지 않았고 치료는 금방 끝났다. 치료를 하는 사이 남편이 동생에게 연락을 했고, 부모님을 집으로 모셔다 드리는 차 안에서 엄마가 동생의 전화를 받았다.
"아빠가 다쳤는데, 내가 왜 그 이야기를 매형한테 들어야 돼?"
"어? 내가 아들인데? 나한테 말을 해서 처리했어야지."
어쩌다 다치셨는지, 얼마나 다치셨는지는 묻지도 않은 채, 동생은 엄마한테 소리를 지르며 화를 내고 있었다. 수화기 밖으로 동생의 목서리가 쩌렁쩌렁 울렸고 엄마는 어쩔 줄 몰라했다. 누나가 집에 들렀다가 아빠 상처를 보고 병원을 갔을 뿐 일부러 누나한테 전화한 게 아니라는 변명을 늘어놓으셨다.
'아빠 치료 잘했으면 그만이지, 도대체 이게 성질을 낼 일이냐'며 역정을 냈어야 한다. 하지만 엄마는 한마디도 하지 못하셨고 성질내는 동생한테 쩔쩔매셨을 뿐이다. 다친 남편 치료한 것이 무슨 죽을 죄라도 되는 양.
동생은 아빠가 다치신 사실보다 자신이 아들로서의 권리를 침해당했다고 여겼기 때문에 화를 냈다고 생각한다. 자식으로서, 아들로서 부모님을 살뜰히 살피지 못했다는 마음이 아니라 아들로서 자신의 권리를 매형에게 뺏겼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화가 난 것이다. 아들로서의 역할이 먼저였다면 어디를 다치셨는지, 지금은 괜찮으신지, 봉합은 잘 되었는지 먼저 물어봤어야 한다.
엄마가 돌아가신 뒤 내게는 꽤 많은 시간의 구멍이 생겼었다. 하릴없이 TV 채널을 돌려대다 <옥탑밥의 문제아들>을 보게 되었다. 몇 년 전 아빠가 다치셨을 때 동생이 했던 행동을 하는 사람의 유형에 대한 문제가 출제되었다. 동생과 비슷한 사람이 또 있다는 사실에 나도 모르게 집중해서 보고 있었다.
"쓰러진 아버지를 먼저 발견한 가족이 수술과 입원 등의 급한 일을 이미 처리했다는 것을 뒤늦게 알게 되었을 때 소시오패스의 반응은?"
▶ 옥탑방의 문제아들 2020.11.10 방송 ☞ https://youtu.be/BgVZ3g5ymAw?si=qU6FkPPb3Dj34eb0
"예전 장남들이 이런 정서들이 있었는데, 아빠가 쓰러졌으면 네가 일처리를 하기 전에 나한테 먼저 연락했어야지. 왜 네가 일처리를 해서 장남 모양새 빠지게 하냐"
소름이 돋았다. 사이코패스는 알아도 소시오패스는 생소했다. 방송이 끝난 후 인터넷에서 소시오패스 특징을 찾아보기 시작했다. 내가 지금까지 알아왔던 동생의 모습은 소시오패스의 특징과 너무 많이 닮아있었다.
대인배처럼 행동하지만 계산적이고 상대가 누구든 이겨야 했다. 지키지도 않는 약속을 남발했고 어기는 일은 흔했다. 거짓말은 일상이었으며 사회적 규칙이나 법규를 어기는 일도 일상다반사였다. 타인의 감정을 이해하지 않았고 언제나 자기만 옳았다. 50의 몫을 하면 100의 몫을 한 것처럼 늘 자신이 한 일을 과대포장했다.
동생과 너무도 닮아있는 그들의 모습에 그제야 동생의 모든 행동들이 이해되기 시작했다. 그전까지 나에게 있어 동생은 이기적이고 철없는 자기밖에 모르는 이기적인 아들이었다.
이런 행동을 하는 사람들은 '소시오패스'라는 '반사회적 인격장애'를 가진 사람들로 전 국민의 25%가 소시오패스에 해당하며 자신의 행동이 타인에게 상처를 주더라도 전혀 인식하지 못하고 일반적인 규칙이나 법을 경시하며 자신만의 기준에 따라 행동한다고 한다.
부모님의 편향된 아들 사랑, 옳고 그름에 대한 가르침 없이 오로지 사랑만을 주셨던, 넘치기만 했던 그 아들 사랑이 결국 사회적 괴물, 소시오패스를 만들어낸 것이다.
그리고 그 편향된 아들 사랑의 끝은 엄마의 자살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