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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한 아들 코스프레

03. "간병비 계속 보내는 거 괜찮겠어?"

by 마흔아홉

엄마가 요양병원으로 가시던 날 쉴 새 없이 카톡이 울려왔다. "카톡, 카톡, 카톡, 카톡, 카톡, 카톡, 카톡" 동생이 보낸 수십 장의 병실 사진이었다. 심지어 둘러보는 엄마의 동영상도 있었다. 새로 지었다더니 시설은 날 것 그대로 인 듯 새것의 냄새가 사진에서조차 진하게 풍겨오는 듯했다.



03. 장한 아들 코스프레


1인실은 깔끔해 보였고 창문너머로 보이는 산과 숲이 엄마가 좋아하시겠다 싶었다. 뇌경색/뇌졸중 전문 재활요양병원이라고 하더니 대학병원 재활병동 못지않게 뇌경색/뇌졸중 재활전문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기도 했다. 불안했던 마음이 다소나마 놓였다.


동생은 우리나라에서 최고로 좋은 <뇌경색/뇌졸중 전문 재활요양병원>을 찾았다며 목소리가 높아졌다. 장한 아들 노릇에 심취한 듯 신나보이기까지 했다. 뭐가 되었든 엄마는 재활요양병원에 만족해했고, 그럼 됐다. 나는 더 이상 말하지 않았다. 요양병원 역시 1인실이기에 간병인의 도움을 받아야 했고 대학병원에서처럼 동생과 둘이 각각 반반씩을 보냈다. 그렇게 시간이 흘렀고 어느 날 빨래를 널고 있는데 동생으로부터 카톡이 왔다.


"간병비 계속 보내는 거 괜찮겠어?"

"응? 상관없는데?"


무슨 의도인가 싶어 찜찜했지만 뭐가 있겠나 싶기도 하고 따지기도 뭐해서 그냥 지나쳤다. 코로나가 전국을 휩쓸던 그 시절, 식상한 문구임에도 그때를 달리 표현할 말이 생각나지 않는다. 그때는 면회도 쉽지 않았다.


이모 여섯, 작은어머니 넷, 친목회 계원, 지인과의 잦은 통화로 엄마는 하루 종일 통화 중이었고 연결 자체가 쉽지 않았다. 추석이 다가왔고, 요양병원에서는 명절 기간이나마 한시적으로 코로나 예방 접종자에 한해 요양병원 로비 내에서 가족 면회를 할 수 있도록 양해해 주었다. 마스크를 쓰고, 예방접종 확인증을 들고, 엄마를 만나러 갔다.



병원을 옮긴 후 며칠 만에 만난 엄마는 염색을 하지 못해 백발이 성성한 초로의 할머니가 되어서 휠체어에 앉아있었다. 그래도 얼굴은 평상시처럼 돌아왔고, 한쪽팔과 한쪽 다리가 저리고 불편한 것 외에는 많이 좋아졌다고 했다. 아이들도 오랜만에 엄마(할머니를) 만난 거라 조잘거리며 안부를 묻고 있었다.


조금 머뭇거리더니, 엄마가 물었다.


"간병비 많이 부담되지?"

"적은 돈은 아니니까, 부담스럽지 않다는 건 거짓말이겠지만 에이, 걱정 마. 엄마딸 그 정도 능력은 있어"


자주 엄마를 보러 오는 것도 아니고 매일 안부 전화를 하는 것도 아니라서 미안한 마음이 컸던 지라 나도 모르게 과하게 너스레를 떨었다.


"말이라도 고맙다. 엊그제 OO이가 4인실로 옮기고 아빠 보고 간병하라고 했는데 지금은 힘들다고 했어. 내가 4인실 가기는 아직 불편하기도 하고, 아빠가 간병하면 아빠도 병날까 봐 무섭기도 하고. 근데 너희들한테 너무 부담 주는 것 같아서 미안하기도 하고, 그렇네."

"아~ 그랬었구나. 안 그래도 카톡으로 물어보길래 나는 괜찮다고, 계속 보낸다고 했어. OO이가 힘들다면 내가 모두 부담하면 되니까 신경 쓰지 말고 1인실 계시고 간병인 도움 받아. 내가 준 돈도 전부 OO이 줬다면서, 그런 걱정을 뭐 하려 해. 엄마는 걱정 말고 재활치료만 신경 써"


동생이 간병비에 대해 물어본 이유를 이제야 알았다. 간병비가 부담스러운 것인지, 1인실 비용이 부담되었던 건지 나한테는 의논도 없이 엄마, 아빠를 채근하고 있었던 것이다. 저 혼자 엄마의 병원비용을 전부 부담하는 것도 아니면서 대체 왜 그러는 것인지. 여전히 이해할 수 없다.


예민하던 엄마는 일단 한 달만 1인실 이용하고 다음 달부터는 생각해 보겠다고 하셨단다. 나는 잘하셨다고, 나랑 반반씩 부담하고 있는데 뭐 하러 눈치를 보냐며 신경 쓰지 말라고 했다. 안되면 내가 다 부담하면 그만이다. 그만큼의 비용은 모아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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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시오패스's 자신이 특별하고 우월하다는 내가 제일 잘났다는 자만감이 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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