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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말이 맞았다.

16. 니 돈은 십 원 한 장도 아깝니?

by 마흔아홉

뇌졸중으로 입원했던 병원비가 천만 원이 넘었다고 했다. 급한 대로 칠백만 원을 찾아서 엄마에게 건넸었고 엄마는 동생에게 전부 주셨다고 했다. 요양병원으로 갈 건데 적지 않은 돈을 가지고 있기도 부담스럽고 어차피 병원비는 또 들어가야 될 테니 보태라고 하셨단다.



16. 니 돈은 내 돈, 내 돈은 내 돈


동생의 병원비 천만 원 타령은 동네방네 사돈의 팔촌까지 한 번쯤은 다 들었을 정도로 안 들은 사람이 없었다. 엄마가 돌아가신 후 모두들 내게 물어왔으니까 말이다. 귀에 못이 박힐 지경이다. 어려서부터 허언과 과장이 심했던 동생이긴 했어도 그전까지 의심할 생각은 못했었다. 그런데 엄마가 마지막으로 했던 말씀이 마음에 걸렸다. 부검 때 제출했던 엄마의 진료내역서가 생각났다. 병원에 가서 재발급을 받았다.


영수증 첫머리에 산정특례(268 뇌출혈 급성기) 입원 진료비 계산서. 영수증 이 보였다. 의사와 상담해 보라던 산정특례가 적용되어 있었다. 그런데도 병원비가 천만 원이 넘었다고? 자세히 살펴볼 필요도 없었다. 동생이 그렇게 노래하던 천만 원은 진료비 총액이었다.


진료비 총액(₩14,124,792)에서 공단부담금(₩12,404,952)을 차감한 환자부담총액 ₩1,719,790원만이 동생이 실제로 결제한 금액이다. 내가 엄마에게 드렸던 돈으로 내고도 남는다. 동생은 병원비로 한 푼도 쓰지 않은 셈이었다. 오히려 돈을 벌은 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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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어째서 천만 원 타령을 했지? 왜 엄마를 퇴원시켰지? 진짜 코로나 병동 때문에? 이해가 안 되었다. 산정특례 제도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기 시작했다. 산정특례 제도는 진료비 부담이 높은 중증질환의 부담을 경감해 주는 제도로 본인부담률은 5~10% 정도다. 이건 문제가 될 게 없다.


유레카(eureka)! 질환별로 기간제한이 있었다. 암, 희귀질환, 중증난치 같은 경우는 최대 5년까지 가능하지만 뇌/심장 관련은 최대 30일이었다. 30일 이후는 모든 지원이 끊긴다고 한다. 이거였다.


엄마는 입원 29일째 되던 날 퇴원했다. 엄마 말이 맞았다. 진짜로 병원비 때문에 산정특례기간인 30일이 지나기 직전에 엄마를 퇴원시켰나 보다.


엄마는 천만 원이 넘는 병원비가 나왔고 앞으로도 얼마나 더 나올지 모른다는 공포심을 느껴서 그러셨던 걸까? 이제는 진료비 영수증을 보여줄 수도 없는 엄마와 보여드려도 이해조차 못하는 아빠만 남았다.



엄마가 안 계신 지금 아빠는 이른바 독거노인이다. 평생 아빠와 이렇다 할 전화 통화 한번 해 본 적이 없었던 나는 매일 아침 저녁 통화를 한다. 항상 정해진 시간에 전화를 드리는데, 이날은 오후 3시쯤 되었을까? 낮잠을 주무실 시간인데 아빠로부터 전화가 왔다.


장례식 마지막날 조의금을 정리하고 남는 돈은 아빠 드리라고 했었다. 아빠한테도 그렇게 말씀드렸고 그렇게 알고 있었다. 그 조의금에 대해서 동생이 와서 그러더란다. 엄마의 조의금은 2,200만 원 정도 들어왔고 장례비용이 1,500만 원 들어갔으며, 49재 550만 원을 내야 해서 남는 돈이 없어 아빠에게 드릴 게 없다며 가더라는 것이다. 그걸 또 아빠는 내가 드린 말씀이나 조의금 지출내역은 까맣게 잊어버리신 건지 그러라고 하셨단다. 내가 화를 내니 그냥 그러자고 하신다. 더하지 말라신다.


정말 어떻게 이렇게까지 거짓말을 할 수 있는 거지?. 조의금은 2,200만 원 남짓 들어왔고 장례비용은 49재 비용까지 포함해서 1,500만 원 들었다. 고작 700만 원 정도의 돈마저 가지겠다고 혼자 남은 아빠에게서 가로채버렸다. 그때 올케 주지 말고 내가 가지고 있을 걸. 이제 와서 후회해야 뭐 하겠나, 내 머리를 쳤다.


아빠에게 조의금을 드려야 한다고 생각했다. 혹시 몰라 장례 비용 영수증을 모두 챙겨뒀었다. 화장장은 상주(喪主)가 아니라고 거부당해서 금액만 확인했었지만. 더이상 들어갈 돈이 없었다. 동생의 끝도 없는 돈 욕심에 이골이 난다.



아빠를 우리 집으로 모시고 왔을 때였다. 저녁과 함께 반주 한 잔 걸치시고는 엄마 보통예금이랑 정기예금이 있는데 그거 아빠가 다 쓰면 안 되겠냐고 하시는 거다. 당연히 아빠가 쓰는 거지 뭘 그런 것까지 물어보시냐며 되물었더니, 그제야 입을 떼셨다.


아빠에게 병원비가 천만원이 넘어서 힘이 드니 그 돈을 달라고 했다는 거다. 실제 병원비는 170만원 밖에 나오지 않았음에도, 심지어 내가 드렸던 돈도 엄마는 동생에게 다 주었음에도 동생은 그 예금을 달라고 한다. 흡혈귀가 따로 없다.


부모님 등골을 빼먹어도 이렇게까지 빼먹어야 하나? 속여도 이렇게 속이나? 답답함이 앞섰지만 일단 아빠 고민부터 해결해야 했다. 정기예금은 만기일이 남아있어서 아빠를 모시고 은행으로 갔다. 은행직원은 사망자 예금을 사망신고 전에 인출하면 다른 상속자가 이의제기를 할 수 있다며 다른 상속자도 와서 찾는 게 좋겠다고 권했다.


아빠가 워낙 불안해하셔서 나도 상속자고 문제 삼지 않을 테니 인출해서 아빠 통장으로 입금시켜 달라고 했다. 혹시라도 동생이 문제제기를 하면 내가 책임을 지겠다고 안심시켜 드렸다. 그제야 아빠는 예금을 찾았고 아빠 통장으로 입금하셨다.


연신 고맙다는 아빠를 모셔다 드리고 집으로 왔다. 평생 아빠와 엄마가 함께 모으신 돈일진대 아빠가 이렇게 까지 고민하셔야 하는지 치밀어 오르는 화를 참지 못하겠다. 화를 참지 못하던 나와 달리 남편은 비교적 차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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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시오패스's 자신의 이익을 위해 빈번하게 거짓말을 하고 타인을 속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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