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걷고 싶지 않았던 그 골목
발인이 끝나고 발인제를 지내기 위해 우리는 빈소로 올라가 제사를 지냈고 엄마를 보내드릴 모든 준비를 마쳤다. 장례지도사가 코로나 규정상 화장장에는 직계가족 말고는 출입금지이니 친인척에게 미리 알려드려서 불필요한 방문이 없도록 해달라고 첫날부터 주의를 주었었다. 친척어른들께 미리 말씀을 드리기는 했는데 발인만이라도 보시겠다며 오신 어른들을 내칠 수 없어 발인식까지는 함께했다.
14. 엄마의 사진이 걸어간다, 걷고 싶지 않았던 그 골목을
발인이 끝나고 빈소에 올라가 짐을 챙기고 있었다. 장례지도사가 헐떡이며 올라와서는 친척어른들을 장의차에서 내리게 해달라고 했다. 귀가하실 거라 생각했던 친척들이 장의차에 탑승했고 그대로라면 화장장 진입을 못한다고 했다. 하차해 주십사 말씀드렸지만 상주가 타도 된다고 했다며 요지부동이라는 것이었다.
상주에게 친척어른들 하차를 부탁했지만 술이 거나하게 오른 상주는 코만 콜며, 자는 척 말을 듣지 않았고, 말리다 못한 직원(상조회사 직원인지, 장례지도사인지, 장의차 기사인지 모르겠다)이 우리를 찾아 올라온 것이었다.
"상주(喪主)님께 몇 번이나 말씀드렸는데 들은 척도 안 하세요. 직계가족 말고 친인척이 있으면 장의차가 화장터에 진입을 못합니다. 제발 장의차에서 내릴 수 있도록 해주세요. 이러다 화장시간 놓칩니다."
결국 남편이 장의차에 가서 상황을 말씀드렸고, 내려주시기를 부탁드렸다. 마지막 화장시간인데 혹시라도 못 들어가거나 늦을 만한 요소들은 없어야만 했다. 다행히 친척어른들은 내렸고 직계가족만 가는 것으로 마무리되었다.
서둘러서 화장장으로 출발했는데 가다 말고 갑자기 동생이 엄마가 사시던 집을 마지막으로 둘러보고 가자고 고집을 피웠다. 장의차 운전기사는 그러다 화장시간 못 맞춘다며 화를 내었지만 상주(喪主)는 자기라며 고집을 피워대는 동생의 고집을 꺽지 못했다.
친정집으로 가는 골목은 좁아서 리무진이 진입할 수 없었고 우리는 차에서 내려 엄마의 사진을 앞세우고 골목을 지나갔다. 절뚝거리는 모습조차 보이고 싶지 않아 퇴원 후 문을 걸어 잠그고 나가지 않았던 그 골목에 엄마의 사진이 엄마 대신 걸어가고 있었다. 수군거리는 동네사람들의 소리가 들려왔다.
"저 집 아줌마 뇌출혈로 입원했다가 퇴원한 게 엊그제더만, 그새 죽었네. 불쌍해서 어쩌나, 쯧쯧"
상복을 입고 지나가는 우리를 모두가 쳐다보는 것만 같다. 절뚝거리는 모습조차 보이고 싶지 않아 스스로를 가두었던 엄마를 구경거리로 만든 것 같아 너무나 죄스러웠다. 나조차도 사람들의 힐끔거리는 시선이 싫은데 엄마는 얼마나 싫으셨을까?
'동물원 원숭이 될 일 있냐'는 엄마의 목소리가 다시 들리는 듯했다. 그렇게 집으로 들어갔다. 그 소리가 들리는지 안 들리는지 동생은 집으로 들어가자마자 대성통곡을 한다. 재한테는 울음버튼이라도 있나? 어떻게 방금 전까지 코를 골며 자던 사람이 저렇게 금방 울음을 터트릴 수가 있지? 동생은 엄마가 지내던 방에 들어가서는 침대를 쓸어내리며 울부짖었다.
"엄마, 엄마가 살던 집이야, 기억나지?"
"엄마가 자던 침대야, 마음껏 보고 가, 엄마"
드라마에서나 듣던 대사를 내 앞에서 동생이 읊어대고 있었다. 재미없는 드라마를 보는 듯 현실감이 안 들었다. 누구 들으라는 듯 목청껏 울어대며 읊어대는 동생을 보는데 엄마의 죽음을 슬퍼한다기보다는 '나는 엄마를 위해 이렇게나 애도했었어'라고 보여주는 듯한 느낌이었다.
리무진을 타고 화장터로 향했다. 리무진 기사는 가는 내내 1초라도 늦으면 화장을 못한다며 그렇게 돼도 자기 책임이 아니라고 끊임없이 화를 냈다. 나는 좌불안석이었고, 죄송하다고, 과태료 나오면 다 내드릴 테니 빨리만 가달라고 말씀드릴 수밖에 없었다.
혹시라도 화장을 못하게 되면 엄마는 다시 그 차가운 시체보관소에 하루 더 있어야 한다. 다행히 리무진 기사님의 노련한 운전 덕분인지 화장시간에 도착할 수 있었고 엄마는 대기도 없이 바로 화장장으로 들어갔다. 화장시간은 2시간 남짓 걸리니 기다리면서 식사를 하라며 우리를 식당으로 데리고 갔다.
화장이 마무리되었고 엄마의 유골은 봉안함에 담겨 나왔고 봉안당에 안치되었다. 장례식장에 돌아와 옷을 갈아입었고 태어나서 처음으로 동생과 크게 싸웠다. 시작부터 끝까지 막무가내였던 동생은 내가 왜 분노하는지 이해하지 않았고, 자기가 무엇을 잘못했는지도 몰랐다. 아니 애초부터 자기는 잘못한 게 없었다.
스스로 생을 마감한 엄마를 두고 자리를 잠깐 비운 것이 무슨 문제가 되냐며 도리어 화를 내는 동생을 나는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지, 내가 화를 내는 게 맞는 건지도 순간 헛갈리기까지 했다.
소시오패스' s 자신을 잘 위장하며 감정조절이 뛰어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