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자연사가 아닌 죽음
코로나가 횡횡하던 그 시절에는 사망 후 24시간 내 '선화장(先火葬) 후장례(後火葬)'가 원칙이었다. 엄마는 뇌경색 치료기록이 있고 코로나백신 접종 후 6개월 이내라 선화장(先火葬)은 피해 갔지만 부검은 마쳐야만 장례를 진행할 수 있었다.
13. 자연사가 아닌 죽음, 외인사 그리고 부검
엄마는 토요일에 돌아가셨다. 부검은 가능했지만 필요한 서류가 없었다. 월요일 아침에 발인을 해야 하는데 서류도 월요일에나 가능했다. '서류발급 + 부검 + 발인' 이 모든 절차가 월요일 오전에 마무리되어야 오후 마지막 화장(火葬) 시간을 맞출 수 있었다. 나와 남편은 마음이 바빠졌다.
장례 2일 차, 담당 형사에게 연락이 왔다. 과학수사대 검사 결과가 나왔으며 부검을 위해 서울과학수사연구소로 엄마를 보낸다고 했다.
"부검을 위해 코로나백신 접종확인증, 병원진료내역서를 서울과학수사연구소로 보내주세요."
"서류가 늦어지면 부검도 늦어지고 발인을 못하실 수 있으니, 최대한 빨리 서류 부탁드립니다"
엄마는 서울과학수사연구소로 출발했지만 거기서도 서류가 준비될 때까지 기다려야 했다. 부검순서는 알 수 없었다. 미리 가서 대기 중이지만 서류가 준비되는 대로 부검이 이루어지기 때문에 서류 발급이 급선무였다.
새벽같이 서류 발급하러 출발해야 하니 조의금 정리를 미리 마치자고 했다. 너무 늦게까지 조문객 맞이하지 말라고 부탁했건만 동생은 그날 밤도 여전히 어제의 그 조문객들과 술잔치를 벌였다. 오늘도 어제처럼 병원비 천만 원 타령을 지껄이며 밤 12시를 넘겼다. 1시가 넘어서야 그들은 돌아갔고 조의금 정리를 마쳤다. 어지러웠다. 현금을 모두 쇼핑백에 담아 올케에게 건넸다.
"우리는 내일 눈 뜨자마자 서류 발급하러 나갈 거니까 장례비용 모두 결제하고 남은 돈은 아빠 드려."
월요일 아침, 뜬눈으로 지새운 것 같다. 7시 전에 장례식장을 나섰다. 서류가 늦어지면 부검과 발인, 화장(火葬) 모든 것이 늦어진다. 마지막 화장(火葬) 시간을 놓치면 엄마는 다시 그 시체보관서로 들어가야만 했다. 그것만은 막고 싶었다.
병원은 열려 있었고, 접수증부터 뽑았다. 1번. '진단서, 소견서, 입원사실증명서, 통원진료확인서' 등 진료와 관련된 모든 진료내역서와 의무기록 및 영상 CD까지 모두 발급받았다. 바로 보건소로 향했다.
보건소까지는 꽤 멀었다. 헐레벌떡 도착한 보건소에는 코로나 백신 예방 접종을 위해 방문한 사람들의 줄이 보건소 밖까지 길게 줄지어 서 있었다. 길게 늘어선 줄을 뒤로하고 예방접종 부서로 갔다. 앉아있던 직원에게 말을 하니 담당자가 출근 전이니 기다리라고 했다. 몇 분 기다리지 않은 것 같다. 담당자는 빨리 왔고, 엄마 이름을 불렀다.
"OOO님, 왜 따님이 오셨어요? 오늘 OOO님 코로나 백신 2차 접종일인데 직접 오셔서 접종받고 발급받으시지요?"
"돌아가셔서 코로나백신 접종확인증 대신 발급받으러 왔다고 아까 말씀드렸었는데요. 화장(火葬)에 코로나백신 접종확인증이 필요해서요."
담당자는 머쓱했는지 아님 미안했는지 몰랐다며 서둘러 확인증을 발급해 주었다. 그들의 잘못은 아니지만 내 일이 아니니 무신경할 뿐이고 관심이 없으니 의례적인 말일뿐인데,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그렇게 보건소를 나왔다.
우리는 조금의 시간이라도 줄여보고자 서울과학수사연구소로 직접 서류를 가져가기로 하고 인터넷에서 주소를 찾았고 형사에게 문자를 보냈다.
"형사님, OOO씨 딸입니다. 서류받고 저희가 서울과학수사연구소로 가져가겠습니다."
인터넷에서 찾은 서울과학수사연구소 주소와 연락처를 형사에게 확인한 후 고속도로에 진입하기 직전이었다. 전화가 왔다. 서류를 팩스로 보내면 바로 부검 진행할 수 있도록 서울과학수사연구소와 협의를 했으니 팩스로 송신하고 연락을 달라고 했다.
원본 제출이 원칙이나 형사(님)가 상황을 설명하고 서울과학수사대에 양해를 구한 모양이었다. 전화 한마디의 간단한 배려일 뿐이라고 하지만 우리에게는 너무나 감사한 일이었다. 원본은 검사필증 받으러 경찰서에 올 때 형사(님) 자신에게 전달하면 된다고 했다.
팩스를 보냈고 오전 11시쯤 부검이 마무리되었다는 연락을 받았다. 퀵서비스를 통해 서울과학수사대의 부검서류를 형사(님)께 전달했다. 드디어 엄마의 사망에 대한 검사필증을 건네받았다. 모든 행정적 절차가 끝났다.
부검을 끝낸 엄마가 장례식장으로 출발했다는 연락을 받고 나서야 한숨을 돌릴 수 있었다. 그렇게 모든 절차를 마치고 유가족 대기실에 들어가려는데 반쯤 열린 문틈 사이로 동생 목소리가 들려왔다.
"엄마 금붙이는요?"
정신줄 놓기 직전인 아빠를 붙들고 금붙이 타령을 하는 동생을 눈앞에서 보았다. 엄마가 관뚜껑 열고 나와서 숨겨둔 금붙이가 어디있는지 가르쳐주셨으면 좋겠다. 문소리가 들렸는지 동생은 별일 아니라는 듯 다시 누워버렸다.
서울과학수사연구소에서 부검을 마치고 온 엄마는 돌아가신 지 3일 만에야 염습(염)을 진행할 수 있었다. 입관을 위해 가족들이 입관실로 모였다. 아빠와 우리 가족, 동생 가족 아빠와 엄마의 형제자매들이 모두 모인 가운데 수의를 입은 엄마에게 마지막 인사를 전했다.
그렇게 입관이 마무리되었다.
소시오패스's 타인의 감정을 존중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