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 쉬어버린 김찌찌개가 나를 반긴다.
아들이 오지 않는다고, 엄마를 버렸다고 나에게 전화를 했던 시간으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서 엄마는 돌아가신 것 같다. 출근길에 '엄마가 좋아하는 김치찌개를 가져다 드리겠다'는 딸은 기다릴 생각조차도 안 하셨나 보다. 장례를 마치고 집에 돌아오니 쉬어버린 김치찌개가 나를 기다렸다.
14. 남겨진 자와 떠나간 자
푸바오의 중국반환 당시 모친상 중임에도 중국으로 동행했던 강철원 사육사를 기억하는지. 이해하는 사람들도 많았지만 고작 판다 한 마리 때문에 천륜을 저버렸다며 시끄럽게 굴었던 사람들도 있었다. 강사육사의 모친은 지병으로 수년간의 투병생활 중에 명을 달리하셨고, 임종을 지켰음에도 천륜 운운하며 시끄러웠었다. 사람들의 보편적인 정서가 그렇다.
강사육사는 형제들과 의논 끝에 중국에 다녀왔다고 했고 나는 이해할 수 있었다. 지금도 많은 분들이 안타깝게 세상을 떠난다. 그들의 가족 중 피치 못하게 자리를 비우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하지만 그들은 돌아가신 가족이 차가운 시멘트 위에 누워있다면 절대로 그대로 방치한 채 자리를 비우지는 않을 거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것도 스스로 생을 마감하신 분을 두고서는 더더욱. 그 모습을 보고도 발길이 떨어질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그러고 6시간 만에 나타나서는 수천, 수백의 손해를 운운하며 별일 아니란 듯 기세가 등등하다. 잘못한 기색이 1도 없다.
장례식장에서의 일을 뒤로하고 아빠를 모시고 집으로 갔다. 엄마의 물건을 모두 치워달라는 아빠에게 동생은 자기가 날을 잡아서 치운다며 집으로 가버렸다. 쓸만한 것은 추려내서 자기가 써야겠다고 한다. 아빠는 알겠다고만 하신다.
동생네가 가고 나자 그제야 아빠는 제발 엄마 물건 눈에라도 안 보이게 해달라고 사정하셨고 남편과 나는 엄마가 쓰던 물건들을 모조리 장롱 속에 욱여넣었다.
그제야 아빠가 살겠다고 하신다. 아빠는 아들한테는 단 한마디도 못하신다. 아들 눈치 보다가 엄마 물건 그냥 다 치워달라는 그 한마디를 못하시고는 가고 나서야 진짜 속내를 말씀하시는 아빠가 한없이 가엾다.
아빠는 혼자 있고 싶다며 '너희도 가라'라고 하셨지만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 혼자 두면 아빠까지 잘못되실 것 같아 아빠 집에서 자기로 했다. 그제야 아빠는 일어나셨고 우리 집으로 가셨다. 그렇게 마지막 날이 지나갔다.
엄마가 이 세상에 없는 지금으로서는 엄마가 왜 스스로 생을 마감하셨는지 그 죽음에 대해 알 수 있는 방법은 하나도 없다. 하지만 하나는 알겠다. 엄마가 동생 때문에 스스로 생을 마감하신 것이라고 말이다.
돌아가시기 몇 시간 전 나에게 "아들이 자신을 버렸다"라고 하신 분이다. 아들에 의해 퇴원을 당하던 날에도 돈 때문이라며 아들의 처분을 기다리겠다던 엄마다. 결국 엄마는 오지 않는 아들을 기다리다가 지쳤고 병원비 때문에 그 아들이 엄마를 버렸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스스로 생을 마감하신 것이다. 나는 그렇게 밖에 생각할 수 없다.
동생은 언제나처럼 의미 없는 거짓 약속을 했고, 역시나 지키지 않았다. 엄마가 자신을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말이다.
그까짓게 뭐라고 그게 왜 생을 마감하는 이유가 되어야 하는지. 아들 혼자 병원비를 부담했나? 내가 드렸던 병원비, 간병비는 돈이 아닌가? 혼자 독박 쓴 것도 아닌데? 그렇다고 자식들이 능력이 없나? 아니다. 있다. 분명히 동생이 힘들다고 안된다고 하면 내가 다 할 테니까 걱정하지 말고 치료만 하라고 당부에 당부를 했었다.
그런데도 왜? 떨려오는 팔다리를 보면서 동생 말처럼 2차 뇌졸중이라고 생각하신 걸까? 병원에서 이상이 없다고 했는데도? 혹시 그래서 또다시 입원을 하게 된다면 또다시 천만 원이 넘는 병원비가 들어갈까 봐서? 안되면 집을 팔든 땅을 팔든 하면 되지... 대체 왜?
그래서 앞으로 들어가야 할 병원비가 부담되서 아들이 진짜로 버릴 거라고 생각하셨나? 버려지기 전에 스스로 생을 마감하신 것이라면? 더더욱 동생을 용서할 수가 없다.
엄마도 이해할 수가 없다. 그까짓 아들이 뭐라고 평생을 아들만 바라보며 사셨는지, 아들이 버릴 수도 있다는 사실이, 당신이 버려졌다는 사실이 괴로우셨던 것일까? 왜 엄마가 아들을 버리면 된다는 생각은 못하셨던 것일까? 답답할 뿐이다.
"OO이가 돈 때문에 퇴원시킨 것 같아"
"OO이가 엄마 버렸어"
엄마는 돌아가시는 그 순간까지도 아들만을 기다렸다. 엄마의 마지막 말이 유언과도 같은 그 말이, 나는 지금도 가끔 들리는 것 같다.
소시오패스's 자신의 이익을 위해 빈번하게 거짓말을 하고 타인을 속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