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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의자심문조사

11. 살인용의자가 되다.

by 마흔아홉

장례식장에 도착하니 형사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엄마가 돌아가실 당시 집에는 부모님만 계셨고 외부인이 침입한 흔적도 없었기 때문에 아빠는 엄마의 죽음에 대한 용의자가 되었다.



11. 살인용의자가 되다.


형사는 경찰서로의 동행을 요청했다. 경찰서에 가서 피의자심문조사를 받아야 한다고 했다.


"현재로서는 아버님께서 살인용의자이십니다."

"아버님은 저희와 함께 OOO경찰서로 가서야 합니다"


아빠는 여전히 넋이 나가있는 듯 멍했고 나 역시 처음에는 무슨 말인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때였다. 남편이 형사에게 담배 한 대 피우자며 밖으로 나갔다. 그 사이 아빠를 장례식장 휴게실로 모셨다. 밖으로 나간 남편은 형사에게 간절하게 부탁했다고 한다.


"아버님 상태 보셨지 않습니까. 충격받고 넋이 나가셨어요."

"서 있지도 못하는 여든 노인이 무슨 살인을 하시겠습니까?"

"아버님 절대 그럴 분 아니십니다."

"혼자 경찰서에서 조사받다 잘못되면 책임지시겠습니까?"

"부탁드립니다. 여기서 조사받게 해 주십시오."

"아버님이 살인을 하실 분도 아니지만 하셨다면 제가 다 책임지겠습니다."

"도와주십시오."


남편의 간절한 부탁에 설득된 건지 아니면 넋 나간 노구의 아빠가 안쓰러웠는지는 잘 모르겠다. 형사는 자기에게는 결정권한이 없으니 상관에게 보고 드려 보겠다며 자리를 떴다. 남편에게 이야기를 듣고 한숨 고르고 있던 사이 형사가 상관의 승인을 받았다며 들어왔다. 장례식장에서 피의자심문조사를 진행하자고 했다.


휴게실 소파에 앉아 아빠의 피의자심문조사가 시작되었다.



피의자심문조사 내용이 그렇게 많았을 줄이야. 기억하기에 수십 장은 되는 것 같다. 아빠는 형사의 계속되는 질문에도 멍한 채, 대답할 생각조차 없으신 듯 보였다.


"두 분이 각방을 쓰셨던 것으로 보이는데, 왜인가?"
"20년 넘었다. 아빠의 코골이 때문에 따로 주무시기 시작하셨다."
"어머니 곁에 있던 칼은 어디서 난 것인지 아느냐?"
"집에서 사용하던 식도다"
"뇌경색이라고 하셨는데 계단을 내려올 수 있나?"
"절뚝거릴 뿐이었고, 못 걷지 않으셨다. 보행보조기를 이용하면 걸음도 문제없었다"


형사의 심문조사는 30분 이상 이어졌다. 심문조사를 마친 형사는 심문내용을 기재한 피의자심문조서를 건네면서 진술내용을 읽어보고 사실관계와 다른 내용이 있으면 이의 제기를 하라고 했다. 아빠는 넋을 놓으신 채 여전히 아무 반응이 없으셨다.


할 수 없이 형사에게 양해를 구하고, 아빠에게 하나하나 읽어드리면서 대답을 확인했다. 피의자심문조서를 다 확인한 다음 아빠의 이름을 쓰고 사인을 대신했다. 피의자심문조서 작성을 모두 마친 형사는 장례식은 예정대로 진행해도 되지만 서류가 필요하다며 준비해달라고 했다.


무슨 소리지? 뭘 더해야 한다는 거지?


엄마의 사망 장소에서 '칼'이 발견되었기 때문에 부검을 해야 하고 그에 따른 서류를 제출해야 했다. 부검을 원하지 않는다고 말했지만, 유가족이 부검을 원하지 않는다고 부검을 피할 수는 없다고 한다. 필요한 서류를 제출해야 부검이 가능하고 부검을 하기 전까지 엄마는 염습(염)도 입관도 그 무엇도 하면 안 되었다.


엄마는 그 낯선 시체보관소에서 서울과학수사연구소로 출발하기 위해서 대기해야 했다. 부검을 마쳐야만 염습도 입관도 발인도 가능했다. 엄마는 돌아가신 후 이틀을 시체보관소에 있었다. 부검은 주말에도 가능했지만 병원과 관공서에서의 서류는 발급이 불가능했기 때문이었다.


피의자심문조사를 마치고 나서 배정받은 빈소에 가니 아침 9시쯤 되었다. 상조회사 직원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장례 절차 계약을 하려 했지만 계약의 주체이자 상주인 동생이 오지 않아 어떤 결정도 내릴 수가 없었다. 빈소에서 초제를 지낼 수도 없었다.


상주가 도착하는 대로 진행하기로 하고 아무것도 결정하지 못한 채 동생이 오기만을 기다리기 시작했다. 엄마의 죽음을 뒤로하고 동생이 사라진 지 3시간이 넘어가고 있었다.


소시오패스' s 자신의 이익을 위해 빈번하게 거짓말을 하고, 타인을 속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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