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 주기만 했던 엄마와 아빠의 내리사랑
부모님에게서 사랑이라는 호의만을 받으며 자라온 동생은 자신의 잘못을 모르고 자랐다. 부모님에게 대들어도, 기개가 좋다고 남자는 그래도 된다고 했고, 남매간에 싸워도 동생과 싸운 누나가 잘못했고, 친구와 싸워도 우리 아들은 그럴 아이가 아니라며 수습을 해주었다. 혼내지 않았다.
동생이 고등학생 때였다. 친구들과 싸움이 커져 몇몇이 입원을 했고, 당시에는 꽤 큰돈을 합의금으로 물어줄 상황이 되었었다. 어찌어찌 수습은 해주었는데, 동생이 아빠한테 그러더란다.
"아빠가 그때 수습안 해주셨으면 아빠와 아들 연을 끊어버리려고 했다."
18. 호의가 계속되면 권리인 줄 알아요.
아빠한테는 충격 그 자체였다. 아들이 곧 존재 자체인 아빠에게 그 말은 협박처럼 들렸고, 지금도 아들이 돈이든 뭐든 달라고 하면 연을 끊을까 봐, 아빠를 안 볼까 봐 눈치를 보신다. 엄마고 아빠고 그까짓 아들이 뭐라고, 이러고 사셨는지. 답답하다.
응석받이로 자라 온실 속 화초처럼 바람 불면 날아갈까 힘주면 부러질까 키웠으니 세상이 자기 기준으로 돌아가는 줄 안다. 다른 이의 감정 따위는 헤아릴 생각조차 없고 공감능력이 1도 없는 이기적인 어른으로 자랐다. 자기 뜻대로 되지 않으면 부모든 형제든 친구든 누구든 가리지 않고 화풀이를 해댄다. 부모님의 호의적이기만 했던 사랑이 만들어낸 괴물이다.
스스로 생을 마감하신 그저 안타깝기만 한 엄마다. 마지막 순간까지 아들을 기다렸을 엄마를 버려둔 채 사라졌다. 집안의 수저 하나까지도 지 마음대로 해야만 직성이 풀리는 동생이다. 엄마의 마지막을 챙기고 모셔야 할 그 아들이 마지막 순간에 엄마를 버리고 수천인지 수백인지 모를 돈을 택했다.
조의금을 아빠에게 드리지 않았고, 재산상속포기각서에도 사인하지 않았다. 엄마가 남긴 재산이라고는 얼마 안 되는 예금이 전부다. 수천인지 수백인지의 돈 때문에 엄마를 버려뒀던 아들이 예금 만기일에는 온다고 재산상속포기각서에 서명도 하지 않고 돌아갔다. 동생의 선택은 언제 어디서나 돈이 먼저이다. 그 돈이 뭐라고 이토록 아빠를 불안하게 하는지 나는 모르겠다.
고의라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엄마가 스스로 생을 마감하게끔 몰아간 것은 동생이라고 생각한다. 선택은 엄마가 했지만 원인은 동생에게 있다. 엄마가 아프게 기다렸을 때는 외면했던 아들이다. 엄마가 스스로 생을 마감하고 피가 낭자한 채 쓰러져있는데 버려두고 가버렸던 아들이, 예금 만기일은 잊지 않고 왔다.
예금만기일 아침이었다. 은행가게 되면 전화를 달라고 했다. 아빠는 불안하셨는지 동생이 오자마자 전화할 테니 꼭 전화받으라고 다짐을 받으신다. 출근하고 1시간쯤이나 지났을까 아빠로부터 전화가 왔다.
"OO이랑 예금 찾으러 은행 왔어"
올케한테 바로 전화를 했다.
"예금 건드리지 말고 아빠 다 드려. 조의금처럼 너희들 마음대로 하면 가만 안 있을 거야."
"저희들 마음대로 한 게 뭐가 있다고 그러세요?"
"마음대로 안 했으면 일요일에 조의금 영수증 다 가져와. 그럼 믿을게. 안 가져오면 너희가 꿀꺽해 버린 걸로 알 거야"
그렇게 끊어버렸다. 그리고 역시나 동생네는 오지 않았다. 기대도 하지 않았지만. 그날 저녁 퇴근 후에 남편과 아빠에게 갔다. 당연한 일임에도 불구하고 아빠가 너무나 고마워하신다. 예금 달라는 말 없이 찾는 것만 확인하고 바로 갔다고 너무 좋아하신다.
"고맙다, 고마워. 너희 아니었으면 OO이가 달라는 대로 줬을 거야. 진짜 고맙다."
"재산상속포기각서는 세무사랑 변호사랑 알아보는 중이래. 엄마 병원비 때문에 힘들었다고 이참에 보험도 들어놓자고. 진짜 고맙다. O서방 덕분에 아들한테 대접받는다. 애가 달라졌어, 180도 변했어"
돈이 많건 없건 잘났건 못났건 부모일 텐데 당연히 받아야 할 부모 대접을 이렇게 밖에 받을 수가 밖에 없다는 현실이 서글프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아빠와 엄마가 저렇게 키웠다. 이 모든 사태는 아빠와 엄마가 만들었다고 생각하지만 그렇다고 마냥 나 몰라라 내버려 둘 수도 없는 나도 답답할 뿐이다.
엄마는 세상에 없는데 시간은 잘만 흘러갔다. 하루 두 번씩 매일 아빠와 통화를 한다. 아빠도 씩씩하게 지내려고 하시지만 가끔씩 밀려오는 외로움은 어쩔 수 없으신지 우울해하신다.
그렇게 엄마가 돌아가신 지 반년쯤 지난 어느 날이었다. 여느 날처럼 퇴근 직전 전화를 드렸는데, 우물우물 뭔가 드시는 소리가 역력하다. 아빠의 평소 식사시간이 아니어서 여쭤봤다.
"아까 낮에 OO이랑 은행 가서 보험 가입했어. OO이 주거래은행이라는데 변호사랑 세무사가 은행에 있더라. 엄청 커. 큰 은행은 뭐가 다른가 봐. 지금 OO이가 집에 데려다줘서 같이 저녁 먹는 중이야."
"아빠 좋으신가 보다. OO이가 아들 노릇 했네. 맛있게 드세요."
부모님을 위한 보험 가입이 어려운 일은 아니지만 자식을 키우는 입장에서는 또 그렇게 쉬운 일만도 아니다. 아빠와 엄마는 당신들을 위한 보험 하나 없으시다. 없는 집 장남으로 동생들 건사하려(막내 삼촌과 나는 다섯 살 차이 밖에 안 난다) 자식 키우느라 보험은 생각도 못하셨었다.
그나마 20년 전 남편과 내가 가입해 드린 암보험 하나가 전부다. 동생은 부모님 보험을 가입해 드린 적이 없다. 건강보험도 나 몰라라 했다. 그런 아들이 아빠 보험을 가입해 준다니 그게 무엇이든 간에 좋으셨던 모양이다. 엄마 예금도 손하나 안 대고 고스란히 아빠에게 드렸으니 오죽 좋으셨을지 눈에 선하다.
보험 가입을 은행가서도 하는 사람이 실제로 있구나 싶었다. 나는 해본 적이 없으니. 방카슈랑스 상품이 워낙 많은 데다 사업하는 동생의 주거래은행이라고 하니 어련히 알아서 좋은 것으로 가입했을까, 그렇게만 생각했다.
의심이라도 해볼 걸 그랬다. 평생 안 하던 행동을 한 건데, 왜 의심할 생각을 못했는지. 그간 질리도록 겪었다고 생각했는데 나도 아직은 희망이란 게 있었나 보다. 엄마가 그렇게 세상을 떠나신 다음이니 하나뿐인 아빠한테라도 잘하려고 노력하나 보다 생각했다.
'죽은 사람은 죽은 사람이고 산 사람은 살아야지, 원래가 죽은 사람만 불쌍한 거다'라는 말 겪어보니 이것만큼 무서운 말도 없지 싶다. 엄마가 돌아가셨어도 입으로 밥은 들어갔고, 살아졌다. 살아지다 보니 그렇게 엄마가 돌아가신 지 2년이 지났다.
그리고 몇 달 전 아빠마저 돌아가셨다.
소시오패스's 스스로 ‘대단한 사람’이라고 믿는 ‘병적인 자기애적 인격장애’를 갖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