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 뜨거운 눈물일까.
미웠다. 보기도 싫었다. 하지만 아빠가 마지막 가시는 길이었다. 다투는 모습으로 보내드리기는 싫었다. 아빠는 오후 6시쯤 발견이 되셨고, 응급실을 돌다가 장례식장으로 향하셨다. 밤 11시가 훌쩍 넘은 시간이었다.
20. 뜨거운 눈물일까, 악어의 눈물일까?
부고 문자를 보내봐야 조문객이 올 수도 없는 시간이라 부고 문자는 아침에 보내기로 하고 동생을 불러 세웠다.
"너 할 말 없어?"
"뭘?"
눈을 까뒤집고 부라리는 동생의 그 눈은 예나 지금이나 소름이 끼쳤다. 미친 사람이 따로 없었다. 엄마가 그렇게도 싫어하는 그 눈, 어릴 때부터 동생은 자기 성질을 못 이기면 그렇게 눈을 까뒤집으며 입에 게거품을 물고 드러누웠다. 그래서 혼내지 못한 것도 있으셨다.
"엄마 돌아가신 날 집에 간다고 사라져서 여섯 시간이나 지나서 왔잖아"
"일했다. 그게 뭐?"
"일? 한두 시간도 아니고 여섯 시간 넘게?"
"그게 뭐? 어쨌다고? 작은아버지들한테도 말했어. 남들도 다 자리를 비운다더라. 겨우 그까짓 일로 화를 내는 누나가 이상하다는데, 그게 뭐 그렇게 큰 잘못이라고 난리를 쳐? 일하다 보면 그럴 수도 있는 거지."
그때 나갔다 들어오던 남편이 물었다.
"너, 어머니 어떻게 돌아가셨는지는 말했어?"
"비밀로 하기로 한 건데, 뭐 좋은 거라고 그걸 말해?"
그럴 줄 알았다. 자기가 잘못한 사실은 말하지 않는다. 언제나 그랬듯 동생은 자기가 잘한 것만 말하고, 자기 실수나 잘못은 감춘다. 그리고 자기가 피해자인 척 과장해서 말한다.
스스로 생을 마감하신 엄마를 내팽개쳐두고 6시간이나 나타나지 않은 사실은 제외하고 누나가 잠깐 자리를 비웠다고 자기에게 화를 냈다는 사실만을 말하고 다녔다. 여기에 아빠는 한 마디도 하지 못하셨음은 안 봐도 비디오다.
스스로 생을 마감하신 엄마를 비릿한 피 냄새가 진동하는 그 장소에 그대로 두고 사라졌던 사실을 그까짓 일로 치부해 버린다. 아빠도 나도 동생도 엄마의 임종을 지키지 못한 원죄로 부터 자유로울 수는 없다. 엄마를 홀로 외롭게 돌아가시게 만들었다. 그 순간 엄마가 얼마나 외롭고 무서웠을지 나는 감히 상상도 못 하겠다.
스스로 생을 마감하신 엄마를 두고 한두 시간도 아닌 6시간을 말도 없이 사라졌다. 그래놓고 그게 무슨 대단한 일이냐며 그까짓 일로 치부하며 악다구니를 썼다. 길게 말해봐야 소용없음을 알았지만 마지막으로 물었다.
"너, 우리한테는 집에 갔다온다고 하고 나갔어. 못 가게 했어? 가라고 했잖아. 그렇게 다녀왔으면 말 안 했어. 근데 너 6시간이나 넘어서 왔어. 그날밤 조문객들한테 말하는 거 분명히 들었어. 너, 수천, 수백의 손해가 생각나서 공사현장으로 갔다고. 그렇게 쓰러져 있는 엄마를 보고도 돈 생각이 났어?"
"아빠가 차가운 침대 위에 계시다고 빨리 옮겨 달라고 소리친 게 너야. 엄마는 생각 안 났어? 목숨 끊고 누워있던 엄마는 보이지도 않았어? 엄마는 차갑지 않았을까 봐? 그 순간에도 네 손해만 생각났지? 차갑게 굳어있는 엄마를 내팽개치고 말도 없이 사라졌다가 와놓고 그게 그까짓 일이라고?"
"남들도 다 그런다고? 그 사람들은 임종할 때 자리를 지켰던 사람들이야. 엄마처럼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게 아니라고. 누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부모를 두고 자리를 떠? 그것도 돈 때문에 손해 보기 싫다고? 엄마는 차가운 시멘트 마당바닥이었어. 피비린내가 코를 찔렀다고."
"우린 임종도 지키지도 못했어. 엄마는 그 새벽에 혼자 돌아가셨어. 최소한 네가 아들이라면 그 차가운 시멘트 마당에 엄마를 버려둔 채 가버린 것만이라도 용서를 빌어야 하지 않아? 나는 다른 건 다 제쳐두고 그 사실만으로도 네가 용서가 안돼"
봇물 쏟아지듯 맺혀있던 말이 쏟아져 나왔다. 아빠를 생각해서 참고 또 참았었다. 하지만 이젠 마지노선이었던 아빠마저 없다. 나는 더 이상 참을 이유가 없었다. 그때였다.
"잘못했어. 내가 정말 잘못했어."
동생은 갑자기 눈물, 콧물을 뚝뚝 떨어뜨리며 울었다. 조금 전까지도 두 눈을 까뒤집고 물병을 집어던지며 발광을 하던 동생이 갑자기 잘못했다고 빌고 있다. 진심일까? 아니면 재한테는 진짜 무슨 울음버튼이라도 있나? 진심이 아니라도 그 순간만은 진심이라고 믿고 싶었다.
아니 사실은 진심이든 거짓이든 그건 중요하지 않았다. 단지 아빠의 장례식을 무사히 치르고만 싶었다. 그렇게 거짓 평화가 시작되었다.
소시오패스's 자신의 잘못이 들통나면 거짓으로 후회, 반성을 하거나 동정심에 호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