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 수목장, 부부합장, 봉안당
시간이 되었고, 아빠의 화장이 시작되었다. 불구덩이 속으로 들어가는 아빠를 보면서 여전히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 그냥 그렇게 멍하니, 주저앉아있었다.
22. 아빠가 떠났다.
그냥 그렇게 멍하게 있는데 첫째 작은아버지가 나를 불렀다. 아빠와 첫째 작은아버지 관계는 다른 작은아버지들보다 조금 더 애틋했다. 연년생으로 태어나 일찍 돌아가신 할아버지를 대신해 10살 때부터 가장 노릇을 해오셨기에 서로가 남달랐다.
수목장이 영 마음에 걸리셨던지 상례사에게 따로 이것저것 물어보셨는데 우리가 알던 것이랑 다르니 자세히 알아봐야 할 것 같다고 하셨다. 우리가 알고 있던 수목장이 아니었다. 우리는 수목장에 대해 무지했고 상례사는 수목장에 대한 자세한 설명을 생략했다.
수목장(樹木葬)은 입지가 좋은 곳에 나무를 심어 가꾸고 그 뿌리 부분에 화장한 고인의 뼛가루를 묻는 방법을 말한다. 수목장은 나무 한 그루에 한 분(또는 부부)을 모시는 것으로만 알고 있었다. 그런데 한 분을 모시는 수목장은 사설수목장이고 공설수목장은 나무 한 그루에 여섯 분까지 모신다고 한다.
수목장의 환상에 혹한 우리는 단순하게 부모님의 장지를 결정했다. 경솔하게도.
우리는 공설수목장이었다. 뼛가루도 자연분해함에 담아서 모시는 것이 아니라 나무 아래 구덩이를 파서 묻는 것이었다. 첫째 작은아버지는 이 이야기를 듣자마자 우리를 불렀지만 거나하게 술이 오른 채 화장장 앞에서 잠이 들어버린 동생은 코만 골고 있었다.
부부합골용 수목장은 별도로 없어서 뼛가루의 양이 수목장 1구에 넘친다고 했다. 그럼 남는 뼛가루는 어쩌냐 하니 그냥 뿌려버린다고 한다.
구덩이를 깊게 파서 넣어달라 해도 안된다.
수목장 1구를 더 살 테니 나란히 넣어달라 해도 안된다.
수목장을 취소하고 납골당으로 모셔달라 해도 안된다.
정말 미쳐버리는 줄 알았다.
사정하고 화도 내고 빌어도 봤지만 안된다는 말만 돌아왔다. 어찌할 바를 몰라 주저앉아버렸다. 올케는 입을 다물었고 동생은 코만 골고 있었다. 마치 남의 일인 양. 그때 다른 상례사가 나를 불렀다. 접수실에 수목장을 취소하고 납골당으로 변경해 달라고 사정하고 왔으니 조금만 기다려달라고 한다.
원칙상 변경은 불가능하지만 사정이 그러하니 상관한테 보고해 보고 알려준다고 했단다. 수목장에 무지했던 유가족도 문제지만 상조회사 상례사의 설명부족도 문제였다고 자신들의 설명 부족으로 유가족에게 평생의 한을 줄 수는 없다며 설득했고, 우리에게도 죄송하다고 사과를 했다.
그 상례사의 잘못이 아님에도 최선을 다해 주셨다. 우리의 사정을 이해해서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허가가 났고, 아빠와 엄마는 납골당에 함께 안치될 수 있었다.
서류 누락과 수목장 때문에 소란은 있었지만 다행히 잘 마무리가 되었고 엄마는 계시던 납골당을 떠나 새로 지은 깔끔한 신축 건물에 층수도 적당한 곳에 아빠와 함께 안치될 수 있었다. 일종의 로열층이라고나 할까? 해도 잘 들었다. 다행이었다. 두 분이 함께 계시니 더 이상 외롭지 않겠거니, 위안을 삼았다.
운구차를 타고 모두 장례식장으로 돌아왔다. 각자 집으로 떠나고 있었다. 그때, 그렇게도 싸늘했던 작은아버지들이 내게로 오셔서는 '고생했다'며 안아주셨다. 처음 장례식장에서 뵈었을 때와는 180도 달라진 모습이었다. 일련의 장례과정을 고스란히 지켜보셨던 작은아버지들과 작은어머니들이다. 작은 어머니가 내게 다가오셨다.
"여러 가지 일이 많았겠지만 OO이랑 사이좋게 지내. 세상에 하나뿐인 동생이잖아."
"작은엄마, 엄마는 부검을 하셨고, 아빠는 부검을 안 하셨어요. 두 분 모두 집에서 돌아가셨는데도요"
"하지만 어찌됐든 아빠 장례 모시기 전에 이야기하고 풀었어요. OO이도 잘못했다고 했어요"
작은어머니는 놀라신 듯 두 눈이 동그래지셨만 더 이상 묻지 않으셨고 나도 더 이상 말하고 싶지 않았다. 동생이 엄마 돌아가신 후 무슨 말을 어떻게 했을지 짐작이 안 되는 것은 아니었지만 잘못했다고 사과도 한 마당에 더 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렇게 마무리를 하고 집으로 왔다.
피곤함이 밀려왔지만 잠은 오지 않았다. 자정이 넘어가도록 눈만 감은 채 뒤척이고 있다. 남편이 코 고는 소리가 자못 크게 들렸다. 그때였다. 갑자기 낮에 봤던 목격자 진술서가 머리를 스쳐지나갔다. 목격자가 달랐고, 사망장소의 거주자가 달랐던 목격자 진술서. 싸늘한 무언가가 등줄기를 스쳐지나갔다.
벌떡 일어나서 거실로 나갔다. 새벽 1시였다.
소시오패스's 자신의 행동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고, 타인에게 책임을 전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