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 대체 왜 그런 걸로 거짓말을 한다니?
한숨도 못 잔 거 같은데 어느새 아침은 밝았고 정신만은 오히려 더 또렷했다. 아빠의 35재 아침이다. 우리는 엄마가 다니시던 절에 위패를 모셔두었기 때문에 절로 향했다. 그 절에서 49재도 지내기로 했다.
24. 도둑놈이 제 말에 잡힌다.
첫째 작은아버지와 작은어머니를 절에서 만났다. 그의 악의적인 이야기들이 많았을 텐데도 두 분은 언제나처럼 따뜻하게 나를 맞아주셨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35제가 시작되었고 주지스님께서 목탁을 치시며 불경을 읊기 시작하셨다.
뜻도 모를 말이었지만 아빠가 좋은 곳으로 가시길 바라는 마음으로 절을 하고 기도를 올렸다. 몇 번의 절을 하고 몇 번의 기도를 했는지 모르겠다. 35재가 끝이 났고 나는 눈물 한 방울 나지 않았다. 그도 울지 않았다. 오직 첫째 작은 아버지만이 흐느껴우실뿐이었다. 감사했다.
35제를 마치고 떠나려는데 그가 49재 계약하러 가자며 불렀다. 지가 언제부터 나랑 같이 같다고? 엄마 때는 부르지 조차 않더니만?. 바로 회사로 들어가 봐야 하니 엄마 때처럼 네가 알아서 하라고 했다. 그때 작은어머니께서 같이 가자고 내 손을 잡아끄셨다.
나를 부른 이유를 알았다. 49재 비용 때문이었다. 결제는 오늘 하기로 하고 일단 전화로만 계약을 한 상태였다. 계약금을 치르지 않아도 35재는 치러주나 보다. 조의금을 내가 가져와버렸으니, 제 돈내기는 싫고 그래서 내가 필요했던 거다. 하지만 나는 조의금을 가져가지 않았고 빈손이었다.
어찌 됐든 듣고 있었는데 49재를 이야기하는 절의 사무원장과 그가 하는 이야기가 달랐다. 그는 엄마의 49재를 치렀다고 했고 사무원장은 그 49재가 아니라고 한다. 49재가 다 같은 49재가 아닌가? 엄마를 위해 지낸 49재는 무엇이고 그 49재는 무엇이란 말이지?
도통 뜻 모를 이야기라 이해가 가지 않았다. 엄마는 불교신자셨지만 나는 관심조차 없었고 결혼한 이후로는 기독교인 시댁 덕에 더더욱 불교와는 멀어졌다. 그때 가만히 듣고만 계시던 작은어머니께서 물었다.
"너 엄마 때 일주일마다 와서 제사 지냈다고 하지 않았어?"
"네, 일주일마다 와서 제사 지냈어요."
"칠칠재예요? 아니에요?"
"누나 얼른 49재 비용 내고 가자. 회사 가야 한다며"
그가 말을 돌렸다. 거리끼는 게 있다는 말이다. 칠칠재는 또 뭐란 말이지? 도통 이해가 가지 않았다. 작은어머니가 다시 한번 물었다. 그때였다. 듣고 있던 사무원장이 끼어들었다.
"7일마다 오셔도 되고요, 매일 오셔도 돼요. 아침저녁으로 오셔도 되고요."
"지금 아드님께서 계약하셨던 어머님 건은 제사 2번인 49재고요. 3백만 원 지불하셨어요."
"하지만 지금 어르신께서 말씀하시는 칠칠재 49재는 주지스님 주관하에 7일마다 제사 7번을 지내는 거고 550만 원을 내셔야 하는 거예요."
엄마는 불교신자였다. 불교에서는 자신의 목숨을 스스로 끊는 경우 그 업보가 너무 커서 환생도 하지 못하고 구천을 떠돌거나 지금보다 더한 고통의 삶으로 환생한다고 여긴다. 스스로 생을 마감한 엄마를 위한 천도재였다. 그런 엄마의 넋을 위로하기 위한 49재였다. 어이가 없을 뿐이었다.
엄마는 어려서부터 그의 손을 잡고 절을 다녔다. 무속에서는 탯줄을 목에 감고 태어난 아이는 칠성줄이 세다는 속설이 있었고 엄마는 무속신앙을 믿는 분이셨다.
그리고
그는 탯줄을 두 번이나 목에 감고 태어난 아이였다.
무속에서 칠성신은 인간의 수명과 길흉화복을 관장하는 천신을 말한다. 칠성줄이 센 아이는 사주에 나쁜 살들이 잔뜩 낀 채 살아가게 되고 남보다 힘든 일을 많이 겪는 팔자라고 한다. 이런 아이들은 평생 간절히 신께 기도를 드려야 안 좋은 기운을 소멸시킬 수 있다고 믿었고 엄마는 평생 그를 위해 절을 다니며 기도를 했다.
그리고 그도 불교신자다. 자기를 위해서 평생 공을 드리고 기도를 드리던 엄마를 위해 그는 250만 원이 아까웠나 보다. 설마 엄마를 위해 마지막까지 아까워하리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내 돈도 가져갔고, 엄마의 조의금도 가져갔다. 내가 아빠에게 드렸던 보험금도 가져갔다. 아빠의 집도 가져갔다. 예금도 가져갔다. 그런데 엄마와 아빠를 위한 그 모든 일에 그는 그의 돈을 단 한 푼도 쓰려하지 않았다.
그는 7일마다 엄마의 49재를 지내러 다녔다고 했고 아빠는 그저 고마워만 하셨었다. 아빠를 비롯한 모든 사람들에게 550만 원을 들여서 일주일마다 절에 가서 엄마를 위해 제사를 지냈다고 떠들고 다녔다. 병원비 천만 원처럼 49재마저도 거짓말이었다.
제사를 2번 지내든 7번 지내든, 지내지 않든 아무도 욕하지 않는다. 그저 내 마음 편하자고 내 부모 위하자고 지내는 제사였다. 그런데 그것마저 거짓이었다. 돈은 아깝고, 장한 아들 코스프레는 하고 싶고 그런 건가?
엄마는 지극정성으로 제사를 지냈다. 제수 음식은 가장 좋은 것, 가장 큰 것, 가장 신선한 것으로 골라 정성을 다해 음식을 차렸다. 엄마의 그런 정성에는 그를 위한 마음이 전부였다. 그런 엄마를 평생 봤으면서 스스로 목숨을 끊은 엄마의 49재 비용마저 아까와할 거라고는 예상조차 못했다. 병원비가 아까워 엄마를 죽음으로 몰았던 그임을 내가 잠시 망각하고 있었다.
떠나는 나를 향해 그는 결제를 하고 가라며 불러 세웠다. 현금이 없으니 카드로 결제하고 영수증을 보내라고 했다. 보내줄 생각은 전혀 없었지만. 그때였다. 그는 계좌번호가 적힌 종이를 흔들어댔다. 그러거나 말거나 바쁘다고 절의 사무실을 나서는 순간 작은 어머니도 따라 나오셨다.
"아니, 재는 지 입으로 7일마다 와서 제사를 지냈다고 골백번도 더 말했어. 그래서 난 칠칠제 49재 지낸 줄 알았지. 대체 왜 그런 걸로 거짓말을 한다니?"
도둑놈이 제 말에 잡힌다더니 진짜로 잡혔다. 나에게 되묻긴 하셨지만 작은어머니도 짐작하셨을 거다. 돈 때문이라는 것을. 엄마와 아빠는 그에게 부모가 아닌 그저 돈이었다. 돈 때문에 자신을 퇴원시킨 것 같다는 엄마의 말이 맞았음을 그는 다시 한번 증명해 주었다. 다음에 내가 하는 말이 무엇이건, 작은어머니는 이 순간을 기억하실 테니.
엄마와 아빠, 나 말고는 누구에게도 보이지 않고 잘 숨겨왔었다. 돈을 위해서라면 그 누구에게도 친절했으며, 자신을 잘 포장했고, 필요한 것을 얻을 때까지 잘 감춰두었던 그의 본성이 우연찮게 드러났을 뿐이다. 안에서 새는 바가지 밖에서라고 안 샐까.
차에 타서 출발하려는 그때였다. "띠링" 소리가 들렸다. 그가 보낸 문자였다. 그 돈마저 아까웠나? 꼭 그렇게 다 가져야만 그는 속이 후련할까? 헛웃음만 나온다.
ㅇㅇ불교배단 ㅇㅇ은행 124ㅡ456ㅡ7890 300만. 카드안됨
소시오패스's 자신의 이익을 위해 빈번하게 거짓말을 하고 타인을 속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