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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내 옆의 소시오패스

26. 에필로그_ 절연(絕緣);인연이나 관계를 완전히 끊다.

by 마흔아홉

Sociopath, 소시오패스는 유전적인 요인보다는 환경적 요인에 의해 만들어진다고 한다. 충분한 보살핌을 받지 못한 어린 시절을 보낸 아이들이 스스로를 돌보기 위해서 약점과 감정을 숨기며 비도덕적인 행동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26. 에필로그_절연(絕緣);인연이나 관계를 완전히 끊다.절연(絕緣);인연이나 관계를 완전히 끊다.

절연(絕緣);인연이나 관계를 완전히 끊다.

부모님은 그에게 일방적인 사랑만을 주셨다. 그는 사랑이라는 보살핌은 차고 넘치도록 받았지만 옳고 그름에 대한 보살핌은 받지 않았다. '사내는 도둑질 빼고 다 배워라'며 그의 등을 떠밀어주기까지 하셨다. 넘치는 아들 사랑은 가족으로서의 책임은 저버린 채 권력만을 그에게 주었다. 그는 그렇게 독불장군으로 자랐다.


'사내는 도둑질 빼고 다 배워라'는 옛 선조들의 혜안이 담긴 속담은 나의 부모님의 비틀린 사랑 아래 '아들은 도둑질 빼고 세상의 모든 나쁜 일을 다 해봐도 괜찮다'는 형태로 변질되어 갔다.


클럽을 드나드는 아들을 감싸 안았고, 친구들과의 싸움으로 문제가 커지자 대출을 받아 합의금을 주고 무마시켰다. 밤늦은 새벽 여자친구를 자신이 방에 몰래 들였을 때는 사내라면 그럴 수도 있다며 눈감아주었다. 미성년이 지켜야 할 규범 같은 건 없었다. 이 모든 일은 성인이 아닌 그의 중고등학생 때 일어난 일이다.


몇 번이고 반기를 들었지만 씨알도 안 먹혔다. 동생을 혼내지도 다그치지도 않고 그저 감싸기만 했다. 오히려 누나가 되어서는 동생을 이해하고 편을 들어주지는 못할 망정 고자질을 하고 이간질시킨다며 되려 나를 혼내셨던 분들이다.


성인이 되고 그는 몇 번의 음주운전으로 면허를 박탈당했었다. 결혼을 하고 가정을 꾸렸음에도(사실 끼리끼리 모인다는 말, 올케 덕에 마흔 넘어서 실감했다) 몇 번의 외도를 했고 그걸 또 자랑삼아 엄마에게 떠들었던 사람이 바로 그다. 물론 엄마는 그를 꾸짖지 않았고 들키기 전에 정리하라고만 하셨다.



옳고 그름을, 해도 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을 가르쳐야 함에도 불구하고 가르치지 않았다. '왜 그러냐고 나를 다그치고 가르치던 것처럼 가르치라'고 하면, '아들내미 기죽이면 안 된다'며 손사래를 치신 분들이다. 사랑이 아닌 사랑을 빙자한 방임일 뿐이다.


오로지 사랑만을 쏟아부었던 부모님의 사랑 덕분인지 그는 친절했고 다정했으며 사교적이었다. 그러나 자기 뜻대로 일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폭언과 분노를 감추지 않았고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서라면 거짓말을 서슴지 않았다. 입에 발린 그럴싸한 말을 늘어놓으며, 돈을 쓰는데도 인색하지 않았다.


남자는 도둑질만 빼고 다 해도 된다는 비호 아래 자랐으니 옳고 그름의 기준이 생길 수가 없다. 자기가 하고 싶은 것과 가지고 싶은 것, 가져야만 한다고 생각한 것들만을 보고 살았다. 오로지 자기 위주의 세상을 살아온 그에게 자신을 빼고 돌아가는 세상은 있을 수 없는 세상이었을 뿐이다.


스스로가 모든 상황의 주도권을 가져야만 직성이 풀리는 독불장군이 된 그는 부모님 중 그 누구도 통제하지 못했다. 말이 안 되는 상황에 화를 내고 조율을 요구해도, 그와의 작은 다툼에도, 잘잘못을 가리지 않았고 가질 필요도 없었다.


"손윗사람이 이해해야지. 너는 왜 그렇게 이해심이 없니?."

"좋은 게 좋은 거다 하고 그냥 이해해 줘. 가족이잖아. 누나잖니"


이게 이해심으로 해결되는 일일까? 반발과 의구심이 끊임없이 일어났지만 부모님은 그의 잘못된 행동에 대해 그 어떤 제지도 하지 않았고 오히려 편만 들었다. 나는 점점 지쳐갔다. 그냥 포기했다. 그와 엮여봐야 나만 나쁜 년이 되는 세월을 너무 오래 겪다 보니 그와는 어떤 상황에서도 엮이지 않는 게 최선이라는 사실을 깨달았을 뿐이다.


그렇게 나는 가족의로서의 그의 손을 놓기 시작했다. 결혼을 하면서 점점 더 멀어지려고 했다. 내가 그렇게 떠나가려고 노력하는 사이, 내가 보지 못하는 곳에서 부모님을 함부로 하는 그의 행동은 도를 넘어갔고, 엄마는 우리 집으로 들이닥치는 날이 갈수록 늘어났다. 그렇게 엄마가 찾아오는 횟수는 늘어만 갔었다.



나는 부모님의 편향된 아들 사랑이 그와 같은 사회적 괴물을 만들어 냈다고 생각한다. 그는 사업적으로 많은 돈을 벌었고, 지금도 잘 살고 있다. 그럼에도 재산에 대한 욕심은 끝이 없었다. 그는 부모님의 집을 빼앗았고 상속인으로서의 정당한 나의 권리마저 빼앗아갔다.


내 세대는 딸 셋에 막내아들이 흔하던 시대였다. 그때 태어난 이들이 모두 그와 같을까? 그 시대 그렇게 키워졌던 일부는 소시오패스적 성향을 가진 사람으로 자란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분명한 건 아닌 사람이 더 많다는 사실이다. 소시오패스는 전 국민의 100%가 아닌 전 국민의 25%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한 친구의 엄마는 당신께서 딸이라서 받았던 차별을 당신의 딸들에게 물려주고 싶지 않아서 아들을 사랑했지만 덜 표현하려고 더 엄하게 아들을 대했다고, 가끔은 아들한테 미안한 생각이 든다고 하셨단다. 그 아들은 평범하고 건강한 사회인이 되어있다.


나의 부모님도 친구의 엄마 같은 생각을 단 1%라도 가지고 계셨다면 그는 괴물이 되지 않았을까?

그럼 엄마는 지금까지 살아계실 수 있었을까?


그는 나에게 '독불장군, 안하무인, X가지 없는 그냥 그런 나쁜 놈'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그저 그렇게 단순하게만 나쁜 놈이라고 생각했던 그가 달리보이게 된 건 옥탑방의 문제아들을 보면서 였다. 그렇게 알게 된 소시오패스는 충격 그 자체였지만 그의 말도 안 되는 행동을 이해하는 계기도 되었다. 도저히 이해할 수 없던 수십 년간의 그의 모든 행동들이 소시오패스라면 이해가 가능했다.



소시오패스는 행동 억제 수준이 비정상적으로 낮아서 위험하고 충동적인 행동을 자주 한다. 환경적으로는 사회화를 배우는 과정에서 규범을 습득하지 못하고 품행장애가 발생한다. 넘치는 사랑만을 주고 옳고 그름을 가르쳐주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어린 시절의 바람직하지 않은 경험과 사건인격 발달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소시오패스 성향을 가진 이들은 타인의 감정을 이해하고 공감하는 데 부족함이 있다. 이런 사람들은 교묘하게 다른 사람들을 조종하고 이용하기 위한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 그들은 자기중심적이며, 자신의 행동에 대한 책임을 지지 않으려는 경향이 있다. 40년을 보아온 그와 너무도 닮아있다.


그래서 나는 그가 소시오패스라고 생각한다.


혹시라도

평생을 함께 한 가족이 수상하다?

내 곁의 누군가가 의심스럽다?

입에 발린 말이 일상이고 약속을 밥 먹듯이 어긴다?


이런 이가

당신이 아는 누군가라면


부디

당신의 촉을 믿기를, 진심으로 바라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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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토록 친밀한 배신자] 친하니까 소시오패스가 아니다는 착각을 버려라. by 마사 스타우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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