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 1분이라도 늦으면 걱정인 분인
엄마가 돌아가신 이후 매일 같은 시간에 아빠에게 전화를 드린다. 아빠도 매일 같은 시간에 걸려오는 나의 전화를 받기 위해 기다리셨다. 혹시라도 전화를 놓치면 득달같이 전화를 하는 분이셨고, 내가 1분이라도 늦으면 왜 전화 안 하냐고 무슨 일 있느냐고 걱정을 하시는 분이다.
19. 아빠가 전화를 받지 않는다.
그런데, 그날따라 이런 아빠가 전화를 받지 않는다. 주무시나? 올 겨울 독감으로 인해 한 달 가까이 앓으셨다. 아빠도 감기 때문에 많이 힘들어하셨긴 하다. 컨디션이 안 좋아도 10번 이상 전화를 하는데 못 받으신다? 방전이 돼서 못 받으시나 했지만 전화벨은 계속해서 연결되었다.
아빠 핸드폰에 '도와줘'라는 위치추적 앱을 설치했다. 혹시라도 외부에서 쓰러지시기라도 할까 봐. 하지만 '도와줘'에서도 아빠는 계속 집이었다. 갑자기 불안해졌다. 옆집 아저씨에게 전화를 드렸다. 아빠가 전화를 안 받으시니 벨이라도 눌러달라고 기척이 없으면 문이라도 두드려달라고 부탁드렸다.
남편에게 연락을 해 친정에서 만나자고 했다. 출발하려는 찰나 아빠에게 전화가 왔다. 다행이다 싶은 마음에 시동을 끄고 일단 전화를 받았다.
"아우, 아빠 놀랐잖아요. 무슨 일이에요? 전화 안 받고?"
"핸드폰 주인 따님이신가요?" 수화기 너에서 모르는 여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너무 놀랐다.
"네? 네. 저희 아빠 핸드폰이에요, 무슨 일 있어요? 다치셨나요?"
"네, 여기 남자분께서 119 부르셔서 왔는데, 지금 아버님 심정지 상태고 CPR 중이에요. 일단 CPR 하고 OO병원 응급실로 갈 테니까 그리로 오세요."
정신이 아득해졌다. 심정지? CPR? 심폐소생을 왜? 남편한테 함께 가자고 했다. 도저히 운전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남편과 가고 있는데 다시 전화가 왔다. A병원 응급실이 거절해서 B병원으로 간다고, 내비게이션을 찍고 출발하려는데 또다시 전화가 왔다. B병원 응급실도 아빠를 받을 수 없다고 하니, C병원 응급실로 오라고 한다.
응급실로 가는 도중 남편이 동생한테 전화를 하려고 한다. 나는 하지 못하게 말렸다. 알릴 가치조차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남편은 그러면 똑같은 사람이라고, 아버님 소식은 알려야 한다며 전화를 했다.
"C병원 응급실로 와. 아버님 지금 심정지 상태로 119 타고 가시는 중이야"
"아버님 심정지 상태로 오셔서 손을 쓸 수가 없었습니다. 돌아가셨습니다. 들어가 보세요"
응급실에 도착하자 의사가 우리를 불렀다. 좁은 이동형 침대에 아빠가 누워계셨다. 하얀 천이 아빠를 덮고 있었다. 나는 그 천을 들춰 볼 용기가 나지 않았다.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은 순간 삐죽이 나와있던 툭하니 떨어져 있는 아빠의 손이 보였다. 너무 찼다. 얼음도 이보다는 체온이 느껴질 듯싶었다. 소리도 울음도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다. 멍할 뿐이었다. 그렇게 주저앉아 있었다.
등뒤로 대성통곡 소리가 들려왔다. 뒤이어 도착한 동생이 아빠를 보자마자 울음을 터트린 거였다. 엄마가 돌아가셨을 때도 똑같이 들렸던 그 울음소리, 그리고 바로 사라져서 잊으래야 잊을 수 없었던 그 울음이었다.
아침에 통화를 할 때만 해도 감기가 다 나은 것 같다며 좋아하셨다. 생각난 김에 이발을 하러 동네 이발소에 가신다고 하셨다. 말끔하게 이발을 하시고는 귤 한봉다리와 맥주를 사서 오후 2시쯤, 옆집 아저씨와 인사까지 나누셨다고 했다. 그것이 아빠의 마지막 모습이었다.
아빠는 귤 한봉다리, 맥주 한 캔, 외출할 때에 입으셨던 패딩점퍼를 그대로 입은 채 심장마비가 왔고 그대로 쓰러지셨나 보다. 그 상태 그대로 심정지가 오셨고, 내가 전화드릴 때까지 그 자리에 그대로 계셨던 모양이다. 낮에 누구라도 아빠의 집에 갔었더면, 발견이 빨랐었다면, 아빠의 곁에 누구라도 있었다면, 나라도 전화를 조금 빨리 했었더라면... 그렇다면 아빠는 살아계실 수 있었을까?
엄마가 돌아가셨을 때도 아빠가 돌아가신 지금도, 동생은 여전히 대성통곡을 한다. 난 여전히 울음이 나오지 않고 멍할 뿐이다. 덜 슬픈 걸까? 모르겠다. 그냥 멍하기만 하다. 병원에서의 일을 마무리 짓고 장례식장으로 향했다.
소시오패스's 거짓말, 위장, 감정 조절에 능숙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