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뚝뚝한 위로법
체온의 힘은 무섭다.
아직은 추위보다 더위가 강했던 그 계절에 엄마는 떠났다.
남편은 바빴고, 큰 애는 군 복무 중이었다.
친구들도, 지인들도 모두가 각자의 사정으로 바쁜 계절이었다.
심지어 코로나로 만남조차 쉽지 않았다.
아직, 어렸던
학교와 학원, 집만 드나들던 둘째만이 집에 있었다.
엄마가 떠났던 그 계절
시도 때도 없이 울음은 비집고 나왔고, 그날도 어김없었다.
혹여라도 방에 있는 둘째에게 들릴까,
베란다에 숨어 울고 있는데
둘째가 말 한마디 없이 슬그머니 다가왔다.
어디선가 울음소리를 들었던가보다.
왜 우냐고 묻지도 않았다. 말도 없었다.
그저 울고 있는 나의 등에 가만히 자신의 등을 대고는 앉았다.
한마디 말도 없이.
둘째는 그렇게 앉아서 게임을 했다.
진짜로 게임만.
지금에 와서 생각하면
진짜 어이없기는 한데,
그때는 말없이 등을 내어준 둘째 때문에 그 시간을 견뎠다.
둘째는 그 흔한 위로도 없이,
같이 울어주지도 않는 그저 한없이 무뚝뚝한 제 아빠처럼
그렇게
그저 말없이 등을 대고는 게임만 했다.
근데, 그때 그게 얼마나 커다란 위안을 주었는지 둘째는 알까?
그랬던 둘째가 지금은... 없다.
.
.
.
대학에 갔다.
그래선가 요상스레 더 심란스럽고 허전하다.
지금은 그때처럼 서러운 울음은 나지 않는다.
하지만 나는,
오늘도 그때의 그 둘째의 등이 그립다.
나는 그때 알았다.
사람의 체온이,
온기가
얼마나 큰 위안일 수 있는지를.
그래서
엄마가 떠나고 난 후 혼자 밤을 지새우던,
엄마가 없었던 아빠의 그 짧았던 기간의 삶이 얼마나 쓸쓸했을지
토막잠 밖에 못 잔다며
밤마다 깨서 술 한잔 마시지 않고는 다시 잠들 수 없어 괴롭다던
그때의 아빠가 얼마나 서러웠을지
지금은 조금이나마 알 것 같다.
왜 그렇게 엄마를 따라가고 싶다고 하셨는지 알 것 같아서
그 마음이
너무나 아프다.
헤어지려고, 헤어지고 싶어서 뭐든 하고 싶은데 여의치가 않다.
이것저것 헤집어보고 있는 나에게
둘째로부터 카톡이 온다.
"엄마 이번 주말에 가요~"
다가오는 주말이 기다려진다. 며칠 안 남았다.
그렇게 나는 충전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