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괜찮다. 앞으로도 괜찮을 것이다.
어제 무엇을 했는지, 오늘 뭘 했는지
일주일 전에는 무엇을 했는지 기억이 잘 안나는 요즘이다.
나이 탓도 있을 테고 때우듯 하루를 보낸 탓도 있을 테다.
시도 때도 없이 고개를 들던 우울감은 사그라든 것 같은데
하루하루가 어떻게 지나갔는지는 모르게 지나간다.
불과 1~2년 전까지만 해도 지출 기록 한 줄만으로도
그날 무엇을 했는지 금세 기억해 내곤 했는데
이제는 아무리 들여다봐도 가물가물하다.
오래전,
엄마와 아빠의 기억들은 여전히 선명한데 말이다.
의미 없이 그저 흘려만 보낸 시간이라 그런지,
때우듯이 보내서 그랬는지는 몰라도
혼자 남는 시간을 어찌해 보려 보낸 시간들에 대한 기억이 잘 안 나는 것 같다.
무작정 시작했던 베란다 텃밭은
나름 순항 중이라 생각했는데 섣부른 과욕이었나 보다.
두어 번 수확도 해봤고 그사이 텃밭 친구들도 늘어났지만
어느 순간 흐물흐물해지더니 남아나질 않았고
고추 모종은 제법 자라길래 열매가 열리나 기대가 컸는데
어느 순간 진딧물에 점령을 당하더니
딱 한 친구만 남았다. ㅜ.ㅜ
그마저도 위태롭긴 매한가지만...
그렇게 우리 집 베란다에는 데려온 친구들보다
안녕을 고한 친구들이 더 많게 되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사하게도 잘 자라주는 몇몇 친구들이 있다.
그사이 꽤 많은 시도를 해봤다. 뜨개질도 그중 하나였다.
뜨개질 장인인 친구로부터 코 잡기를 배웠고
겉뜨기, 안뜨기를 시작했는데
참을성이 부족한지, 집중력이 부족한지
코는 수시로 빠지고 모양은 삐뚤어지고... 처참했다.
한 줄로만 떠도 성공했다는 목도리조차
삐뚤빼뚤에 듬성등성 빠져버린 코로 인해 실패했다.
수세미 정도로나 쓸 수 있는 것도 다행이었다.
땜질하듯 하루하루를 보내는 것은 이제 그만해야겠다.
꾸준히 집중할 수 있는 것에 도전해보려고 한다.
머릿속에 잡념이 몰아칠 때는 틈을 주지 않는 것이 편하다.
정신의학자들이나 용감한 많은 이들이
도망가지 말고 맞닥뜨려서 극복하라 하지만
그 사이 다치는 마음도 나는 힘이 든다.
버림으로써 피하고, 피함으로써 나를 보호하기로 했다.
그저 하루를 열심히 살아냄으로써 극복하려고 말이다.
맞닥뜨림이 언제나 옳은 답은 아니므로...
권민창 작가는 자신의 저서 "잘 살아라. 그게 최고의 복수다"에서 이렇게 말했다.
나를 힘들게 하는 사람들에게 하는 최고의 복수는 무관심이다. 마치 세상에 없는 사람 취급하며 내 삶을 살며 내 인생을 가꿔 나가면 된다
그렇게 열심히 살다 보면 노자의 말씀처럼
"언젠가는 원수가 죽어서 강물에 둥둥 떠내려 올 것이다"
그렇지 않다 하더라도
무시함으로써 버림으로써 그리고 연연하지 않음으로써
나는 이미 복수한 것일 테니 말이다.
며칠 전 마트에 들러 장을 보고
횡단보도 신호가 바뀌기를 기다리던 중이었다.
여전히 빨간불이었고
교차로 앞의 차들은 저마다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그때였다.
응급차가 사이렌을 성나게 울리며 비켜달라 말하는데
늘어선 차들로 인해 비집고 나가지를 못하고
우왕좌왕하는 모습에 갑자기 와락, 눈물이 쏟아진다.
해가 져서 다행이다 싶었다.
저 차에 탔을 누군가의 마음이,
사이렌 사이로 느껴지는 누군가의 절박함이 아프게 다가왔다.
부디, 빨리 비켜주기를 어서 목적지에 이르기를.
마트에 갈 때만 해도 아무렇지도 않은 일상이었다.
우두커니 신호를 기다리다 만난 구급차로 인해
다시금 깨달았다.
현실은 변하지 않았다 것을 말이다.
잔잔한 호수에 던져진 작은 돌멩이 하나가
커다란 파장을 불러일으키듯
지나가던 구급차 한 대가
내 마음에 소용돌이를 만들었다.
예고 없이 쳐들어 오는 이런 사소한 일상 하나에도
여전히 마음이 아파오는데
맞닥뜨리고 싸워서 극복하기에는 나는 여전히 힘들다.
하지만 언제까지나 이에 침몰되어 있을 수는 없다.
그저 잊히기를 바라며
안녕을 고하고, 열심히 하루를 살아보고자 한다.
생각만 해도 애틋하고 안쓰러운 나의 엄마와 아빠에게,
잠시나마 안녕을 고한다.
영원한 안녕은 아니니 섭섭해하지는 마시기를 바라며.
사람으로 인해 상처받았지만,
그 사람으로 인해
나는 괜찮다. 앞으로도 괜찮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