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물타령이야. 무순이 새파랗게 올라왔어. 몸뚱이도 없는 것이걸신들린 것 같아. 물 타박이 여간 아니야. 그런데 무싹은 왜. 언제부터 키웠냐고? 글쎄. 언제였더라.
어느 날 뭇국을 끓여 먹고 남은 토막이 주방 구석에서 삐들삐들 말라가기에 그냥 물 컵에 담가 봤어. 잘 키워 뭘 어찌해 보겠단 생각은 없었어. 그냥 그럴 때 있잖아. 버리긴 아깝고 그렇다고 이걸로 뭘 해 먹기에도 마땅찮은 그런 상태말이야.
그렇다고 이것을 음식물 쓰레기통에 처박는 것도 그다지 내키지 않았거든. 그래서 그냥 그래 본 거야. 그러고는 며칠 잊고 있었지.
그런데 어느 날 주방 청소를 하면서 보니 글쎄, 바짝 마른 물컵 속에서 초록 돌기가 오돌토돌 돋아나는 거야.
뭐지. 손가락 길이만 한 토막 속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거야. 신기해서 들명날명 물을 주기 시작했어. 근데 요게 무섭더라고. 얘는 밤에도 안 자고 용두질을 하는 것 같아. 자고 나면 바닷속 말미잘이 촉수를 길게 늘어뜨린 것처럼 돌기가 커져 있어. 줄기가 톱톱해지고 잎이 세포분열 하듯 나날이 커지는 거야.아무래도 혼자 봄처럼 살려고 무진 애를 썼나 봐.
물 줄 때마다 들여다보는데 이건 그냥 무토막이 아닌 거야. 물끄러미 보고 있으니 내가 아는 어떤 사람이 보여. 왜 있잖아. 평소엔 있는 듯 없는 듯 조용하지만, 기회가 오면 문어 빨판처럼 붙잡고 그 일을 서슴없이 해 내는 그런 사람 말이야.
지금도 물 한 컵을 주고 있어. 이제는 오글오글한 초록 잎에 지문처럼 무늬가 보여. 먼저 틔운 잎과 나중에 틔운 잎의 양분을 적절히 나눠 주는 것 같아. 그걸 보면 무싹은 철저히 계산된 본능으로 진화하고 있다는 기분이 들어.
와우! 저러다흰 뿌리가 물컵 가득 차면 잎으로는 성이 안 차 꽃까지 피우는 거 아냐. 왠지 그래.
물론 그리 되기까지는 나의 끊임없는 관심이 지속되어야 하겠지만. 그건 그렇고.
혹시 무꽃 본 적 있니? 난 한 번도 못 봤거든. 그러고 보니 채소꽃은 귀한 것 같아. 우리는 아주 오래전부터 채소 꽃이 피기도 전에 잎이나 뿌리를 죄 먹고살았으니까. 꽃도 제대로 피워보지 못하는 무나 배추, 상추나 부추, 같은 초록 채소들을 떠올리면 왠지 이것들의 슬픈 야채사가 보이는 거 같아 짠한 거 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