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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명흔 Mar 29. 2023

명자꽃을 보면

명자꽃이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명자나무 울타리에 잎만 다보록했는데  오늘 보니 꽃이 환하게 피었다.

사방에 개나리 목련 꽃이 지천이지만  쨍하게  붉은 꽃들이 오며 가며 내 눈길을  사로잡는다.


명자꽃, 명자, 낮게 불러보는 꽃이름이 왜 이렇게 애잔할까.

 

 아주 오래전 영화 <명자 아끼꼬 > 파란 많은 여인처럼 명자꽃을 보면 생각나는 여인이 있다.

내가 여고생이었을 때 스무 살 안팎의 예쁘장한 아가씨가 동네 오빠를 따라 살러 들어왔다.


오빠는 잘 나가던 읍내 의상실에서 재단사로 일하고 있었고 아가씨는 미싱 보조로 만났다. 그 시절 읍내 멋쟁이들은 기성복보다 의상실에서 치수를  재고 옷을 맞춰 입던 시절이었고 당시 교복세대인 우리도  교복을  의상실에서 맞춰 입던 시절이었다.


 그녀는 홀어머니의 가난한 집 맏딸이었고 중학교만 겨우 졸업하고 의상실에 취직했다. 얼마 안 되는 박봉이지만  줄줄이 딸동생들 뒷바라지하느라 어깨가 휘는 엄마를  도와 가계에 보탬을 주어왔다.


그렇게 동거를 시작한 그녀는 쉬는 날이면 남자의 어머니를 따라 논밭을  다니며 일도 곧잘 해서 동네 사람들은 기특하게  여겼다.

 

두 사람 사이에 아기가 태어나고 넝쿨장미꽃 흐드러진 담장 너머로 하얀 기저귀가 바람에 펄렁펄렁 거리는 것을 보며 마을 사람들은  냉랭하던 집이 이제야  사람 사는 집 같다고 제일처럼 좋아들 했다.

그 집은 마을 회관이 있는 중앙에서 보면 마을에서 맨 끝 집이고 버스에서 내려 마을로 들어서면 첫 집이었다.

마을 사람들에겐 길가에 있는 그 집이 버스를 타고 내리는 정류장이나 마찬가지였다.


한 시간에 한 번씩 들어오는 버스를 기다리다  목이 마르면 그 집에 들어가 샘물도 떠먹고  오뉴월 땡볕을 피해 툇마루에 앉아 쉬기도 하고 비 오면 처마밑으로 뛰어 들어가 비를 긋곤 했다.

 

 그녀아기를 안고 돌아 앉아 을 먹이거나 기저귀를 개며 마을 사람들과 눈을 마주칠 때마다  순하디 순한 얼굴로 웃었다. 여자는  아기를 낳은 후부터 자주 웃었던 것 같다.


​그렇게 그 집을 드나들면 나도 그녀와 말을 트게 되었고,  그 후로 나는 그녀를 언니라고 불렀다. 나중에 알았지만 그녀는 단발머리에 교복 입은 내가 제일 부럽다고 했다.  언니는 마을 어른들 하고는  못하는 얘기도 나한테는 동생 같았는지   조금씩 털어놓기 시작했다.


나는 그런 언니가 이상하게  편하고 좋았다. 아마 낯가림이 심하고 소심한 성격이어서 내가 먼저  다가가지 못했는데, 그걸 알았던지 먼저 다정하게 다가와 준 게 무척 고마웠다.


아버지도 안 계신 가난한 집 맏딸로 중학교도 겨우 겨우 나와 처음 의상실에 취직했을 땐 엄마를 도울 수 있어 무척 기뻤 단다. 누나로서 어린 동생들을 책임지기로 했는데 일이 이렇게 돼 버려 엄마한테 늘 미안하고 죄짓는 것 같다고 하던 착하디 착한 언니였다.

 



 

그런 언니한테 큰 불행이 찾아왔다.  누나집에 다니러 온 동생들과 비좁은  방에서 함께 자다 아기가 잘못 됐다.  생각하기도 싫은 끔찍한 사고였다. 언니 시어머니는 잘못된 아기를  언니  몰래  산에다 묻었다. 진달래가  흐드렸던 봄날이었다.


언니가 아기 때문에 잘 웃었고 마을사람들과도 가까워져 친해지기 시작했는데, 아기를 놓쳐버린 언니아기가 묻힌 곳을 찾아 마을로 산으로 뛰어다녔다.

일을 겪은 후 언니는 의상실에도 안 나가고 그 충격으로  넋이 나가버렸다. 언니는 그 후 멀마 안 있어 홀연히 마을을 떠나갔다.


오빠는 오빠대로 술 에 빠져 살다가 집을 나갔고 그 뒤 들리는 소문으론 공사판을 전전한다 했다. 그 집엔 칠순 노인만 혼자 남겨져 살고 있었다. ​

마을에는 한동안 언니에 대한 좋지 않은 소문이 전염병처럼 돌아 횡횡했지만 나는 믿고 싶지 않았다. 사슴처럼 눈이 맑았던 언니는 내게 여전히 순하디 순한  모습으로 남아 있다.

다 보면  누구나 자신의 선택을 후회하거나 돌이켜  볼  때가 종종 있다. 그 선택이 옳았든 그르든 가 보지 않은 길에 대한 막연한 동경 있기 때문이다. 언니는 크나큰 불행 앞에서 이런 생각마저도 하지 못했으리라. 어쩜 언니에게는 그때 그 상황에서 그것만이 최선의 선택이었는지 모른다.

 

그 후로  언니가  궁금하기도 하고 보고 싶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자신이 선택한 삶 때문에 엄마나 동생들에게  늘  맘 한구석 미안함을 갖고 살았던 언니가 어디서든 살아가길 바랐다.  까무룩 잊어버리고 살다가도  봄이 오면 이렇게 언니가  아련히  생각난다.

 

시절은 가고 또 와서 봄마다 아기가 묻힌 동네 뒷산에 진달래가 흐드러지고 보리밭 푸르르면 뻐꾸기가 뻐꾹뻐꾹 울었다.  ㅇㅇ엄마불렸고 어렴풋이 기억하는 언니의 이름은 명자가 아니었던 것 같은데,  봄날 붉게 피어나는 명자꽃 보면 슬프고도 짠해지는지. 지금쯤 어디선가 세월 따라 잘 늙어가고 있을  언니.  오늘은 언니가  무척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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