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장명흔 Jun 15. 2023

09   도라지밭에서 한 일

도라지 꽃에게

4B대신 HB로만 그려봤다.  손끝이 기억하고 있는 부드러운 도라지 꽃잎의 촉감을 연한 심으로 표현해 보고 싶었다.


어느 날  엄마 따라 도라지 밭에 갔다가 그만 맛을 알아 버렸다. 탱하게 부푼 꽃망울 하나를 장난 삼아 살짝 터트려 본 것이 발단이 되어 그 해 도라지밭 하나를 나 혼자 다 해 먹어 버렸다.


 경쾌하게 나는 '소리에 그만 중독되고 말았다. 엄지와 검지로 누르면  한 껏 부푼 꽃망울이 손가락의 압력에 의해 , 소리 내며 터지는데 묘한 쾌감을 어떻게 설명할 길이 없다. 아직도 기억한다. 마당가 주름투성이 꽈리를 터트릴 때와는 비교도 안 되게 좋았다.


그 손맛을 기억하고 있어서일까. 지금도 택배가 오면 상자  상품보호용 에어 비닐을 어린애처럼 톡톡 터트리곤 한다.

좋게 말하면 호기심 많은 아이지만 어른들 눈엔  시망스런 아이였다. '시망스럽다'는 전라도 사투리로 몹시 짓궂다는 뜻이다. 오빠들 사이에서 선머슴아처럼 자랐다. 오빠들이 하는 전쟁놀이에도 항시 끼었고 자치기도 잘했으며 나무 타기를 좋아해 소나무를 올라가다 발을 헛디뎌  떨어진 상처 자국이 지금도 훈장처럼 등에 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시망스런 소행?을 엄마는 알면서도 모른 척 눈감아 줬을까. 시계추처럼 엄마 뒤를 졸졸 따라다니며 물심부름도 하고 혼자 밭일하는 엄마를 심심찮게 했을 테니까.


그것 때문인지 다른 이유 때문인지는 몰라도 우리 집 도라지 농사는 해마다 그리 신통치 않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지금에 와서 드는 생각이지만 꽃 한 번 제대로 못 피워본 도라지에게도 미안하다.


2주   감기몸살로 심하게 았다. 병원에서 처방받은 약이 별 효과가 없어  한살림에서 도라지 분말과 도라지청을   와 먹기 시작했다. 낮엔 멀쩡하다가도 밤 되성해지던 기침이 많이 잦아들었다.  도라지 효과를  본 것이다.


 시망스런 내 손에서 피워보지도 못한 게 맘이 켕겨 선심 쓰듯 도라지 꽃 한 송이는 활짝  모양을 그렸고  한 송이는 부풀 대로 부푼 꽃망울을 그렸다. 이제 조금 마음이 편하다.




매거진의 이전글 08 약수터에서 만난 고양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