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소식이 있다. 아침 일찍 단지 내 약수터에서 물을 떠 오다고양이를 봤다.앵두나무 아래 앉아 물 다섯 병을 다 받을 때까지 내 쪽을 보고 있던 갈색 고양이.길냥이 같은데 경계심이 없어보여 몇 발짝 다가가냥이야, 냥이야, 하고 불렀다. 나를 빤히 쳐다보는 눈빛이하나도 무섭지 않다.
이제는 고양이와 눈도 맞추고, 좋다.이게다 시골집에 오는 길냥이 봄이 덕분이기도 하다. 옛날 같음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살다 보니 싫어서곁을 안 주던 것들에게마음이 가고 슬슬 좋아지기도 한다.
고양이를 그렸던 것도 같은데, 드로잉 북을 펼치고 고양이 그림을 찾아봤다. 이 그림은 코로나로 집안에서 지냈던 시간의 기록이며 흔적이다. 그때 그림책을 즐겨 봤었다.목탄이었을까. 굵은 선으로 표현한 고양이와 함께 책을 읽는 소녀의 시선을 따라가며 소녀가 보고 있는 그림책은 어떤 책일까?를 궁금해하며 그렸던 것도 같다.
고양이와 함께 소녀가 보는 책 속 낯익은 그림 컷이 실루엣처럼 다가와 급 반색했던 기억엔 내가 좋아하는 가브리엘 뱅상을 소녀도 보고 있었다는 것 하나.
그런소녀 니나와 고양이 안톤의 대화를 그린 작가는 가브리엘 뱅상과 어떤 인연이 닿아 있었을까?
아니면 나처럼 독자로서의 작가바라기로
가브리엘 뱅상을 좋아했을까.
그림을 그리면서 뭐 그런저런 쓸데없는 오지랖을 문어발처럼 뻗쳐그림책 말미에 써진 '가브리엘 뱅상을 추억하며'라는 문장에 한참 머물러 있었던 기억도 난다.
살다 보면 별 거 아닌 일이 별 것이 되기도 하고 그 별 것이 작은 우연으로 다가와 기분 좋은 하루를 시작하게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