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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명흔 Jun 26. 2023

10   비 오는 날에

 문지털이비

"기우제라도 지내야 할랑갑다" 


시골에 내려오니 어머님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밭에 깨씨를 심었는데 싹이 여직 안 난다고  있다고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아침나절에 비가 오는지도 모르게 지나갔다.


비를 목 빠지게 기다리는 어머님은 

호복이 좀 내릴 것이지. 꼭 호래이 오줌 지리듯

겨우 흙먼지만 날리게 왔다고 군두름하신다.

어머니는 런닝구 바람으로 토방에 앉아 부채질하시며 야속하게도 다 만 비를 지털이비'라고 하신다.

"문지털이비요? 저는 처음 들어봐요" 하니까

당신이 순간 생가 나서 에둘린 것이란다.

문지(먼지) 털이비, 

순발력도 좋으시지.

입에 담을수록 그럴듯하다.

소나기, 작달비, 이슬비, 보슬비, 는개비..., 내가 알고 있는 비'문지털이비' 하나 추가다.


오후엔 어머니  따라  고추밭에  갔다. 땡볕에도

고추나무에 풋고추가 주렁주렁 달려 있고 군데군데  

말라죽은 고춧대를 뽑아내며  그러신다.

빈자리에 들깨를 심어야 할까.

팥을 심어야 할랑가를 고민하는 어머니를 두고


큰까치수염꽃


나는 너무 더워 산그늘을 찾았다.

산은 고추밭 바로 위에 있다.

그래서 이 밭을 산밭이라 부른다.

소나무 밑에 앉아 있다  수수하게  피어있는  큰 까치수염을 발견했다.


찰~칵 , 찰칵,

찰~칵, 핸드폰 카메라에 담았다.


​저녁을 먹고 작은 방으로 배낭 속 드로잉북을 꺼냈다.

낮에  큰 까치수염 꽃이 생각났다.

큰 까치수염꽃, 서울 길에서도 여러 번 보던 꽃인데

시골에 와서 보니 더 시골스럽게  예쁘다.

보이는 대로 거의 다 그려갈 즈음

문 밖에서 무슨 소리가 난다.


칠흑 같은 마당에서 후드득, 후드득...,

반가운 빗소리가 흥건하다.


"어머니, 비 와요. 소나기요. 소나기."


얼마나 곤하신지, 비 오시는 줄도 모르고

티브이 켜 놓은 채 까무룩 잠에 빠진 어머님.

후드득.. 후드득...

반가운 빗소리를 혼자 듣기 아까웠다.

방안으로

빗소리와 함께  땡볕에 달군  흙내가 후끈하게 올라왔다.


"어머니, 이 비가 올라고 문지털이비가 지나갔나 봐요."

이 비는 무슨 비라고 부르면 좋을까요!


*문지털이비-먼지의 전라도 사투리.


**며칠 푹푹 찌더니 새벽부터 비가 온다. 장마가 시작 됐단다. 작년 드로잉북을 보니 그때도 비 얘기가 들어있다. 이상기온이네 기후 위기네 하는 말들이 범람한데, 그때나 지금이나 절기상 날씨는 비슷한 듯해서 그나마 조금 위안이 된다. 비 오는 날 드로잉북을 보며 생의  점 같은 하루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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