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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명흔 Jul 03. 2023

11   봄이가 우리 집에 못 오는 이유

길냥이 이야기

지난달 시골에 을 때 일이다. 그날은 부모님 기일이어서  형제들이 다 모였다. 제사를 모시고 저녁에 마당에서 쓰레기를 태우게 됐다. 쓰레기를 거의 다 태울 무렵 갑자기 대 밖에서 이상한 기운이 느껴졌다. 어둡고 무서워서 가 보지는 못하고 온 신경줄이 대문 쪽으로 당겨졌다.

'저것들이 언제 왔지.'

 글쎄, 고양이 세 마리가 대문 앞을 막고 서서 서로 기선제압이라도 하는지 으르렁거렸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한데 할퀴고 소리 지르고  물어뜯는가 하면 등치 큰 녀석은 저보다 작은 고양이 물어 죽일 기세였다. 싸움을 말리기는커녕 날카롭게 날 선  소리가 무서워 다가갈 수 조차 없었다.  목덜미를 물렸는지 아기울음소리 같은 괴성을 질러댔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어둠 속에서  고양이들의 날카롭고  앙칼진 소리만 낭자해 섬찟하다 못해 소름 돋았다. 생전 처음 보는 길냥이들의 싸움은 그야말로

 공포스러웠다.


 고양이들이 하나 둘 어둠 속으로 뿔뿔이 흩어졌다. 아마 게 중에는 크게 상처 입은 녀석 있을 것이다. 그렇담, 그런 애들은 어떻게 까. 쿵쿵쿵, 요동치는 심장박동은 여전한데도 다친 녀석이  은근히 걱정됐다. 어릴 적 집에서 개는 줄곳 키웠지만 고양이는 한 번도  키운  다. 그래서 고양이가 호랑이처럼 무섭기도 하고 저것들의 습성도  모른다. 짐작컨대  좀 전에  내가 봤던 녀석들의 난투전은 밥이 있는 우리 집을 서로 차지하겠다는  밥그릇 싸움이 아니었을까. 물뿌리개로 타다만 잔불을 정리하들어와서도 귓전에서 맴도는 고양이들의 앙칼진 소리가 떠나지 않아 잠을 설쳤다.


다음날 아침 서울 오려고 짐챙겨 나오 검은 고양이 한 마리가 아주 느긋한 아침을 먹고 있었다. 어젯밤 살벌했던 순간이 스쳐 지나갔다. 어쩌면 저 녀석이 어젯밤 작은 녀석의 목덜미를 물고 늘어지던 그 녀석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싸움에서 이긴 자의 여유가 저런 걸까. 이따금씩 오는 녀석들은 밥을 먹다가도 인기척이 들리 뒤도 안 돌아보고 달아나는데 이 녀석은 의기양양하다. 내가 보고 있는 데도 아, 랑, 곳, 않고 야금야금 만찬 즐기고 있었다.  아침 상에서 나온 생선 까지 그릇을  비우고 자알 먹었다는 듯 나를 한번 힐끔 보더니, 울타리 개구멍이 아닌 대문으로 어슬렁어슬렁 걸어 나가는 것이었다. 대파밭을 가로질러 가는 녀석의 뒷모습을 보니 봄이 생각이 났다.


요한나 콘세이요의 <까치밥 나무 열매가 익을 때> 표지 사진.

봄이는 작년 봄 우리 집에 처음 온 길냥이다. 그래서 '봄'이라는 이름도 지었다. 봄이도  녀석처럼 밥만 먹고 사라졌다면 이름까지 지어주면서 정 주지 않았으리라.  비쩍 마른 아기 고양이에게 매번 챙겨주는 밥 때문이었을까. 어느 날부턴가 봄이는 나랑 눈도 맞추면서 제 집처럼 편안한 지 나를 강아지처럼 졸졸 따랐다. 그래서 수건을 깐 박스를 놔줘 봤지만 잠은 다른 데서 자고 오는 것 같았다.


아기고양이 봄이는 그렇게 서너 우리 집에 머물면서 우리 집  봄이가 되어갔다. 봄이는 어느새 밥정에 덧정까지 들어 우리 집 고양이로 살아도 되겠다 싶었을 즈음 봄이가  오지 않았다. 혹시나 저녁에라도 까 싶어 밥과 물을  겼다. 자고 나면 밥그릇이 비어 었다. 밤사이 왔다간 녀석이 봄이었으면 했지만 맘 한편으론 아닐 수도 있단 생각은 하고 있었다. 어찌 된 일인지, 무슨 일인지 그 후로 봄이는 오지 않고 있다.


봄이가 보고 싶다. 마당에서 풀을 뽑고 있으면 내 옆에 와 제 얼굴을 비벼 대거나 무서워서 눈도 못 맞추는 내가 큰맘 먹고 머리를 만져주면 벌러덩 기분 좋게 드러누워 흰 배를 보이던  봄이. 목화솜처럼 부드럽고 귀엽던  녀석의 그 표정이 요한나 콘세이요가 그린 <까치밥나무 열매가 익어갈 때>의 책 표지 속 고양이 같다. 그 봄이의 표정에 무섬증이 가시자 봄이가 경계를 풀고 마음을  열어줬던 것 같다. 그랬던 봄이가 우리 집에 못 오는 이유가 어젯밤 길냥이들이 벌였던 난투전 때문이라면, 생각하기도 싫지만 어린 냥이 봄이는 사납고 드센 길냥이들 등살에 치여 숨  못 쉬고 밀려났던 것일까.


그렇담, 봄이는 어떻게 됐을까. 어디서  밥은 먹고 다닐까.   살아있기나 한 걸까. 살아있다면 지금쯤은 아기 티를 벗었으려나. 앞으로도 봄이를 영영 못 볼 있지만, 후회가 밀려온다. 사진이라도 몇 찍어둘걸. 어디서든 봄이가 건강하게 살아가기를 바라며 드로잉 북을 펼쳤다. 봄이랑도 닮았을 것 같녀석을 그린 그림떠올라서다. 봄이가  이 녀석만 했었다.  이 녀석은  어느 봄날 민들레와 놀던 아기 고양이다. 하는 짓이 하도 귀여워 그렸었는데 그림에서 언뜻언뜻  봄이가 보인다.  그래서 제목을 고쳤다. 봄이가 우리 집에 안온 이유로 했다가 못 오는 이 유로로.


잔디밭 민들레가 바람에 흔들리는 것을 보고  고개를 갸웃거리던 아기 고양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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