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저녁 먹고 동네 한 바퀴를 걸었다. 모퉁이를 돌아 정육점 앞을 지날 때였다. 아이 하나가 들앉아 있어도 될만한 파란 고무통에 잘 생긴 무화과나무가 가게 앞을 수문장처럼 버티고 있었다.
무화과나무는 어른 키를 훌쩍 넘길 정도였는데 그렇다고 키만 멀대같이 큰 것도 아니었다. 정육점 주인이 고기 국물이라도 먹여서 키웠나 싶을 정도로 떡 벌어지고 균형 잡힌 가지에 풍성한 잎 사이 시퍼러둥둥 한 무화과가 탐스럽게 달려 있었다.
무화과를 보니 지난달 어머님께 사 드린 무화과 생각이 났다. 스티로폼이 그들먹했던 무화과는 아기 주먹만 한 게
껍질까지 잘 익었다며 어머님이 좋아하셨다. 그런데 저렇게 풋감처럼 퍼런 것을 보니 무화과도 제철이 따로 없단 생각이 들면서 어릴 적 기억 한편이 떠올랐다.
안팎으로 과일나무가 많았던 우리 집 앞마당에도 무화과나무 한 그루가 대추나무랑 바특하게 서 있었다. 해마다 신기한 건 대추나무는 해거리를 해도 무슨 조화 속인지 무화과나무는 한 해도 거르지 않고 열매가 주렁주렁 열렸다. 무화과는 엄마가 참 좋아했다. 집에 감이며 배, 밤, 대추가 흔전 만전 해도 엄마는 유독 무화과를 즐겨 드셨는데 지금 와 생각하니 치아가 부실해서 그랬던 것 같다. 엄마는 늘 치통을 달고 살았다.
가을이면 아버지는 하루나 이틀 품을 들여 집사방의 과일을 따셨다. 그때가 아마 가을걷이가 얼추 끝나가는 즈음이었던 것 같다. 감은 장대 끝을 이용해 하나하나 따셨는데 대추는 바닥에 포장을 깔고 장대로 가지를 투닥거리면 빨간 대추가 우수수 떨어졌다. 그렇게 수확한 과일을 아버지는 이웃들 에게 돌렸다. 과일봉지를 바리바리 들고 이 집 저 집 전하는 심부름은 내 몫이었다. 갈 때는 힘들어서 봉지속 대추를 먹기도 했지만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왠지 뿌듯하고 기분 좋았다.
무화과는 언제나 우리 식구들 차지였다. 가을볕에 발갛게 익은 무화과를 딴 날이면 집안이 술렁거렸다. 언니나 오빠들은 엄마가 나눠 주는 제 몫을 받고도 성에 안 차 한 개라도 더 먹으려고 서로 눈치를 보곤 했다 하지만 나는 예외였다. 너무도 일찍 알아버린 빤한 무화과 속내가 너무 싫었다. 마치 밥상 앞에서 밥 먹기 싫어 딴청 피우는 아이 처럼 살살 녹는다며 먹어보라는 엄마의 꼬드김에도 들체 만 체 했다.
어느 가을 내가 처음 먹어본 무화과는 이랬다. 감 같지 않고 익으면 껍질부터 물컹했다. 한 입 베어 물었는데 손에 든 과육 속 씨를 품고 있는 모양이 꾸물거리는 벌레 같기도 하고 그 벌레가 알을 슬어 놓은 것 같아 씹지도 않고 삼켜 버렸다. 끔찍하리만치 싫었다. 지금도 무화과는 딴청이다.
정육점 앞을 지나오면서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근데 나는 왜 저 무화과나무 앞에서 우두망찰 했을까.
무화과나무가 너무 잘 생겨서? 주렁주렁 달린 무화과가 탐스러워서? 그런 듯하면서도 꼭 그런 것 만도 아니었다. 나도 모르게 눈이 가고 마음이 동하기 시작했을 땐 무화과 나무를 감싼 꼬마전구에 하나 둘 불이 켜지면서 부터였으리라. 은은한 불빛 사이로 낯선 듯 익숙한 가을날의 저녁 풍경이 불현듯 떠올랐다. 온 식구가 두레반상에 앉아 그릇 달그락 거리며 저녁을 먹는, 이제는 보고 싶어도 더는 볼 수 없는 부모님과 돌아갈 수 없는 그리운 그 시절이 환한 무화과나무 사이로 무성영화 속 장면처럼 언뜻언뜻 얼비쳤기 때문이다.
지난 달 시골집에 내려가 마당에 있는 대추나무 한그루를 베어냈다. 엄마까지 돌아가시자 마음이 휑했던지 작은 오빠가 마당가에 대추나무만 세 그루나 심어 놨다. 제법 자라 장마를 견딘 대추나무는 차례상에 올려도 될만큼 실한 대추가 달려 있다. 갈때마다 풀이 하도 성해 그 밑자리에 꽃잔디를 심었더니 그 사이를 뚫고 올라오는 가시투성이 대추나무등살에 꽃잔디가 맥을 못 추고 있어서다.
비어 있는 그 자리에 감나무를 심을까. 배롱나무를 심을까 고민 중이었는데 오늘부로 해결 됐다. 무화과 나무 한 그루를 키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