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장명흔 Jun 02. 2023

하나의 무늬

마음대로 읽는 시

하나의 무늬


김경주 시인

 

하나의 무늬가 물속에서 이루어지기 위해선

얼마나 많은 바람의 수런이 필요한가

바람 하나에 입혀진 무늬가

사람의 눈을 들어 올리고

바람이 들여다보고 간 시간이 물속에선

누런  그늘이 된다

깊이를 알 수 없는 바닥에선

잘린 손가락들이 하얗게 질려가고 있다.

 



시집 <나는 이 세상에 없는 계절이다>. 40~41쪽. 봉인된 선험 중에서

 

시를 읽다 '수런'이라는 말에  오래 머문다. '술렁거리다' 보다는 동세가 작아서 다정한'수런거림'을 좋아한다.


 봄날 숲에 들어가 걷다 보면 연녹색을 띠는 잎들의 촉감이 궁금해 문으로 살살 문질러 보게 된다. 새로 난 잎이 햇살과 바람의 부채질에 코브라가 주인의   피리 소리에 호리병 속에서 목을 내밀고 나오듯 바람의 수런에 잎들은  주먹을 펴거나 도르르 말잎들이 수런거린다.

 

풋풋한 잎은 가로 세로 사선으로 저마다 무늬를 지녔다. 잎의 색 크기 모양에 따라 새겨진 무늬는 촉감을 감지하는 지문 같다. 골골이 휘돌아나가거나 수직으로 흐르는 선을 보면 수백 수천 년 동안의 수런거림이 있었것만 같다. 무늬는 나이테처럼  고유 성정이 되어 그것을 바라보게 만든다. 그것이 지닌 그늘이 궁금하기도 하다.

 

나뭇잎 무늬와 물무늬가 자연의 수런거림으로 빚어졌다면 아이가 나고 자라 어른으로 되어가는 과정에는 자연과 인간의 함께 살이가 만들어 낸  보이지 않는 수런거림이 있었기 때문이다.






작가의 이전글 여덟 살의 꿈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