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장명흔 Jun 28. 2023

생각하면 좋았던 것들의 목록


책을 읽다 보면 어떤 책은 단순한 생각을 틀어 좀 더 깊게 생각해 보게 하고 또 어떤 책은 경직된 감정을 말랑말랑하게 만들어 타인의 속도를 좇아 가느라 바쁜 내게 잠시 멈춰 보라고 옷자락을 잡아 끄는 것 같기도 하다.

그런 어떤 책들을 일일이 나열할 수 없지만, 지금 몇몇 작가들이 떠오른다. 신형철 평론가, 고 황현산 평론가, 소설가 김애란, 김연수, 시인 박준, 김기택, 장석주, 박연준이다.

이 분들의 글은 쟝르를 벗어나 공감이나 감성 코드에  사람에 대한 연민과 사랑이라는 공통분모가 있다. 이런 사유가  나의  읽고 쓰는 행위에  공부가 되 멘토와 다정한  벗이 되어 준다.


며칠 전에는 글을 쓰다가 생각이 끊겨  노드북 화면의 깜빡이는 커서만 보고 있었다.  답답해서 글쓰기를 작파하고 산책이나 갈까 하다 무심코 눈에 들어온 책상 위 박연준 시인의 산문집 <쓰는 기분>을 읽어내려가면서 생각의 끈을 다시 이어갈 수 있었다. 답답함을 면하기로는 산책도  소용 있지만  가끔 책에서도 실마리를 찾아가기한다.


지금 이렇게  쓰고 있는 글도  끄나풀  가닥이다.  시인이  기록한  해묵은 일들의 목록을 톺아보며 나도 기억속 편린들을 한데 모아 보기로 했다. 곰곰 생각하면 참 좋아 지는데, 젊은 날엔 젊음을 모르듯 그때는 좋은 줄 모르고 무심히 흘려보냈던 순간들이 어디 이것 뿐이었을까.


책에서  읽은 글 중 하나다. 인간은  추억 하나로도 살아갈 힘이 생긴다고 했다. 어찌 보면 기억은 과거로 죽은 질료지만 내 안에서 발화하고 발화해 저장 돼 있다가 어느 순간 회상 회로가 작동되달콤하고 부드러운 빌리 엔젤 케이크처럼 켜켜이 쌓인 기억이라는 퇴적층이  오늘을  살아가게 한다. 



- 오래 입어 내 몸에 맞는 스웨터의 편안하고 아늑함.

- 비 오는 날 까무룩 잠들어 한숨 자고 일어났을 때

   아침인지 저녁인지 구별하기 어려울 때.

- 오래전에 본 책을 뒤적이다가 우연히 반짝이는 문장을        발견하는 순간.

- 현실엔 존재하지 않지만 생각하면 늘 곁에 있어 의지되고        가슴 따듯해지는 사람

(돌아가신 부모님, 먼저 간 친구)

- 산책하다 누군가 흘리고 간 물건을 주워 나뭇가지에 걸어 논 걸 보고 그 누군가를 떠올려 보는 일.

(열쇠, 장갑, 마스크, 손수건, cd, 이어폰...,)

- 자주 가는 산책로 버드나무에 태풍이 쓸어간 까치집이 있던 자리에 새로 지어진 까치집을 보게 됐을 때.

-화장실에 앉아 볼 일 보다가 기발한 생각이 떠올라 핸드폰에 메모한 문장이 종짓글이 되어 한 편의 글로 완성되었을 때.

- 비 오는 바깥 풍경을 무심히 바라보며 비가 서 있는 사람, 구부정한 사람, 걸어가는 사람, 누워 있는 사람처럼 보인다는 다소 억지스러운 생각을 하고 있는 나를 볼 때.

- 어느 가을 그토록 가보고 싶었던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 서서 묘하게 여여해지는 기분을 느꼈을 때.

- 오늘 아침처럼 베란다에 나가 안녕, 잘 잤니? 하고 혼잣말할 때.

-햇빛 쨍한 날 식물처럼 창가에 서서 해바라기 하는 시간.

-<궁궐의 나무>를 읽다 솔고시 그림이 그리고 싶어 연필을 잡아 보는 일.

-마음에 드는 그림책만 따로 모아 둔 소파 귀퉁이에 앉아 들춰보고 들춰 보게 되는 순간.

-길 가다 내 앞에 가는 사람의 뒷모습이 내가 아는 사람과 닮아 보여 그 사람이 자꾸 궁금해질 때.

-아무 생각 없이 들른 서점에서 읽고 싶었던 책이 한눈에 들어온 순간.

- 어느 가을날, 한 밤중 공원에서 사그락사그락, 나뭇잎 지는 소리를 나 혼자 듣고 있을 때.​

- 무서리 내린 늦가을 산행에서 친구랑 바위에 앉아 김밥과     라면을 먹고 얼얼했던 속이 뜨끈해지던 기억.


비 오는 날의 정취,


작가의 이전글 김소연 시인의 '빛'에 비추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