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 소금과 염장

주은 작가

풍미



브런치_21편.jpg 증도의 소금창고_photo by 박여선 작가


천일염의 맛은 햇빛의 양, 계절, 일조량과 온도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계절의 변화를 그대로 담고 있다. 일조량이 많고 햇살이 강한 해에는 소금 결정이 유난히 맑고 단단하다. 비가 잦고 흐린 해에는 부드러운 맛이 두드러진다. 바닷물이 햇빛을 받아 서서히 증발하는 동안 소금은 바람의 방향, 공기의 습도, 해가 뜨고 지는 주기에 따라 모양과 맛을 달리한다.


사람들은 소금이 그저 짜다고 말하지만 그 속에는 바다와 하늘, 바람과 계절이 만든 미세한 차이가 숨어 있다. 같은 나무에서 자란 과일이 해마다 맛이 다르듯, 소금도 해마다 다른 맛을 갖는다. 소금밭에서 막 퍼 올린 소금에서는 햇볕 냄새가 나고 저장되었던 소금은 차분한 맛을 낸다. 자연의 시간을 고스란히 받아 만든 천일염은 자연에서 수확하는 산물이다. 농부가 씨를 뿌리고 거두는 곡식과 다르지 않다.


소금이 만들어지는 시간을 알게 되면 ‘소금이 좋아야 음식이 맛있다’는 말이 단순한 미사여구가 아님을 알게 된다. 단순한 짠맛으로 설명되지 않고 깊이를 이야기하는 이유도 짐작하게 된다. 자연과 계절, 날씨가 빚어낸 시간의 결정체라는 점에서 소금은 이미 하나의 완성품이다. 더 나아가 천일염이 진짜 힘을 발휘하는 순간은 음식 속으로 스며들 때다. 새우젓이나 절임 배추 등의 염장 음식에서 진가를 발휘한다.


브런치_21편_02.jpg 태평염전 소금가게 모습_photo by 박여선 작가



증도 사람들은 바닷물이 잔잔하고 투명할 때 잡은 새우가 맛있다고 한다. 그런 날 담근 새우젓은 국물이 맑고 뒷맛이 개운하다. 비가 잦고 흐린 해에 담근 새우젓은 부드럽고 은은한 풍미를 낸다. 똑같은 소금과 새우로 담갔다 해도 자연조건에 따라 결과에는 차이가 있다.


새우젓은 새우 양 대비 10% 소금으로 농도를 맞춘다. 해마다 새우의 크기와 바닷물과 소금 염도에 따라 비율이 달라진다. 소금이 지나치게 강하면 새우가 숨쉬기도 전에 단단히 익어버리고 소금이 부족하면 부패가 먼저 찾아온다. 15도 전후의 온도가 좋고 너무 덥거나 차갑지 않아야 발효가 잘 일어난다. 서늘한 곳에서 3~4개월을 두면 제대로 익는다.


새우젓을 담글 때 사용하는 소금이 중요하다. 정제 소금이냐 천일염이냐에 따라서 맛이 달라진다. 천일염으로 만든 새우젓이 훨씬 더 깊고 풍부하게 발효된다. 천일염에 들어있는 칼슘, 칼륨, 마그네슘, 철분, 미네랄이 유산균의 성장을 도와 미생물들이 활발히 증식시키기 때문이다. 새우 단백질을 천천히 분해하고, 그 과정에서 특유의 시원하고 감칠맛 나는 국물이 만들어진다. 좋은 소금은 단순히 짠맛을 더하는 역할을 넘어 음식 재료가 가진 고유한 맛을 끌어낸다. 이 순간에 풍미가 생겼다, 좋아졌다고 말한다.


풍미는 음식의 향과 맛 조화를 의미한다. 여러 맛이 복합적인 감각과 어우러진 상태이다. 재료가 신선하고 조리법이 섬세하며 재료의 숙성도 등 다양한 요소가 부족함 없이 조화롭게 섞일 때 느껴지는 맛이다. 풍미가 좋은 음식은 먹는 이에게 좋은 느낌과 음식에 대한 만족과 즐거움을 준다.


김치의 풍미는 새우젓이 들어가야 완성된다. 배추를 절일 때 이미 소금이 들어갔지만 김치의 절정은 새우젓이 섞일 때 극치에 다다른다. 이미 소금으로 한껏 맛을 끌어올린 새우젓을 넣으면 김치 국물은 더욱 시원해지고 배추의 단맛이 살아난다. 새우젓이 김치의 풍미를 끌어내고 새로운 맛을 만든다. 증도 새우젓은 특히 발효가 알맞게 이루어져 국물이 투명하고 맛이 깔끔하기로 유명하다. 새우젓은 단순히 밥상 위에 오르는 반찬을 넘어 한국 음식문화에서 중요한 조미료다. 젓갈이 김치의 깊은 발효의 맛을 채워 준다.


브런치_21편_03.jpg 낙조전망대에서 바라본 태평염전_photo by 박여선 작가


증도는 우리나라 천일염의 7~8%를 생산하는 섬이며 염장의 섬이다. 햇살이 강하고 바람이 세차게 부는 환경에서 만들어져 결정이 크고 투명한 천일염이 새우젓을 발효하는데도 탁월하기 때문이다. 증도는 소금뿐 아니라 그 소금으로 담근 염장 음식으로도 유명하다. 같은 바다에서 잡은 생선도 어떤 소금에, 어떤 방법으로, 얼마나 기다려 절였는지에 따라 완전히 다른 맛을 낸다.


소금은 언제나 조리의 한가운데 있다. 고기를 굽기 전 뿌리는 소금 한 꼬집, 콩나물을 삶을 때 넣는 소금 조금, 국을 끓이며 간을 보며 넣는 소금 한 숟가락. 소금이 들어가느냐 들어가지 않느냐, 얼마나 들어가느냐에 따라 음식의 맛이 달라진다. 소금은 재료 본연의 맛을 잃지 않고 전체 음식의 맛과 균형을 맞추는 보이지 않는 조율자다. 바다에서 시작해 밥상에 오를 때까지 끊임없이 변주되어 사람들 기억과 삶 속에 스민다. 함께 살아간다.


증도의 염전에서 바라본 바다는 단순한 풍경이 아니라 오래된 지혜를 품은 거대한 저장고 자체다. 햇빛이 만들어낸 결정이 발효되어 세월의 맛을 더할 때 비로소 소금이 가진 진정한 풍미가 생긴다. 좋은 소금을 고른다는 것은 단순히 맛있는 음식을 만들기 위한 선택이 아니라 자연의 시간을 존중하고 기다림을 받아들이는 일이라는 것을 이해하게 된다. 음식 속에 깃든 생명의 흐름을 이어가는 일이다. 소금이 만들어지기까지 기다리는 시간은 인생과 같다. 기다림 자체가 인생이라는 것을, 나아가며 얻고, 깊어지는 시간을 기다리는 동안 그 모든 것이 우리 삶을 단단하게 만든다.






작가의 이전글20. 소금과 산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