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발레 시내
어우~~ 새벽 수타아앍~~~~
버티다가, 버티다가 5:25.
덕분에 일찍 일어나고 일찍 자게 되긴 하지만 더 자고 싶다고~
수탉은 온 동네 사람이 다 일어날 때까지 소리치려는 모양이다.
조금 있으면 두런두런 동네가 깨어난다.
6시 30도 되기 전부터 '보다보다' 소리도 요란해진다.
아침을 해 먹고 TV 좀 보고, 딸은 학생들 시범 영상편집 하고, 난 갖고 간 책(베르나르베르베르의 잠1,2) 읽으며 군것질 좀 하고.
늦은 오후 시간 현지식을 먹어보러 나갔다.
첫 번째 들른 식당 남자 종업원,
옆에 바짝 붙어 앉아 끈적한 눈길로 주문받는다.
확! 한 대 쥐어박아 주고 싶다.
어찌해보고 싶건만 딸은 차분하게 눈길 한 번 안 피하고 따박따박 할 말만 한다.
재료가 떨어져 선택할 것이 없다고 나가자고 했다.
휴~~ 아~~
외국인이고 여자라서 더 치근덕거린단다.
피하면 만만하게 보여서 더 할 거라고.
에고!
이런 것도 다 이겨내며 살았네. 우리 딸이.
에효~ 또 마음이 찢어졌다.
시내라고 사람이 정말 정말 많았다.
옆집 언니가 우간다 첫 인상이 어떻냐고 물었다.
"음~~ 참 정말 아프리카다.(넓다는 의미에서) 사람이 진~짜 많아요." 그랬었다.
하교 시간 인지 교복 입은 학생들도 많다.
눈 마주치면 웃으니 같이 수줍게 웃어준다. 귀엽다.
교복 입고 학교 다닐 정도면 그래도 생활이 되는 집 일거란다.
그렇다고 깔끔 깔끔은 아니다.
후줄근 후줄근~ 꼬깃 꼬깃~
그래서 정감 있는 모습이다.
TV에서 보던 우리나라 50~60년대를 사는 듯하다.
나도 살아보지 못했고 어려서였으니 기억할 수는 없던 시대이긴 하지만 딱 이렇지 않았을까?!
원조가 아프리카를 망친다는 말이 있단다.
여러 가지 의미가 있겠지만 지식 얕은 나는 잘 모르겠고, 개발 도상국이 그렇듯 여기도 빈부의 차가 심하단다. 빈부의 차가 극심한 데는 그럴만한 이유가 분명히 있겠다.
정부의 문제도, 고위관직자들의 문제도, 국민성의 문제도.
좋은 마음으로 하는 원조이겠으니 연속적으로 꾸준히 골고루 나눠지면 좋겠다.
아이들이 미래다.
교육이 우선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아까 그 식당 종업원 같이 되지 않는 허황된 마음
- 한국 친구 소개해 달라느니, 한국 가고 싶다느니, 데려가 달라느니. 그냥 좋게 하는 말이 아닌 기분 나쁜 느낌의 말 - 이 아닌 진실된 모습의 청년들이 많으면 좋겠다.
물론 열심히 사는 사람들은 어디나 늘 있겠지.
흠~~~ 이런저런 정리되지 않는 생각을 하며 밤을 맞이했다.
아침식사 감자채 볶음, 스크램블, 풀풀 날리는 길쭉한 현지 현미밥, 참치 캔, 딸은 고구마, 사과, 바나나, 남은 피자
아침 부터 오후 3시가 넘게 까지 제자들 시범 영상 편집하고 있는 딸
음발레 중심가 보다맨들의 거리
손님들을 기다리는 중
음발레에는 없어서 수도 캄팔라에서 사 온 배추와 파로 김치를 담궜다. 음발레에 양배추는 있는데 딸이 배추김치가 먹고 싶다고 해서. 고추가루는 전에 보내주었던 것을 잘 보관하고 있었고, 공수해 가기도 했다.
현지식 치킨 수프, 콩수프, 초록바나나 삶아 으깬 마토케와 삶은 고구마. 걸어서 한 10~15분 거리에 있는, 조미료 맛 안 나고 담백해서 가끔 갔었다는 북적북적한 시내에 있는 음식점.
저녁시간이라 재료가 다 소비돼서 더는 선택할 수 없었다. 세면기가 식당 한편에 마련되어 있다. 손님들은 일단 손 먼저 씻고 주문해서 먹는다. 원래는 손으로 먹는 거라는데 포크와 스푼을 준다. 현지인들에게 카메라 들이대기도 미안하고 식당을 찍기도 미안해서 음식만 찍었다.
3층 사는 두 집이 도둑이 들어 털리고 난 후, 코이카 사무실에서 안전을 위해 최대한 지원했고, 집주인도 지원해 줘서 현관문 열쇠 2개, 쇠창살 중문 세 개, 자물쇠 4개를 달았단다. 이 건물에 코이카봉사단원이 2명. 앞 집 언니는 월드비전 봉사단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