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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통신대란

by 부자형아

그렇게 넘어갈 것만 같았던 10월의 끝자락.

반찬을 고른 손님이 결제를 위해 카드를 주셨다.

근데 결제가 안 되는 것이었다.

손님의 카드가 고장 난 줄 알았다.

하지만 1분 전 건너편 정육점에서 고기를 구매하셨다고 한다.

알 수 없는 오류코드라고 떠서 무엇이 문제인지 알 수 없었다.

저희 기계에 문제가 생긴 것 같다고 현금결제를 부탁드렸더니, 반찬을 놓으시고는 잠시 후 다시 오겠다고 하신다.

카드 결제뿐만 아니라 포스까지 안되는 걸 보니 인터넷 문제로 보였고, 역시나 웹 서핑 창도 연결이 안 되었다.

수호는 KT고객센터로 전화를 걸었지만, 통화 연결이 도무지 되질 않는다.

서랍에서 명함집을 꺼내 인터넷을 설치해 주셨던 기사님께 전화를 걸었다.


“기사님 안녕하세요! 여기 6개월 전에 인터넷 설치해 주신 반찬가게인데요, 저희 가게 갑자기 인터넷이 안 돼요. 카드 결제가 안 돼서 빨리 봐주셔야 할 것 같아요.”

“사장님. 지금 KT 자체 서버가 다운돼서 전국 통신망이 멈췄습니다. 여기저기서 전화가 와서 저도 정신이 없어요. 죄송해요. 본사에서 해결한다고 하니 조금만 기다려 주세요.”


전국 통신망이 멈췄다고??

그럼 계속 카드 결제를 받을 수 없다는 건가??

손님의 90%가 카드로 결제하시는데...

이게 웬 날벼락인가.


점심시간 직전이었기 때문에 손님들이 점점 늘어나는 시간대였다.

수호와 직원들은 빨리 종이에 써서 여기저기 붙였다.


<인터넷 문제로 인해 카드 결제가 불가능합니다. 현금결제 부탁드립니다>


매장 밖에도 붙이고, 매장 안에도 붙이고, 쇼케이스, 포스에도 붙인다.

요즘 손님들은 대부분 현금을 들고 다니지 않는다.

무겁기도 하거니와 카드 지갑 또는 핸드폰 케이스의 발달로 카드 한 장만 가지고 다니는 분들이 훨씬 많아졌다.


하루 매출이 100만 원이면 평균적으로 5만 원 정도만 현금이다.

그것도 주변에 거주하시는 할머니, 할아버지께서 오신 날이나 그렇다.


정육점에서 고기를 사고 들어오셨던 손님은 결국 다시 오시지 않았다.

방문하셨다가 돌아가신 손님만 무려 20명이 넘는다.


계좌이체가 된다고 했지만, 굳이 그렇게까지 안 하신다.

이따가 다시 오신다며 거의 대부분 나가셨다.


도대체 이게 무슨 일인지...

수호는 분통이 터졌다.

밖을 보니 우리만 그런 것 같지는 않았다.


옆집 사장님, 앞집 사장님도 손님들께 카드가 안 된다고 계속 이야기하고 계신다.

통신망이 복구된 것은 오후 1시 정도.


평소 40만 원 정도 찍던 점심 매출이 이날 10만 원을 못 넘겼다.

너무나 허무하게 점심 장사를 공쳤다.

그렇게 하루를 보내고 자기 전에 인터넷을 보니 검색창 메인에 쓰여있더라.


<KT 먹통에 자영업자 폭발... 우왕좌왕 해명에 음모론까지>


전국적으로 통신망에 장애가 있었다는데...

뭐 방법이 있겠는가.

수호는 이제 이런 일에 에너지를 소모하지 않는다.

본인이 할 수 있는 일과 할 수 없는 일을 정확히 구분하는 습관이 생겼기 때문이다.


간만에 매출 100만 원을 달성하지 못했다.

울화통이 터지지만 어쩔 수 없다.


세상엔 대처할 수 없는 문제들이 너무나 많이 생긴다.

자영업은 특히 더 많이 생기는 것 같다.

보상을 해준다는 기사도 바로 밑에 있었지만, 수호는 전혀 관심이 가지 않는다.

오히려 그 아래쪽에 뜨는 내일 일기예보가 더 눈에 들어온다.


<수도권 새벽 첫눈 예상. 생각보다 많은 눈 내릴 듯>


눈이 오면 매장 앞을 쓸어야 한다.

손님이 들어오시다 넘어지면 큰일 나기 때문이다.

통신 대란은 어느새 기억에서 사라졌다.

내일이 또 걱정된다.


‘눈이 조금만 내리면 좋겠다...’


그렇게 수호는 바로 잠을 청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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