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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구마구 Nov 29. 2023

그래 나는 동양인, 저 친구는 서양인, 근데 너는?

미국, 이 나라의 정체성은 뭘까

저를 스쳐가는 다양한 사람들을 보면서 미국이라는 나라의 정체성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문화도, 음식도, 사람도 모든 것이 다양합니다.



"그래서 미국 너네만의 것이 뭐야?"라고 물으면 친구들도 대답을 망설입니다.



"넌 무슨 음식을 좋아해?"라는 물음에 "난 이탈리아 음식", "나는 중국음식" 등등의 대답이 들려오곤 하죠.



미국에도 미국식 음식이 있습니다만 그렇게 많지 않습니다. 심지어 피자도 이탈리아 출신이랍니다.

7명의 친구에게 물어봤더니 6명이 햄버거, 1명이 팬케이크라고 답하더라고요. 아침엔 팬케이크, 점심과 저녁엔 햄버거라네요.



삼겹살, 비빔밥, 떡볶이, 갈비, 된장찌개, 미역국 등등 셀 수 없이 많은 음식이 있는 한국과는 조금 다르죠. 한국은 모든 것에 있어 색이 짙습니다. 다양한 음식, 한복, 한옥 등 문화에서 생활까지 '우리만의 것'이 정말 많고 단단합니다.



우리는 '우리만의 것'을 넘어 '우리'자체에도 우리만 존재합니다. 뭔 소리냐고요?

대한민국을 구성하는 우리의 대다수가 대한민국 국민이라는 소리입니다. 조상님의 조상님의 조상님까지 전부 한국인인 그야말로 순수혈통!



미국은 어떨까요?

너무 다양해서 놀라울 지경입니다.

"너는 어느 나라의 피가 흘러?"

"Whose blood flows through you?"



라고 물으니 "엄마는 독일과 네덜란드 하프, 아빠는 어디 어디~쿼터"라고 하더라고요. 차마 기억조차 못할 만큼 다양한 나라가 한 사람 안에 공존하더군요. 한국에서는 어느 나라의 피가 흐르냐는 질문을 들은 적도 한 적도 없습니다 ㅎㅎ 아마 여러분도 그렇겠죠.

우린 다~ 한국인 그 자체이니까요.



길 가다 멍하니 사람들을 보다 보면

'엇 저 사람은 미국인'

'어 근데 저 사람이 더 미국인이네'

'어.... 저기 저 사람이 트루 미국인이네..'

라는 생각이 들곤 합니다.



대한민국의 사람들이 스펙트럼 속 '한국인'이라는 하나의 점에 속한다면, 미국은 스펙트럼 그 자체입니다. 모두가 조금씩 같고 조금씩 다르지요. 넓디넓게 펼쳐져 있습니다.  




미국에서 만난 제 친구들의 케이스를 소개해보겠습니다.


친구 N은 아버지가 미국인, 어머니가 한국인입니다. 미국에서 태어나고 자랐다고 하더라고요. 한국말은 한마디도 못합니다만 김치를 정말 좋아합니다. 저에게 "넌 김치 이파리가 좋아 줄기가 좋아?"라고 묻길래 눈을 동그랗게 뜬 채 5초 정도 감탄했습니다.


와.... 넌 역시 한국인의 피가 흐르는구나

틀림없이 흐른다... 틀림없이



제 클래스메이트 T는 부모님 두 분이 다 한국인이고 미국에서 태어나고 자랐다고 합니다. 한국말은 아예 못하고, 외모도 어쩐지 한국인인 듯 한국인 아닌 한국인 같은... 뭔가 묘하더라고요. 한국의 피가 흐름에도 스타일에 따라 다르게 보일 수도 있다는 게 말입니다.


뭐라고 해야 할까요.. 바이브가 완전 미국 그 자체였습니다. 미국 생활에 적응할 수 없을까 봐 부모님이 한국말과 문화를 전해주지 않았고, 본인도 본인의 정체성이 미국인이라고 하더라고요.



마지막으로 J의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J는 N과 마찬가지로 아버지가 미국인, 어머니가 한국분이시고 미국에서 나고 자랐습니다. 그러나 T는 한국말도 꽤나하고, 발음도 매우 정확합니다. 유창하지는 않지만 저는 발음에 놀랐습니다.. 완전 한국 발음이더라고요.


T는 어려서부터 어머니와 한국말로 대화했고, 한국 책을 읽었으며 문화도 꾸준히 접했다고 했습니다. 한국에 얼마 전에 다녀왔는데 편의점이 맘에 쏙 들었다고 하더라고요. "그냥 길 가다가 배고프면 아무 편의점에 들어가서 라면 먹을 수 있어!" ㅎㅎ 귀엽지 않나요?


T에게도 정체성에 대해 물었습니다.

그러자 "글쎄,, 굳이 내가 그걸 정해야 할까? 나는 내가 미국인이라고도, 한국인이라고도 생각 안 해. 나는 나고, 나는 두 나라를 모두 사랑하고, 내가 두 나라의 국적을 가지고 있어서 좋아. 내 세계가 더 넓은 기분이야.


"I'm lucky to have both of them, it makes my world even more expansive."라고 하는데 참 멋있더라고요. 정체성이 모호한 게 아니라 내 세계가 더 넓어서 좋다니.




사실 한국에서는 '미국인처럼 보이는데 영어를 전혀 못하는 사람'을 찾는 건 정말 어려운 일입니다. 일단 외국인을 찾기 힘들고요, 찾는다고 해도 대다수가 관광객이기에 영어를 할 줄 알겠지요.



그만큼 한국에 뿌리를 두고 사는 외국인은 많지 않습니다. 저는 한국에서도 외국인 친구들이 몇 명 있었는데, 명동을 벗어나면 마치 외국인이 아니라 외계인이 된 듯한 기분이라고 하더라고요. 본인같이 생긴 사람은 본인밖에 없었다면서요.


그렇다면 미국은 완전히 다양성을 인정하고 모두가 평등한 나라일까요? 미국도 아직은 백인 주류문화라고 합니다. 아시안, 흑인, 히스패닉은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미묘함이지만 차별을 느낀다고 합니다. 예를 들어 홈커밍 퀸과 킹은 당연하다시피 백인이 되고, 치어리더도 백인이 대다수라고 합니다.



다양한 인종이 공존함에도 히스패닉 클럽, 아시안 클럽, 블랙 클럽들이 존재하고, 그 문화를 공유하고, 어울리며 유대를 쌓는다고 합니다. 나를 구성하고 있는 일부가 자연스레 궁금해진다고 하네요.



제 한국 대학에는 당연하게도 한국인 동아리, 아메리칸 동아리 같은 건 없었습니다. 다 한국인이니까요^^

우리가 우리 속에서 어떤 집단을 꾸리든 적어도 우리의 외모와 문화는 같습니다. 단일 민족의 틈에서 살아가면 나와 너라기보다는 '우리'로서 살아갑니다.




이런 점에서 개인주의와 집단주의의 차이가 시작된 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미국에서의 개인은 개인이지 어딘가에 속한 인물이 아닙니다. 미국의 정체성이 아니라 나의 정체성에 대해 생각할 수 있죠. 우리가 나아가야 할 길, 우리 민족의 긍지 이런 것이 아니라 내 정체성, 내가 나아가야 할 길, 내가 추구하는 가치 이런 것들에 좀 더 집중할 수 있는 것 같습니다.



다양성 속에 더 유일해질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아니 다양하니까 유일해질 수 있는 것이겠죠.



빨강부터 보라까지 경계 없이 펼쳐진 무지개 속 어딘가에 위치한 내가 나로서 존재할 수 있는 나라 같습니다.



내가 좋아하는 것, 내가 잘하는 것, 내가 입고 싶은 옷, 내가 하고 싶은 것. 내가 어디에도 얽매여있지 않는 것이죠.



그 무지개 속에서 나는 빨강과 노랑이 섞인 주황이고 저 친구는 노랑과 파랑이 섞인 초록일 테지요.



그것들이 모두 합쳐져 함께하는 나라가 미국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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