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글라이프와 패밀리라이프
미국은 패밀리라이프,
한국은 싱글라이프
이라고 말하고 싶지만, 제가 경험해 본 것만을 두고 일반화하는 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나 사실 결혼 문화의 차이는 나라의 차이가 아닙니다. 어딜 가나 발달된 대도시의 경우 사람들이 커리어를 이어나가길 원하고, 싱글라이프를 자연스레 뒤를 따릅니다. 삶의 중심이 가족이 아니라 일인 거죠.
외곽으로 나갈수록, 도시에서 멀어질수록 혼자 즐길 수 있는 것들이 많지 않고, 지루해지기 쉽습니다. 동시에 커리어를 쫓는 사람이 적습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삶의 중심이 가족이 되는 거죠.
한국은 수도권에 전체인구의 40%가 거주합니다. 부산 같은 광역시까지 합치면 인구 절반, 혹은 그 이상이 도시에 거주하다 보니 싱글라이프를 택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미국도 뉴욕, 로스앤젤레스 같은 대도시권의 사람들은 커리어를 택하지만, 전체 인구의 10% 이하만이 대도시권에서 살아가죠. 땅이 워낙 넓다 보니 나라 전역에 인구가 분포되어 있습니다.
미국 전체를 보면 패밀리라이프가, 한국 전체를 보면 싱글라이프가 떠오르는 건 자연스러운 일인 것이죠. 그러니 제가 지금부터 한국의 서울을 묘사하고, 미국의 시골을 묘사해도 조금 너그러이 봐주셨으면 좋겠습니다:)
한국은 혼자 살기에 정말 좋습니다. 식당에 가도 1인 세트 메뉴가 준비되어 있고, 혼밥을 해도 껄끄럽지 않습니다. 혼자 카페 가고, 혼자 공연 보는 건 ‘괜찮음’을 넘어서 ‘멋있음’에 이르렀지요. 혼밥, 혼카공 등의 신조어가 생길 정도로 당연해졌습니다. 주말마다 카페 투어만 해도 5년 동안은 새로운 취미를 찾을 필요가 없을 정도입니다.
한국은 작은 땅 안에 갈 곳, 할 것이 차고 넘칩니다. 대중교통으로 나라가 모두 연결되어 있고, 몇 시간만 할애한다면 완전히 다른 느낌을 가진 도시에 도착합니다. 그만큼 새로운 것을 경험하는 것이 쉽습니다.
그러나 미국은 어떨까요? 미국은 모든 것이 가족문화 중심입니다. 카페의 영업시간은 새벽 6시-오후 3시 정도라 홀로 늦은 밤 카페에서의 작업은 꿈도 꿀 수 없습니다. 게다가 식당은 대부분이 패밀리 레스토랑으로, 혼밥 할 수 있는 분위기가 전혀 아닙니다. 음식을 테이블 가득 시켜놓고 세 시간 동안 대화를 나누며 즐기는 분위기랄까요.
미국은 우리를 고급진 것들을 혼자 하게 두지 않습니다. 혼자는 ‘멋있음’은커녕 ‘괜찮음’도 아니고 ‘처량함’입니다. 그만큼 함께하는 문화죠.
게다가 땅이 워낙 넓어 서부에서 동부를 가려면 비행기는 당연한 옵션이며, 같은 주에서도 3시간씩 기본적으로 운전을 해야 합니다. 소도시를 방문하려면 기차나, 고속버스 같은 기대는 버리셔야 합니다. 끝없는 운전만이 유일한 답이죠.
그렇게 끝없이 펼쳐진 광활한 땅을 한없이 비행하거나 달려야만 새로운 장소를 만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런 환경 때문에 미국에서의 삶은 정말 외롭고, 지루해지기 쉽습니다.
그래서 결혼도 비교적 일찍 하고, 가정도 빨리 꾸립니다. 요즘에는 미국 외곽도 결혼 연령이 많이 높아졌다고는 하지만 친구들에게 물어보면 대부분 25-26살쯤을 말합니다.(한국 나이로 치면 26-27쯤)
아주 일찍, 20살쯤 결혼하는 것도 우리로서는 상상할 수 없지만, 미국에서는 종종 일어나는 일입니다. 대학 졸업 전에 약혼하고 졸업과 동시에 결혼하는 사람들은 흔하기까지 합니다.
결혼에 대한 인식 자체가 한국과는 다릅니다. 문화차이를 여기서도 느낄 수 있죠. 우리나라에서의 결혼은 ‘일생일대의 결정’, ‘검은 머리 파뿌리 될 때까지 산다. ’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일생에 단 한 번뿐인 선택이라고 생각합니다.
이혼에 대한 인식이 예전과는 많이 달라지긴 했으나, 여전히 이혼은 자유로운 선택이 아닙니다. 상대가 바람을 피운다든가, 폭력이 있다든가, 정말 이렇게는 도무지 못살겠다든가 싶을 때만 이혼을 결심합니다.
그러나 미국은 문화자체가 자유롭고, 개인중심적입니다. 그렇기에 상대를 더 이상 사랑하지 않을 때, 더 매력적인 사람이 생겼을 때, 그것도 아니면 그냥 이 결혼에 싫증이 났을 때 이혼을 하곤 하죠. 물론 미국이라고 해서 결혼을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하려는 것은 아니나, 한국에 비해 확실히 그 신중함이 덜하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정말 일부는 결혼을 그리 큰 일으로 생각하지 않습니다. 너 나 사랑해? 난 널 사랑해! 좋아 결혼! 이렇게 go 하는 사람들도 꽤나 있습니다.
일례로 한국은 양아버지, 양어머니라는 말을 그리 달가워하지 않습니다. 어머니가 재혼을 해 양아버지가 생기고, 같이 살게 된다면 그냥 '아빠'라고 불러주길 원하고, 대외적으로 그렇게 소개되길 원합니다. 인터넷 기사, 리얼리티 예능 댓글만 보아도 '양'을 굳이 붙여야 해?라는 반응이 많이 보이죠. 즉 이혼 후 재혼했음을 알리고 싶지 않고, 재혼을 하면 과거는 잊고 한 가족이 되어야 한다는 문화입니다.
그러나 미국은 'step dad', 'step mom'이라는 단어를 정말 쉽게 들을 수 있습니다. 그만큼 이혼을 숨겨야 할 이유도 없고, 재혼을 했더라도 친모, 친부와 거리낌 없는 교류를 하고, 양부모는 양부모대로 존재할 뿐이니까요. '한가족'에 대한 개념이 우리와 같지 않습니다.
한국이 '우리'는 가족이 되기로 결정했기에 이 울타리를 지켜야만 해.라는 느낌이라면 미국은 '내'가 '너'와 가족이 되기로 결정했지만, 마음이 변했으므로(더 이상 너와 결혼생활을 유지하고 싶지 않기에) 이혼을 해야겠어.라는 느낌입니다. 그들에게 결혼은 그저 하나의 제도일 뿐입니다.
결혼의 시작도, 끝도 가슴이 시키는 대로 따릅니다. 그렇기에 결혼의 시기도 빠르고, 결혼생활의 종료도 빠릅니다.
저는 뼛속까지 한국인인지라 이런 가슴만을 따르는 결혼이 이해가 안 갑니다. 가슴을 따르는 사랑을 이해하지만, 충분한 고려를 거치지 않은 결혼은 불행을 낳을 뿐이니까요. 그러나 이런 미국의 결혼 문화가 낳은 것 중 한 가지는 마음에 듭니다. 이혼이 절대 흠이 아닌 문화. 마음 가는 대로 내 결혼생활을 결정할 수 있다는 건 참 멋진 일 같습니다.
마치 저의 부모님 세대가 그랬듯이 결혼을 하지 않은 사람이 있다면 하지 않은 것이라 생각하지 않고 못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특별히 흠이 있는 사람이 아니라면 모두가 결혼을 하고, 결혼을 하면 자연히 아이를 낳습니다. 삶에 있어 경제적 여유가 그리 많지 않더라도 시간적 여유는 한국보다 많고, 가족 문화가 모든 것의 중심이기에 2세를 낳지 않을 이유가 없습니다.
문화에 있어 어떤 게 맞고 틀리고는 없습니다. 결혼이라는 주제 역시 어느 쪽이 더 낫다고 말할 생각은 없습니다. 그리고 저는 개인적으로 한국의 문화 즉, 싱글라이프가 당연하게 받아들여지고, 혼자 사는 것이 흠이 아니고, 결혼이 매우 신중한 선택인 문화가 더 좋습니다.
그러나 미국의 결혼 문화가 국가 전체적으로 봤을 때는 더 바람직한 것이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듭니다. 국가의 미래를 그리려면, 즉 인구 절벽을 막으려면, 혼자가 불편한 분위기, 어딜 가도 아이를 환영하는 분위기, 특별하지 않아도 결혼할 수 있다는 믿음, 어딜 가나 가족이 함께할 수 있다는 분위기가 중요한 것이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의 서울은 혼자서도 먹고 보고 즐길 것이 너무 많아 그런 분위기가 가능할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한국의 패밀리라이프가 가능해지려면 서울을 노잼도시로 만들어야 하는 건 아닐까 하는 말도 안 되는 상상을 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