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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구마구 Dec 09. 2023

“너의 한국어가 노래처럼 들려”

언어, 누군가에겐 소통의 수단 누군가에겐 아름다움.

에어팟을 끼고 노래를 듣던 중에 한국어가 갑자기 귓속을 침투했습니다. 한국인이 거의 없는 동네에서 지내다 보니 한국어를 들을 일이 많지 않고, 노래 감상 타임만이 유일한 한국어 타임이다 보니 그랬나 봅니다.



백예린의 'Nerdy love'가 제 귀에 슬그머니 자리하더라고요. 이 노래는 한국어와 영어가 거의 절반씩 섞인 노래인데, 강추합니다.


"사랑은 그런 게 아냐~ 바보야~ "라는 부분이 너무 달콤하게 들렸고,

"It's not nerdy boy, it's you just sweet babe"가 더 직설적인 가사임에도 "그냥 너라서 나는 행복해~"가 더 스윗하게 들리더라고요.



또 어느 날은 레트로풍의 한식당에 갔는데, 오래된 한국 발라드 메들리가 나오더라고요. 그 넓은 한식당에서, 친구와 둘이 밥을 먹으며 노래들을 듣는데, 이유는 모르겠지만 감성이 촉촉해졌습니다.

요런 노래들이었습니다

제가 말이 없자 앞에서 친구는 동그란 눈을 깜빡이며 의아한 표정을 지었지만, 한국인인 저에게 그 발라드의 가사, 멜로디는 순간 강한 향수를 불러왔습니다.

아마 한국에서 들었더라면 그저 ‘지루하고 늘어지는 발라드'정도였겠죠?



낯선 땅에서 들려오는 제 뿌리의 언어는 어딘가 깊은 곳을 건드리기에 충분했습니다. 괜히 생각나는 부모님, 이유 없이 떠오르는 기억들을 애써 누르느라 꽤나 힘들었던 점심식사였습니다.



그 이후로는 한국 노래를 들으면 자꾸 가사와 발음을 곱씹게 됩니다. 괜히 한번 따라 부르면서 가사를 되뇌기도 하고요. 뭔가 묘합니다. 익숙한 동시에 새로운 느낌입니다.





영어는 제 모국어가 아니다 보니까 무슨 뜻인지 해석이 가능해도 가슴 깊숙이 들어오지 않습니다. 다소 극단적인 예로, “FXXK YXX”를 들으면 '뭐야 왜 욕해' 이 정도 반응이라면 “시X”를 들으면 ’뭐야 저 인간‘라는 생각과 함께 반사적으로 뒤돌아보게 되는 차이랄까요.



영어는 어떤 과정과 필터를 거쳐 '이해'를 하는 느낌이라면 한국어는 '흡수'되는 느낌입니다.



한국어를 전혀 하지 못했던 외국인 친구들이 제게 했던 말이 문득 떠올랐습니다.



나한테는 너의 한국어가 하나의 노래처럼 느껴져. 너에게는 한국어가 언어이겠지만 나에게는 그저 소리라서, 소리가 이쁘게 들려



언어가 예쁘다는 생각을 단 한 번도 한 적이 없어 스쳐가는 말이 뇌리에 박히더라고요.



나에게는 소통의 수단이 누군가에게는 아름다움이 될 수도 있구나. 누군가의 언어가 누군가에겐 배경음악이 될 수도 있구나.



그 후에는 한국어를 듣고 말할 때 의미를 넘어 소리에 집중하게 되었습니다. 우리말의 소리가 어떤지, 다른 언어랑 비교했을 때 어떤 차이점이 있는지 궁금해지더라요.



그래서 나름대로 파헤쳐본 결과, 우리말은 딱딱하고, 단단한 발음을 가진 것 같다는 결론을 내었습니다. R, V, Z가 존재하지 않고, L, B, G만 존재하기 때문에 우리는 흐르는 듯한 발음에 어려움을 겪죠.



무슨 소린지 잘 모르겠다면 제가 가져 허술하지만 근사한 예시를 보고 한번 따라 해보시죠.


Really = 리얼리로 표기하지만 실제로는 류~오올리쯤 되는 것 같고,

Victory = 빅토리로 표기하지만 브~익토리입니다.

Zombie= 좀비로 표기하지만 스ㅈ~옴비 정도 되겠죠.


리/얼/리가 아니라 ㄹ류~오우올ㄹ리~(3배속 해야 합니다^^) 이런 차이랄까요?



때때로 발음에 난관을 겪을 때면 이놈의 혀를 탓하기도 합니다. "아니 혀가 도저히 안 굴러가!"



영어로 끊임없이 소통하다가 한국에 있는 가족, 친구랑 전화를 하면 제 한국어 실력에 스스로 감탄하곤 합니다. 이토록 정확한 발음과 끊임없이 대화를 이어가는 스킬, 상대가 아무리 빠르게 말해도 캐치하는 능력을 모두 갖춘 스스로가 참 대견해집니다.



"나 이 정도로 한국어를 잘했나? 훗" 이런 자만심도 듭니다. (한국어라도 못하면 0개 국어이니 당연히 잘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말은 마음속으로만 해주시길 바랍니다ㅎㅎ)




아무튼 한국어가 어떤 과정 없이 입으로 나오고, 귀로 들어간다는 게 참 신기한 요즘입니다.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쉴 새 없이 떠들 수 있는 모국어가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행복한 것 같습니다.




사랑아 한국어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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