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라도 갈 수 있는데 오뎅탕은 없어요
미국하면 역시 파티를 빼놓을 수 없겠죠? 오늘은 미국과 우리나라의 술문화에 대해 다뤄보려 합니다. 미국에 오기 전, 저에게 미국은 술과 파티에 미친 나라였습니다. 미드나 유튜브 등을 통해 미국 문화를 접한 적도 없었는데, 별 이유 없이 '광란의 나라' 이미지였죠.
직접 살아보니 어떻냐고요? 음.. 그런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해요.
무슨 대답이 그렇게 애매하냐고요? 조금 확실하게 말하자면 이렇습니다. 술자리의 분위기 자체는 미국이 더 강하고요, 다만 '술' 그 자체에 대해선 한국이 더 미쳐있달까요?
미국이 어울리고 즐기는 분위기에 술을 곁들이는 느낌이라면 우리는 치맥과 삼쏘에 어울림을 곁들이는 느낌입니다.
한국에는 술집이 정말 다양하고 많죠. 안주는 메뉴판 다섯 페이지를 채울 만큼 있습니다. 자리에 앉으면 오늘은 도대체 어떤 기깔난 안주를 시킬지에 대해 열띤 토론을 펼치는 것이 일상입니다. 오돌뼈냐 닭발이냐, 소주냐 맥주냐 그것이 참 문제죠^^
술집이지만 사실상 안주로 승부를 보는 집들이 대다수랄까요. 어묵탕에 닭발을 시켜서 술잔을 짠~ 푸드파이터처럼 안주를 먹으며 "와 여기 안주 미쳤다."를 외쳐주곤 하죠.
미국은 어떨까요?
미국에 오뎅탕도 닭발도 없습니다. 나쵸와 감자튀김 정도가 전부입니다. 그마저도 잘 안 먹습니다. 각자 칵테일이나 보드카, 맥주 등을 주문해 마십니다. 지난 학기, 서울에서 외국인 친구들과 술을 마실 때 다들 각자 소주를 한 병씩 주문 후, 안주 없이 깡으로 마시는 모습을 보고 꽤나 당황했던 기억이 납니다. 우리는 안주도, 소주도 전부 나눠먹지만, 미국은 본인 술을 손에 꼭 쥐고 내 술은 내가 마신다라는 느낌입니다.
맥주와 소주의 나라 한국에서는 15도가량의 소주가 어마무시해 보였습니다. 그러나 미국에서는 취하고 싶다면 선택지는 보드카냐, 데킬라냐 그 갈림길에서 무엇 하나를 선택해야만 합니다.
저와 제 친구들은 아주 커다란 보드카를 30달러 주고 구매 후 기숙사 옷장에 숨겨놓았습니다. 사실 벌써 한 병은 다 비우고 없습니다^^
40도짜리 보드카는 아주 유용합니다. 돌아가면서 한입씩 마시기도 하고, 머그컵이나 빨간 컵에 마시기도 합니다. 하루는 머그컵에 담긴 보드카를 호호 불어먹었다가 놀림을 3일이나 당하기도 했습니다.
소맥도 버거웠던 제가 보드카에 익숙해져 버린 게 무섭습니다. 왜 마시냐면요.. 기 빨려서 마십니다.
사람의 틈바구니인 파티에서 말짱한 정신으로 있는 것보다, 알딸딸한 편이 훨씬 낫죠.
미국 대학의 일상은 파티입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파티와는 살짝 다른데요. 무언가 본격적인 파티가 아니라, 그냥 많은 사람이 모여서 술 마시는 걸 파티라고 부릅니다. 미국 시골은 밤에 정말 할 게 없어서 파티가 유일한 일탈의 길입니다.
가장 신기한 건 파티 호스트가 누군지 몰라도 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모르는데 어떻게 가요?" "몰라도 갈 수 있어요"
누군가가 파티를 열면 입소문이 퍼지고, 그럼 그냥 마구잡이로 가면 됩니다. 파티에 가기 전 친구와 먼저 Pre-game을 즐기는데, 일명 '입장 전 취하기 작전' 쯤 됩니다. 기숙사에 고이 모셔둔 보드카를 머그컵에 따라서 세잔정도 마시면 완성입니다. (술에 약한 제 기준입니다^^) 살짝 취기가 오른 채로 파티에 가면 덜 어색하게 파티를 즐길 수 있답니다~
미국의 파티 문화가 감이 안 잡히신다면 이렇게 생각하면 됩니다. 대학교 개강총회를 매 주말마다, 아니 일주일에 세 번씩 하는 느낌입니다. 우리나라에선 “술 먹을 땐 친하다가 다음날 일어나면 어색해지는 그 관계가 참 싫다"라고 하지만 미국은 같이 술 먹은 사람이 누군지 기억조차 안 날 만큼 자주, 많은 사람들이 가볍게 모입니다.
우리나라의 술자리 목적이 친구, 지인과 근황 토크라면 미국은 술을 마시고 어울릴 수 있다면 누구든 상관없는 느낌입니다. 친한 친구 두세 명과 함께 전혀 모르는 사람 30명과 술을 마시고 마구잡이로 이야기하는 것, 그게 파티의 전부입니다.
아쉬운 건 우리나라처럼 캐주얼한 술문화가 보편적이지 않은 것 같습니다. 일명 '치맥'이 부재합니다. 고급진 펍에 간다든가, 클럽에 간다든가 정도의 옵션 전부입니다. oo아 가볍게 술 한잔 하자~라는 말도 할 수가 없달까요.
퇴근 후 맥주 한잔, 집 근처 삼겹살 집에서 소주 한잔 이런 개념이 없습니다. 술문화가 가볍지 않다 보니 미국의 밤은 길고 심심하죠. 이것이 <커리어냐, 가족이냐 그것이 문제로다> 편에서 다룬 미국의 강한 가족 문화의 이유 중 하나이기도 합니다. 밤을 친구, 술과 보내는 것이 아니라 가족과 보내는 게 일반적입니다.
저는 낯도 가리고, 흥이 많은 편이 아니라 파티 문화와는 잘 안 맞습니다. 그럼에도 미국까지 왔으니 이것저것 경험하려 하고 있습니다. 모르는 사람과 자유롭게 이야기하는 미국의 문화가 부럽기도 하지만,
여전히 물만 부으면 무한 생성되는 오뎅탕과 매콤한 안주들이 그립습니다. 보드카에 익숙해져 버린 바람에 한국에 돌아가면 소맥쯤은 가볍게 마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마치 제가 매일 술 마시는 주정뱅이 같지만 오해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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