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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구마구 Dec 13. 2023

여유와 공포의 이상한 공존

가볍고 쉬운 미국의 Connection

잔디밭에 누워 잠을 자고, 벤치에 앉아 샌드위치를 먹고, 해먹에 누워 책을 읽는 사람들로 가득한 이곳은 공원이 아니라 대학교입니다.


해먹에서 즐기는 여유


시간을 내어 지하철을 타고 한강에 가야만 피크닉을 할 수 있는 한국과는 조금 다릅니다. 매일매일이 피크닉이죠. 오전 수업이 끝나면 샌드위치를 테이크아웃해 벤치에 앉습니다. 멍하니 노래를 들을 때도 있고, 책을 읽을 때도 있고, 길 가던 친구와 이야기할 때도 있죠.



울긋불긋한 나무와 쏜살같은 다람쥐가 만들어내는 조경은 꽤나 멋있습니다. 미국의 대학과 한국 대학의 가장 큰 차이가 Connection의 기회라고 생각합니다. 미국의 대학은 서로 연결될 수 있는 기회가 참 많습니다. 모든 공간이 만남을 위한 공간입니다.



한국에서는 약속을 잡아 밥을 먹어야 인간관계의 물꼬를 틀 수 있다면, 이곳의 인간관계는 매일, 매 순간 새롭습니다. 해먹에 누워 책을 읽다가 책 제목이 무엇이냐는 질문을 받기도 하고, 벤치에 앉아 노트북을 두드리다가 옆에 앉은 학생과 스몰토크를 하기도 하죠.



하지만 핵심은 학교 카페테리아입니다.

우리가 일행과 같이 밥을 먹는 문화라면 미국은 혼자 먹다가 일면식도 없는 사람과 밥을 먹게 되기도 하고, 친구와 같이 오면 친구의 친구, 친구의 친구의 친구,,, 등이 끊임없이 합석을 해서 어느덧 기다란 테이블을 채우곤 하죠.


매일 같은 음식뿐인 카페테리아^^


그만큼 인간관계가 가볍기도 하지만 일상에서 얽매임을 느끼지 않습니다. 원한다면 얼마든지 어울릴 기회가 있고, 제 개인 생활은 언제든 보장받을 수 있죠.






또 다른 미국의 여유는 "실수해도 돼, 미숙해도 돼"에서 오는 것 같습니다.

한국은 직장뿐만 아니라 아르바이트나 학업, 일상에서도 실수를 용인해주지 않습니다. 빠릿빠릿하고 야무져야 살아남는 세상입니다.



여러 매체에서 '갓생'을 키워드로 콘텐츠가 쏟아져 나오고, 왠지 내 일상도 저들처럼 빈틈없어야만 할 것 같은 기분이 들죠. '미라클 모닝', '퇴근 후 헬스장', '25살 000 갓생 브이로그' 등을 보다 보면 나는 지금 뭐 하고 있지?라는 생각이 절로 듭니다. 저도 사실 침대에서 의미 없이 유튜브를 보다 보면 현타가 오기도 합니다.



문제는 저를 비롯한 한국의 젊은 세대가 열심히 살고 있음에도 죄책감을 느낀다는 것입니다. 하루종일 일하고 온 회사원, 도서관에서 온종일 공부하는 취준생들에게 주어진 짧은 휴식조차 죄책감이 되어버리는 현실이 씁쓸하게 느껴집니다.


이런짤이 굉장한 유행이죠

미국은 24시간 스터디카페도, 시험기간 도서관 자리 예약 전쟁도 없습니다. 물론 소수의 학구파들은 미래를 위해 한국과 마찬가지로, 어쩌면 더 많이 공부하겠지만 모든 대학생이 그렇지 않다는 이야기입니다. 한국은 어느새 성공의 기준이 하나가 되어 달리고 있죠.



그러나 미국은 공부가 아니어도 다양한 직업에서 능력을 발휘하고, 화이트칼라만이 답이다!라는 사회분위기가 아닙니다.


피아노를 전공해서 예술의 전당에 서야만 가치 있는 삶이 아니라 주민센터에서 반주를 한다든가, 유치원생들에게 피아노를 가르쳐주는 삶도 가치 있는 삶이라는 인식이 사회 전반에 깔려있습니다. 우리나라는 개인의 역량이 상향평준화 된 나머지 사회가 너무 각박해져 버렸죠.


음원이 아니라 피아노 반주로 진행됐던 낭만적인 발레 수업


그러나 미국이라고 장점만 있진 않습니다. 우리가 어딜 가든 평균이상의 서비스와 퀄리티를 기대할 수 있다면 미국은 실수가 허용되는 나라이다 보니 감안해야 할 것들이 많습니다.



귀여운 예를 들어보자면, 어느 날 제가 셔틀버스를 타고 학교에 가던 중 1분 만에 갑자기 버스가 멈춰 섰습니다. 참고로 제 기숙사는 학교 중심과 차로 3분 정도 떨어져 있습니다.


 당황한 저는 "왜 멈추셨나요?"라고 물었고(거의 지각이었거든요^^), "힘들어서 잠깐 쉬었다 가려고!"라고 경쾌하게 답하시더라고요. 한국인인 저에겐 그런 대답은 옵션에 없던 완전히 새로운 대답이었죠.


귀여운 셔틀버스

그 이후에도 버스의 현재 위치를 알 수 있는 맵을 보다 보면, 제 기숙사로 오던 중 갑자기 멈추거나 경로를 이탈하는 경우가  한두 번이 아니었답니다. 이제는 그냥 포기하고 걸어 다닙니다^^



이렇듯 실수와 쉼이 용서되는 사회이기에 서비스를 제공하는 입장에선 좋지만, 제공받는 입장에선 한국의 완벽함을 대하면 안 됩니다.




미국이 자유롭고 독립적인 문화인만큼, 성인이 되면 '개인'으로 존재해야 하죠. 누군가 딸, 아들보다 나 자신으로 살아갑니다. 자유에는 항상 책임이 따르는 법입니다. 우리나라의 대부분의 대학생은 물론, 그 이후에도 부모님으로부터 완전한 경제적 독립을 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미국은 비교적 학비나 생활비를 스스로 마련하는 경우가 흔합니다. 경제적 독립은 완전한 개인을 뜻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그들은 자유롭게 살아가지만, 쉬운 삶은 아닙니다.



대부분이 학비를 위해 대출을 하고, 대출 상환과 각종 생활비로 인해 돈을 도저히 모을 수 없다는 판단이 들어 미래가 없는 듯 사는 사람도 많다고 합니다. 서울의 집값이 하늘을 찌르고, 취업문은 바늘구멍보다 작지만 그래도 열심히 살면 어느 정도의 삶을 꾸릴 수 있을 것이란 기대가 있습니다. 복지도 완벽하진 않지만 꽤나 건실하게 마련되어 있죠.



그러나 미국은 의료비, 주거비, 교육비가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고, 부모로부터 도움을 받지 않은 사람과 그렇지 않는 사람의 격차가 점점 벌어집니다. 부유한 이들은 미래를 위해 노력하며 살아가고, 그렇지 못한 사람은 순간에만 충실해 살아가기 쉽죠.





미국은 내가 나일수 있는 국가임은 분명히 맞습니다. 그러나 눈치 보지 않고 자유롭게 살 수 있는 만큼 나를 둘러싸는 방어막도 얇습니다. 나를 조이는 사회도 없고, 무언가 강요하는 사람도 없지만 그 책임은 오롯이 본인의 것이죠.



미국은 자유와 여유, 불안과 공포를 모두 가진 양날의 검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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