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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구마구 Feb 05. 2023

사랑과 무모함 그리고 인간

호메로스의 일리아스를 읽고

인간의 사랑은 무모함을 낳고, 무모함은 비이성적인 행동을 하게 한다. 그러나 비이성은 정해진 운명을 더 나은 곳으로 끌고 간다. 인간이 운명 아래 무력할지라도 사랑만은 특별한 영향을 준다고 생각한다. 프리아모스의 아내는 그가 아킬레우스를 찾아가려 할 때 지혜롭지 못한 행동이며, 아들의 죽음은 정해진 운명일 뿐이라고 말했지만, 아버지는 사랑으로 아들의 마지막에 최선을 다했다. <일리아스>에는 예언과 운명이라는 키워드가 자주 등장한다. 운명론적 관점에서 이야기가 정해지고, 인간은 신의 명령에 수동적으로 임한다.



그러나 사랑은 인간을 틀 안에서 구해내고, 입체적인 존재로 만든다. 사랑할 줄 모르는 아킬레우스와 프리아모스는 그저 잔혹한 동물일 뿐이지만, 사랑 아래의 그들은 비로소 인간이 된다. 아들을 위해 아들을 죽인 자의 손에 입을 맞추는 아버지와 그런 아버지를 보며 자신의 아버지를 떠올리는 아킬레우스, 그리고 이어지는 그들의 대화에서만큼은 그들도 그저 평범한 인간일 뿐이다. 둘의 대화는 인간의 가장 이기적인 면과 동시에 가장 인간적인 면을 보여주었다. 누군가가 사랑하는 이는 누군가에겐 그저 적이 되고, 그 적 또한 누군가가 사랑하는 이일 것이다. 이런 안타까운 사실 아래 가장 소중한 것을 잃은 둘을 보며 잔혹함도, 연약함도, 그리고 용기도 모두 사랑이라는 감정 아래 나옴을 느꼈다.



아킬레우스는 가증스러운 전쟁을 하면서 전리품을 얻고, 제물을 바치고, 의미없는 잔치를 벌이는 비생산적인 일을 지속했다. 그는 본문에서 묘사된 것처럼 ‘현명’하고 ‘고귀’한 군주는 아니었을지라도 파트로클로스에겐 현명하고 고귀한 동료였을 것이다. 광인으로 묘사되었던 그들은 사랑하는 이의 죽음 앞에서 결핍되어 고통받는 약한 인간으로 그려졌고, 참혹함 그 뒤에는 연약함이 숨겨진 존재로 그려졌다. 그들이 고통 속에서 나눈 짧은 대화에는 설득과 이기심만이 존재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들은 그 순간만큼은 서로 공감했을 것이다. 비록 그 감정이 순간적이고 휘발되어 곧 증오로 변했을지라도 말이다.




​온전하지 못한 두 인간은 서로의 서투름과 잔인함에 휩싸여 되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넜다. 이렇게 인간은 놀랍도록 무모하고, 그 무모함에 스스로 고통받지만, 이 모든 것이 결코 어리석은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사랑이라는 특별하고 고귀한 감정 아래 귀결되는 본능일 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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