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매매부터 건축사무소 계약까지
슬램덩크의 서태웅과 강백호가 서로 다른 노선을 걷다가
마침내 산왕전에서 하이파이브를 하며 의기투합을 하듯
한옥을 사야겠다는 생각이 아내와 내가 단단히 일치하게 된 전율의 순간 뒤엔
이 한옥을 어떤 방법으로 수선할지 결정해야 하는 단계가 기다리고 있었다.
평소 즐겨보던 EBS 다큐에 나오는 실행력이 불도저급인 사람들처럼 직접 셀프로 한 땀 한 땀 고치고 싶은 마음도 없지 않았지만, 평일에도 야근을 밥먹듯이 하고 주말 출근도 간식 먹듯 간간히 하는 광고회사 맞벌이 부부에게 그 방법은 너무 힘들 것 같았다.
물론 남는 시간에 짬짬이 조금씩 하는 방법도 있지만 그렇게 되면 10년쯤 뒤에나 공사가 완료되어 노쇠해진 몸으로 삐걱거리며 한옥집에 입성하는 눈물 나는 엔딩이 되지 않을까 싶다.
그렇다면 남은 방법은 건축사무소에 의뢰하는 것뿐이었다. 그리고 의뢰하게 된다면 우리에게 생각해둔
건축사무소는 오직 지랩뿐이었다. 그렇다고 서울에서 한옥 가정집 설계를 지랩만 한다는 것은 아니다, 다른 훌륭한 건축사무소와 인테리어 회사도 많으니 혹시 한옥을 수선하게 될 계획이 있다면 여러 곳을 알아보길 바란다. 우리 부부는 선배의 한옥집 효자라운지의 디테일과 센스에 반해 다른 후보 없이 무조건 지랩을 고집했고 지금도 지랩을 선택한 것이 참 잘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이렇게 쓰고 보니 무슨 지랩 홍보대사가 된 것 같지만...
효자라운지로 첫 가정집 설계를 하긴 했지만, 대외적으로는 일반 가정집 설계를 하지 않는다라고 알고 있어서
어떻게 설계 의뢰를 해야 할지 조심스러웠다. 당연히 효자라운지 지인 찬스로 호감도 +10점을 먹고 들어가는 계획은 일단 깔고 들어가더라도 무언가 그 이상으로 진정성 있게 우리의 이 지랩 빠심을 전하고 싶었다.
여기서 아내의 카피라이터 10년 짬밥이 맹활약했다. 아내는 평소 회의 준비를 할 때보다 세배쯤 두뇌를 풀가동해 지랩을 설득하기 위한 제안서를 만들었다. 아내의 팀장이 이 모습을 봤다면 '아이고 일을 좀 그렇게 하면 얼마나 좋을까'라고 했겠지만 우리는 출근하기 전에 회사 가기 싫다로 시작해 퇴근하기 전까지 집에 가고 싶다를 입에 달고 사는 지극히 정상적인 직장인일 뿐이다. 그렇게 근 10년간 볼 수 없었던 각성 모드로 키보드에 혼신의 힘을 쏟아부은 결과 마침내 우리의 설계 의뢰 제안서가 완성되었다.
제안서의 이름은 바로 'Z랩이어야 하는 A부터 Z까지 이유'였다. Z랩의 Z까지 가기 위해 A부터 Y까지 영어 사전을 뒤져가며 알맞은 단어를 찾아내는 고생스러움이 있었지만 덕분에 지랩은 지금까지 이렇게 정성스럽게 설계 의뢰를 해준 건축주는 처음이라며 흔쾌히 설계를 맡아주었다.
이제 관건은 우리가 구매하려고 하는 혜화동의 그리다 만 ㄷ자 한옥집을 지랩이 직접 방문해 살펴보고 공사가 가능할지에 대한 여부를 결정하는 문제였다. 아내는 이 집을 지랩이 설계해주지 못한다면 구매를 포기할 생각까지 할 정도로 지랩에 대한 기대가 언젠가 화성에 가게 될 테슬라의 주가에 거는 기대만큼 거대했다.
다행히 현장을 본 지랩 대표님이 들어오는 골목이 좀 좁은 게 공사하기 좀 까다로울 수는 있겠지만 이 정도면 충분히 공사는 가능할 것이라고 마침내 우리가 그토록 원했던 대답을 들을 수 있었다.
그날 바로 우리 부부는 부동산으로 뛰어가 처음으로 우리 명의로 된 집을 구매했다. 등기부등본을 보고 처음 지어진 날짜도 기록되지 않을 만큼 오래된 집이라는 사실에 적지 않게 놀랐지만 그만큼 오랜 세월 수많은 사람들이 이 집에서 살아갔고 이 집을 허물지 않았다는 것에서 많은 이들의 애정이 깃든 느낌이라 마냥 더 좋게만 느껴졌다.
추후에 막상 공사를 시작하고 나서 내부를 뜯어봤을 때 오랜 세월의 흔적이 곳곳에 문제점으로 드러났지만...
아무튼 한옥집을 구매하고 바로 지랩과 설계 계약까지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지랩 대표님이 준비해온 계약서를 꼼꼼히 점검하는 척했지만 사실 봐도 잘 모르는 내용이어서 얼른 척척척 진행해 도장을 찍고 홀가분하게 건축사무소를 나왔다.
건축사무소를 나오니 거짓말처럼 함박눈이 펑펑 내리고 있었다. 우리 마음속의 함박웃음이 세상 밖으로 터져 나오기라고 한 마냥 그 겨울 가장 눈이 많이 온 날이었다.
하얀 도화지처럼 변해버린 세상을 보며 우리의 도화지 위에는 앞으로 어떤 그림이 그려질지
소복소복 두근거렸다.
영화처럼 눈이 펑펑 쏟아지던 지랩과의 계약 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