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자는 아니지만 부잣집에 살고 싶어요
키는 적당히 180 정도만 되면 좋겠구요
외모는 잘 안 봐요~ 그냥 평범하게 이제훈이나 박해일 느낌?
직장은 안정적인 대기업에 연봉 8000 정도만 돼도 적당할 거 같고
서울권 30평대 아파트 하나 중형 세단 하나? 그 정도는 다 있잖아요?
적당히 식스팩 있으면서 영화, 책, 여행 적당히 좋아하고
술, 담배, 유흥 같은 건 절~대로 안 하고
한결 같이 저만 바라보는 그런 사람?
언제나 이상형은 코끼리의 똥만큼이나 거대하고 어린아이의 꿈만큼이나 허무맹랑하기 마련이다.
지랩에 우리가 생각하는 한옥집의 모습을 말할 때가 딱 그랬다.
영화 리틀포레스트에 나오는 주방처럼 넉넉하고 창이 있었으면 좋겠어요.
욕실에서는 목욕을 하며 하늘을 볼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친구들을 초대해 비 오는 풍경을 보며 막걸리를 마실 수 있는 다이닝 공간이 있었으면 좋겠어요.
그림을 그릴 수 있는 나만의 작업실이 있었으면 좋겠어요.
침실은 아침햇살이 은은하게 들어오는 아득한 곳이면 좋겠어요.
하늘을 보며 커피를 마실 수 있는 작은 바가 있었으면 좋겠어요.
TV를 볼 수 있는 작은 영화관 같은 공간이 있었으면 좋겠어요.
마당엔 나무와 꽃이 있는 작은 정원이 있었으면 좋겠어요. 아 작은 텃밭도요
나무의 톤은 이런 빈티지하면서 고급스러웠으면 좋겠어요.
하지만 이상형은 이상형일 뿐이었다. 우리의 현실은 20평대의 작은 한옥...
이 모든 조건을 다 충족하는 집을 만드는 것을 불가능했다.
창이 있는 주방을 원하면 창이 있는 욕실은 포기해야 했고
주방과 욕실의 비중을 높이면 다이닝룸의 비중이 작아졌다.
무엇을 선택하고 무엇을 포기할지, 앞으로 이 집에서 살아가면서 어떤 공간이 더 중요하고 덜 중요할지
어찌 보면 우리 삶의 우선순위를 정하는 작업이 필요했다.
이것저것 취미든 소유든 벌리기만 하던 맥시멀 리스트의 삶에서
정말 정말 좋아하는 것 딱 하나, 꼭 해야만 하는 것 딱 하나, 그렇게 삶의 최우선 순위가
무엇인지 추리고 추리는 미니멀리스트의 삶으로
대대적인 삶의 구조조정이 반강제적으로 시작되었다.
삶의 구조조정을 하면서 새삼스럽게 깨닫게 된 것들도 많았다. 나에게 꼭 필요한 공간이 무언인지를 생각하다 보니까 아 나에게 이런 행위가 정말 중요했구나. 있어도 좋고 없으면 아쉬운 것들은 사실 없어도 되는 것들이었구나. 좋아하는 것들이 2~3개로 간추려지니 그 좋아하는 일에 대해 더 애정이 생기고 더 집중도 있게 사는 삶이 가능해질 것 같았다.
취향이 명료해지니 삶의 방향은 더 명확해졌다.
그렇게 눈물 나는 구조조정에도 우리의 취향을 담기에 공간은 여전히 부족했고
아내와 나는 이런 공간의 한계를 어떻게 하면 극복할 수 있을까 고민 끝에
복층 구조의 다락을 만들어 침실을 다락으로 올리자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우리의 이 유레카 같은 아이디어를 듣고(우리 부부에게만 유레카였지만...)
지랩은 일단 다락을 만드는 게 가능할 것 같기는 한데 현재 전주인이 서까래가 보이는 부분을 판넬 천장으로 막아놓은 상태여서 그걸 철거하고 서까래의 층고를 확인해야 다락 설계가 가능할지에 대한 여부를 확실히 결정할 수 있다고 했다.
'서까래 층고가 너무 낮지만 않으면 충분히 가능할 겁니다. 그럴 일은 없을 것 같기는 한데... 혹시나... 층고가 너무 낮으면... 다락을 포기해야 할 수도... 근데 웬만하면 그런 일은 없을 겁니다^^'
지랩 대표님의 말에서 그 '혹시나'라는 단어가 유독 스산하게 느껴진 게 단순히 기분 탓만이 아니었다는 것을
나중에 서까래 층고 확인을 위해 천장을 철거했을 때 '유레카-!' 알 수 있었다...
마침내 우리 부부를 새로운 주인으로 만나게 된 그리다 만 ㄷ자의 프로방스한 한옥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