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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육개월 Aug 10. 2022

7. 옛 것과 새것을 이어주는 나비장처럼

아내의 취향이 곧 나의 취향

보강 작업이 필요한 나무 기둥 옆에

쇠 지지대를 받혀놓고

나무 기둥의 썩은 부분을 잘라낸다.

그리고 잘라낸 크기만큼 새 나무 기둥을 만들어

그 부분에 끼우고

옛 기둥과 새 기둥이 만나는 부분에 나비 모양의

홈을 파

나비장을 끼워 넣는다.

옛 기둥과 새 기둥, 두 기둥이 어긋나지 않도록

단단히 이어주는 작업이다.


현대의 한옥집 수선 작업은 결국 옛 것과 새로운 것의 이음 작업이라고 할 수 있다.

완전히 전통 한옥 구조, 형태를 그대로

살려 살기에는

여러 가지 불편함이 많기 때문에

요즘 건축에 쓰이는 편리한 요즘 기술들을 적절히 믹스해야한다.


예를 들어 무더운 여름철 시원함을 위한 에어컨,

추운 겨울 외풍을 막기 위한 시스템 창호,

입식 생활을 위한 소파,

전통 한옥에는 없는 수납공간 등이

그런 기술들이라고 할 수 있다.


요즘스러움이 늘어나면

한옥스러움은 줄어들 수밖에 없기에


적당히 편리하면서도

적당히 멋스러운

그 적당한 지점을 조율하는 것이 관건이었고

그것은 오롯이 우리 부부가 결정해야 할 몫이었다.


지랩에서는 아무래도 건축주의 불편함 없는 생활을 중요하게 고려하다 보니

모든 창을 시스템 창호로 설계했지만


목창호의 멋스러움을 포기할 수 없는 우리 부부는

편리함에서 한 발짝 물러나 약간의 외풍을 감수하는 불편함을 택하기로 했다.


겨울을 지내본 소감으로

외풍은 위력은 미미했고

목창호의 예쁨은 강력했으니

편리함과 불편함 사이에 나비장이 조화롭게

잘 끼워진 것 같다.


이음 작업이 필요한 부분은 또 있었다.

바로 아내의 취향과 나의 취향


아내와 나는 하루에도 몇 번씩

서로 경쟁하듯 핀터레스트를 뒤져 찾아낸 레퍼런스 사진들을 공유하며

각자의 취향을 어필했다.


나무는 이런 톤 어때?

너무 어둡지 않아? 난 좀 더 밝았으면 좋겠는데

나무 창호는 이런 구조 어떨까?

좀 불편할 거 같은데...

타일 이거 진짜 예쁘다

그런 건 금방 질리지


평소엔 모든 결정을 아내에게 떠넘기는

심각한 결정장애의 소유자인 나였지만

평생 살아갈 집이라고 생각하니 갑자기

인테리어 못해 죽은 귀신이 빙의라도 한 듯

내 취향이 아니면 다 마음에 안 드는

고집불통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이번만큼은 절대로 굽히지 않겠다는

결연한 마음을 다지고 있을 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잠깐, 평소 인테리어라고는 전혀 관심도 없던 내가 갑자기 뭘 안다고 이렇게 열을 낼까?

신혼집 인테리어며 월세집 인테리어며 다 도맡아서 하고 평소 인테리어 관련 인스타를

수십 계정 팔로우하며

최신 인테리어 트렌드를 누구보다

발 빠르게 접하고 있는

아내보다 내가 인테리어에 대해 더 잘 알 수 있을까?


역시 옛 선인들이 입을 모아

하사한 말은 다 이유가 있다.

아내 말을 잘 듣자.


괜히 여기서 내 취향 우겨서

인테리어 짬뽕 만들지 말자

아내 기분 짬뽕 나기 전에...


그래서 난 취향과 취향을 잇는 대신

아내의 취향에 나의 존중을 잇는 작업을 택했다.


아니 내 생명줄을 잇는 작업이었을지도...


옛 기둥과 새 기둥을 이어주는 나비장은 제법 귀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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