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나지 않을 것 같았던 장마도 결국 다 지나가듯
오늘부터 기와가 올라가는 날이다.
기와를 모르는 사람은 없겠지만 혹시 몰라 설명해주자면
흔히 한옥 지붕 위에 얹혀있는 용비늘 같은 도자기 조각들 본 적 있지 않은가?
그래, 바로 그거다.
나도 기와에 대한 상식은 딱 그 정도뿐이었는데
이번에 직접 기와를 구매해 올리는 과정을 지켜보니
기와에도 암수가 있다는 것을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물결 모양 같은 기와지붕에서 아래로 움푹 들어간 부분이 암키와,
위로 볼록 솟은 부분이 수키와라고 하는데
수키와는 암키와와 암키와의 틈 사이를 연결해주면서
하늘 쪽으로 불룩 솟아있는 형태로 비를 가장 먼저 맞아 암키와로 흐르게 하는 역할을 하고
암키와는 수키와보다 넓은 면적의 U자 형태로 빗물을 부드럽게 아래로 흘려보내 주는 역할을 한다고 했다.
가만 보니 이런
암키와와 수키와의 관계가 마치 우리 부부처럼 암수가 정답게 똑 닮아있었다.
사실 개인적으로 한옥집 공사를 하면서 가장 심각하게 스트레스를 받았던 부분은 돈이었다.
집을 구매할 때부터 주택담보대출이 예상했던 금액보다 훨씬 적게 나왔던 것부터 시작해서
공사하면서 추가로 생기는 변수 때문에
공사비는 처음 계획했던 금액에서 야식으로 늘어나는 내 뱃살처럼 야금야금 늘어나고 있었다.
한옥은 실제 시세에 비해 공시지가가 낮기 때문에
아파트와 비교해서 주담대가 적게 나온다.
혹시 한옥을 구입하려는 계획이 있다면 이 점 참고해서 예산을 짜길 바란다.
살면서 돈 때문에 이렇게 골머리가 아팠던 적은 처음이었기에
밥을 먹으면서도 친구를 만나면서도 술을 마시면서도 회사에서 일을 하면서도 머릿속에는 온통
돈 돈 돈 돈 생각뿐이었다.
어떻게 하면 자금을 더 마련할 수 있을까? 더 높은 연봉을 주는 회사로 이직을 해야 하나?
투잡을 뛰어야 하나? 대출을 추가로 받아야 하나?
아니면 정말 최후의 수단으로 3 금융권의 힘을 빌려야 하나?
돈 워리 비 해피 라는 말은 그때의 나에겐 귓등으로도 와닿지도 않았다.
무조건 돈 is 해피 였다.
내가 돈 때문에 걱정의 만리장성을 쌓고 있을 때마다
아내는 그냥 바람이나 쐬고 오자던가, 치킨'에 맥주 한 잔 하러 가자던가,
등산이나 하자던가 하면서
꿉꿉한 집 안에 창문을 활짝 열어젖히듯
나를 강제로 환기시켜 주었다.
"아직 일어나지도 않은 일에 너무 스트레스 받지 마, 그때가 되면 같이 해결할 방법을
찾아보면 되지~ 다 잘 될거야 여보"
마음 환기를 시켜주며 아내는 나에게 늘 이렇게 말해주었다.
사실 그땐 아내의 그 말이 그다지 와닿지 않았지만, 그래도 그렇게 말해주는 아내가
고마워서 마음속 재난경보가 심각 단계에서 주의 단계로 내려오곤 했다.
지금 와서 보니 아내가 옳았다.
그때 내가 머리 싸매고 고민하고 걱정한다고
바뀐 것은 아무것도 없었고
참 신기하게도 어찌어찌 자금이 마련되고
어찌어찌 공사비가 절감되어
어찌어찌 아무련 자금 문제없이 공사는 결국 잘 끝났으니
결국 아내의 말대로 잘 해결된 것이다.
기와 공사가 끝나기가 무섭게
장마가 시작됐다.
걱정이 많은 나는 혹시나 한옥집에 배수가 잘 안 되면 어쩌나
기와의 빈틈 사이로 물이 새면 어쩌나, 물받이는 막힘 없이 잘 역할을 하려나,
여지없이 컴컴한 동굴로 들어가 끙끙대고
아내는 "무슨 일 있으면 현장소장님이 연락 주셨겠지" 라며
얼른 내 마음을 열어 환기를 시켜준다.
앞으로도 무수히 많은 문제들이 닥칠 테지만
안되면 어떡하지 라는 좁은 방 안에
어떻게든 되겠지 라는 작은 창문이 있으니
어찌어찌 극복해나갈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