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웃집의 아이스크림 서포터즈
어렸을 적, 캘리포니아에 특파원으로 나간 기자가
그 지역의 폭염이 얼마나 심각한지 보여주기 위해
아지랑이가 모락모락 피어나는 아스팔트 위에 계란후라이를 만드는 뉴스를 본 적이 있다.
'보시다시피 1분도 되지 않아 계란이 익을 정도로 유래 없는 폭염입니다'
오늘 날씨가 딱 그런 날씨였다.
밖으로 나가서 딱 5분만 걸어 다녀도
성북동 맛집 참나무 닭나라 사장님이
불구덩이 속에서 기름기 쫙 빼주시는
장작 통닭구이의 통닭이 된 기분을 느낄 수 있었다.
순간, 이런 날씨에 집 공사를 하고 계실 현장 인부들이 생각났다.
이런 날씨에 공사를 시키는 건축주를 얼마나
원망하고 계실까…
아차 하는 마음에
차차차디 찬 아이스크림과 음료수를 부랴부랴 싸들고 공사 현장으로 간 내 눈에 보인 모습은
내 불안한 예감과는 정반대로 시원한 아이스크림을 하나씩 물고 평온하게 휴식을 취하고 계시는 인부들의 모습이었다.
이미 시원하게 잡수시고 계시는 아이스크림과 내 손에 들린 주인 없는 아이스크림을 정처 없이 바라보던 나에게 현장 인부들이 먼저 말을 건네 왔다.
“허허허 사장님 아이스크림 좀 드세요, 앞집 할머니가 너무 많이 사주셔서 우리가 하나씩 먹고도 이만큼 남았네요 허허허”
시끄럽고 먼지 날린다고 컴플레인을 걸어도 할 말이 없을 판국에
공사하는 앞집 인부들이 더울까 봐 시원한 얼음물에 아이스크림까지 사다 주신 앞집 할머니의 친절에
난 이 삭막한 지구에 더 이상 남아있지 않다고 생각했던
인류애라는 것을 뜨겁게 목격했다.
생각해보니 앞집 할머니뿐만이 아니었다.
공사 자재들을 길목에 쌓아놓고
불편함이 꽤 심했을 텐데도
언성 한 번 안 높이고 묵묵히 참아주시는 주변 한옥 거주민들, 주변에 수많은 빌라 세대들… 보통 이렇게 공사를 진행하게 되면 주변 민원 때문에 한두 번을 마찰이 일어나게 되는 것이 당연하다고 하는데
우린 공사하면서 한 번도 그런 민원을 받아본 적이 없었다.
한옥집을 구매해 공사를 하기로 결정한 건 우리였지만
실제 지어지는 과정에서는
무수히 많은 사람들의 도움이 있었다.
설계를 맡은 지랩부터, 전체적인 공사를 총괄하는 현장소장님,
좁은 골목을 수십 번 왔다 갔다 하며 직접 폐기물을 날라 준 철거팀,
뼈대를 단단하게 잡아준 목수팀, 가장 무더운 날씨에 작업한 기와팀,
배관팀, 깎기 팀, 미장팀, 도장팀…
다시 한번 세상은 혼자 사는 것이 아니라는 인생의 진리를 깨닫게 되는 순간이었다.
빨리 가려면 혼자 가고
멀리 가려면 함께 가라지만
태생이 느긋하고 결정의 버퍼링이 모뎀 수준인 나는 혼자서 빨리 가지도 못한다.
작든 크든 도움을 받으며 때론 도움을 주며
그렇게 함께 살아가야 한다.
한 때는 도움받는 것이 민폐라고 생각했던 적도 있다. 도움을 주면 줬지 도움을 받는 건 그 사람의 시간이나 자산을 허비하게 만드는 것이라 생각해서 뭔가 빚을 지는 기분이었다.
물론 아직도 마음 한 편에는 그런 꿉꿉한 생각이 곰팡이처럼 남아있기는 하지만
그래도 이제 도움을 주고받는 그 티키타카 속에서 서로 간의 관계가 더 돈독해지고 풍성해진다는 건 알게 되었다.
내가 도움이 될 수 없는 친구에게 초라해지듯
상대도 마찬가지니까,
서로가 서로에게 도움이 되면서 서로가 서로에게 꼭 필요한 사람이 되어간다는 걸
이제는 조금 안다.
세상엔 의외로 아무 대가 없이 도움을 주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이야말로
인류애라는 희미한 불씨가
꺼지지 않도록 숨결을 불어넣는
유일한 희망이라고 생각한다.
길고 긴 목공 작업이 끝난 우리 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