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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육개월 Jan 16. 2023

11. 우리가 혜화동을 선택한 이유

연쇄 먹부림 발생 지역 

오늘은 한옥집 공사가 아닌

조금 다른 주제에 대해 얘기해보려고 한다.


바로 혜화동이라는 동네와 사랑에 빠진 이유이다.


일단 혜화동이라는 이름부터 살랑살랑 봄바람 부는 듯 다정한 느낌이 있고

여기저기 숨어있는 소극장에서 진흙 속 진주 같은 연극들을 발굴해 내는 재미가 있고

햇살 좋은 날에는 한양 도성길을 걷거나 바람 좋은 날에는 창경궁을 걷거나

컨디션 좋은 날에는 북악산에 오르거나 하는 운치가 있지만


무엇보다도 먹는 것 좋아하고 술 좋아하는 우리 부부의

몸과 마음을 무럭무럭 살찌워줄 맛집이 너무나도 많았다


이미 아는 사람들은 잘 알겠지만 혜화동은 칼국수 맛집이 참으로 많다.

많아도 너~~~~ 무 많다.

칼리단길이 있다면 여기가 아닐까 싶을 정도로 무슨 칼국수 특화 동네라도 지정된 것일까

혜화칼국수부터, 명륜손칼국수, 우리밀국시, 국시집, 손국수, 손가네곰국수, 성북동집 등등 엎어지면 코 닿을 거리마다 칼국수 집이 있는데 하나하나 다 맛집이다.


전부 다 일일이 소개해주고 싶지만 요즘 다시 발병한 손목 터널증후군 때문에 우리 부부가 즐겨가는 몇 군데만

간략하게 소개하자면


일단 대학로 혜화칼국수가 있다. 응답하라 1988에도 성동일과 이일화 부부가 칼국수를 먹으러 가는 장면에서 등장한 집인데 이미 뭐 그만큼 워낙 유명하고 전통 있는 집이다. 여러 가지 메뉴가 있지만 이 집만의 히든 메뉴는 바로 생선튀김이다. 처음 먹었을 때는 정말 이런 생선튀김이 있나 싶을 정도로 깜짝 놀랄 맛이었다. 무슨 고기 튀김마냥 큼직 큼직하고 두툼한 사이즈에 씹었을 때 바삭바삭하고 야들야들한 식감은 막걸리를 시키지 않고는 못 배기는 맛이다. 그래서 우리 부부는 늘 생선튀김에 칼국수 한 그릇을 시켜 막걸리를 위장 속으로 때려 넣는 스타일이다.


다음은 성신여대 쪽에 있는 명륜손칼국수이다. 간이 딱 적당한 국수가 입맛에 착 감기며 문어 수육 반반 접시를 시키면 이 집 또한 막걸리 도둑이다.


최근에서는 손가네곰국수를 즐겨 가는데, 이 집을 왜 이제야 왔을까 싶을 정도로 기가 막히고 코가 막히지만

목은 안 막혀서 막걸리가 무한으로 들어가는 집이다. 두툼한 수육이 수북하게 쌓인 곰국수 한 그릇 시키고

거기에 수육 한 접시를 시키면 수육에 수육을 얹어먹는 기분이지만 다다익선이라 하지 않았는가, 두툼하고 야들한 수육을 한 움큼 씹고 있으면 행복은 두툼해지고 긴장은 야들해진다.


길어질까 봐 여기까지만 소개하지만 그냥 모든 국수집들이 다 맛있다. 기본 이상은 한다.

치안 좋기로 유명한 성북동, 혜화동에 이토록 막걸리 도둑이 많다니 참으로 기쁘지 않을 수가 없는 일이다.


이쯤 돼서 스페셜 식당을 하나 알려주고자 한다.

정말 아는 사람만 아는 비밀 맛집이니 귀를 기울여... 도 들리지 않으니

눈을 기울여 소곤소곤 읽어주길 바란다.


혜화동에서 성북동 쪽으로 조금만 걸어가 생협 좌측에 있는 골목 속으로 들어가면

간판부터 '나 맛집'이라는 냄새 풀풀 풍기는 '하단'이라는 식당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만두, 만두전골, 만둣국 등의 만두만두한 메뉴가 주로 적혀있는데

이 집의 하이라이트 메뉴는 바로 메밀 냉칼국수이다. 이름부터 생소하고 맛도 생소하지만

한 번 이 맛에 길들여지면 헤어 나올 수 없다.

마치 냉칼국수계의 평냉같다고나 할까?

이름은 하단이지만 목젖부터 식도 위장까지 사정없이 깔끔하게 씻어주는 그 오묘하고 절묘한 개운 칼칼한 맛은 우리 몸이 가진 미각 세포들을 상단, 중단, 하단 가리지 않고 사정없이 공략한다.


1차, 2차, 3차까지 달린 다음날 우르르 쾅쾅 심난한 속을 차분하게 달래주는데 으뜸인 해장 음식이면서

여름철 입맛 없을 때 시원 새콤하게 집 나간 식욕을 단번에 컴백홈 시켜주는 별미이다.

만두 맛도 슴슴하며 담백하면서 구성이 알차고 꽉 차서 메일 냉칼국수 2인분에 찐만두 한 접시 시키면

그것만큼의 행복이 또 있을까 싶다


먹는 얘기만 하다 보니 읽기도 지루하고 배만 심심해질 것 같아서

딱 한 집만 더 소개하고 오늘의 글을 마무리하고자 한다.

 

한성대입구역 6번 출구에서 나와 우체국이 있는 골목 쪽으로 쭈욱 걸어가다 보면

이름부터 명량한 '달려라메기' 집이 있다.

매운탕과 어탕, 어탕국수가 주력 메뉴인데 우린 아직 매운탕은 먹어보지 못했다.


어느 날, 여느 때와 같이 어젯밤 달린 숙취로 골골대면서 해장음식을 찾고 있을 때

달려라메기집에서 풍겨 나오는 추어탕같이 고소하고 녹직한 향기가 우리의 발걸음을 잡아당겼다.

달려라메기집에서 더 이상 달리지 못할 것 같은 우리는 지쳐 쓰러지듯 어탕국수 두 개를 시켰고

오래오래 뭉근하게 끓인 추어탕처럼 깊고도 진한 맛에 결국 소주를 주문하고 말았다.

그만큼 무서운 집이다.

'달려라메기'의 '달려라'가 그 '달려라'였다니 참으로 솔직한 집이 아닐 수 없다. 


지금까지 말한 식당들 말고도 수많은 맛집들이 있지만 그건 다음에 기회가 되면 또 소개하고자 한다.


참으로 길게 말했지만, 이래서 우리 부부는 혜화동이 참으로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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