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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육개월 Jan 17. 2023

12. 화 못 내는 건축주

깜깜한 남편과 꼼꼼한 아내

한옥집 공사를 하면서 모든 일이

순조롭게만 돌아갔냐라고 지난날들을 돌아본다면

물론 절대로 그렇지는 않다


앞서 언급한 적은 있지만 우리 부부는

광고회사에서 카피라이터라는 직업으로

따뜻한 쌀밥 한 공기 벌어먹고 살고 있다.


광고회사는 언제나 광고주의 의뢰 안에서

업무를 진행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안타깝게도 갑을 관계가 형성된다.

갑을관계가 느껴지지 않을 만큼 한여름 팬티 사이로 불어오는 선풍기 바람처럼 쿨하고 나이스한 광고주도

있지만 세상 일이 다 그렇듯 

부당한 요구를 하거나 광고회사를 돈 주면 부릴 수 있는 머슴 정도로 여기는 광고주도 있기 마련이다.


그런 우리에게 이번 한옥 공사는 어찌 보면

처음으로 갑, 광고주 역할을 하게 된 프로젝트였다

그래서 처음 공사를 진행하기로 결심한 순간부터

우리 부부는 그동안 겪어왔던 대감집 대감 같은 광고주처럼은 절대로 안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공사를 진행하면서 조금 마음에 들지 않거나 신경 쓰이는 부분들이 있지만 집공사가 다 그러려니하면서

이해해 보려고 노력했다.

공사하시는 분들이 피고 버린 담배꽁초들이 땅바닥에 여기저기 있는 것을 봤을 땐 그래도 사람이 살 집인데 담배꽁초 위에 시멘트를 부어 덮어버리는 건 좀 찝찝했다.

하지만 한여름에 땀 뻘뻘 흘려가며 일하시는 분들에게 담배꽁초 버리지 말라고 말하기도 쪼잔해 보여서 그냥 우리 부부가 하나하나 주워서 버렸다.

쪼잔한 사람도 되기 싫었고 담배꽁초 위에서 자고 싶지도 않았으니까


근데 사실 부당하고 과격하고 불같은 광고주처럼 할 수 있지도 않다.

타고나길 유약함 그 자체로 태어난 나는

살면서 누구에게 화 한번 제대로 내본 적 없다


정말 미치도록 견딜 수 없거나 나에게 치명적인 피해를 주지 않은 한 참고 또 참는다.

그리고 그 정도를 넘어서면 그냥 관계를 끊어버리거나 그 상황에서 도망가버린다.


식당에서 머리카락이 나오거나 주문한 메뉴와 다르게 나오는 실수 정도는 나에게 컴플레인조차 생각하지 못할 정도로 별 일 아니다.


이런 나 때문에 늘 답답하고 고생인 건 바로 아내이다. 연애할 때도 나의 이런 성격 때문에 아내의 몸에 사리가 생길 뻔한 경험이 종종 있었는데도 나와 결혼해 준 걸 보면 아내는 어느덧 사리가 쌓여 보살로 거듭난 것이 아닌가 싶다.


공사할 때도 그랬다. 조금 마감이 매끄럽지 못하게 되거나 생각했던 설계와 다르게 시공된 부분을 보면 난 어련히 알아서 해주겠지, 이유가 있겠지, 다 사정이 있었겠지 하면서 꾹꾹 눌러 참았고

아내는 그런 남편을 꾹꾹 쥐어박고 싶을 걸 참으며 옆에서 한 자 한 자 꾹꾹 눌러 문서를 작성해

정중하게 수정을 요구했다.


하지만 그렇게 아내가 꼼꼼하게 살펴봤음에도 이사 후에 곳곳에서 수정 포인트가 발견되었다.

건축 중에 수정 포인트를 발견하는 것과 사는 집에서 수정 포인트를 발견하는 것은 하늘과 땅 차이이다.

가장 많이 머무는 공간이기에 불편함을 겪는 시간 또한 더 많아질 수밖에 없다.


우리 부부는 전세자금을 빼서 집을 구입하고 공사 기간 동안 월세를 구해 살고 있었기 때문에

정해진 날짜에 꼭 한옥집으로 입주해야 하는 사정이 있어서 어쩔 수 없이 급하게 이사를 하게 되었지만

우리와 같이 한옥집 공사를 계획 중이거나 진행 중에 있다면 최대한 꼼꼼히 마감을 확인하고 더 수정할 부분이 없는지 살펴본 후에 입주하길 추천해 드린다.


입주 후에는 가구와 짐들이 있어서 수정할 부분이 발견되어도 작업하기에 어려움도 많고

작업했던 시공업자들도 다른 현장에 들어가 있기 때문에 작업 일정을 맞추기도 쉽지 않기 때문이다.


식당 음식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그 식당을 안 가면 그만이고

숙소가 별로면 숙소를 옮기면 되지만

집은 짧게는 몇 년 길게는 평생 머무는 공간이기에 불편함을 피할 수도 도망갈 수도 없다.


그 점에서 더 꼼꼼하게 살피지 못한 나의 깜깜함에 대해 반성하고 그런 내 몫까지 더 꼼꼼하게 살펴준

아내의 깐깐함에 감사한다.


아내의 꼼꼼함으로 완성된 우리의 첫 한옥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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