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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육개월 Aug 06. 2022

3. 막걸리 도인 선배와 효자라운지

따라마시다 보면 따라가게 되어있다

우리 부부가 서울에서 한옥 라이프를 꿈꾸게 된 강력한 동기 중에 하나는

바로 직장 선배의 한옥 수선 과정이었다.

타이거 jk를 닮은 얼굴로 항상 만날 때마다 '허허허~ 잘 지내니?' 하고 걸쭉한 인사를 건네는

도인 같은 분이었는데 걸쭉한 막걸리까지 즐겨마셔서

종종 퇴근 후 함께 걸쭉한 밤을 지새우곤 했다.

걸쭉한 밤 부작용으로 귀가 시간이 늦어지다 보니

그 당시에는 여자 친구였던 지금의 아내에게 등짝 스매시를 맞는 부작용까지

추가로 생기긴 했지만

결국 그 덕에 지금의 한옥 라이프를 가능하게 한 선배를 알게 되었으니

이제와서는 나의 빛나는 선견지명이라고 할 수 있겠다. 허허허


그런 선배가 어느 날 갑자기 막걸리를 마시다가 '여기 김치가 잘 익었네'라는 느낌의

무심하고 담백한 어투로 툭 '이번에 오래된 한옥을 샀어'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그 말을 듣고 김치 싸대기로 얻어맞은 것 같은 충격과 놀라움에 휩싸였다.

그때까지는 뭔가 한옥에 산다는 건 시골에 내려가거나 서울 외곽으로 벗어나야만 가능한 것인 줄만 알았는데 이렇게 가까이에 있는 사람이 서울 중심부 그것도 서촌에 한옥을 사서

그것을 리모델링한다는 계획을 듣고 서울에서도 한옥 라이프가 가능한 것이구나 하고

나 혼자 새삼스럽게 깨닫게 된 것이었다.


우리 부부의 한옥집을 설계해준 건축사무소 지랩을 알게 된 것도 그때였다.

선배는 평소 좋아하던 건축사무소에 한옥 설계를 부탁하고 싶었는데

일반 가정집은 건축 설계를 해주지 않는 곳이어서

한 땀 한 땀 정성스럽게 피피티를 만들어서 메일을 보냈더니

당장은 진행하고 있는 일들이 많아서 힘들고 몇 개월 뒤에 가능할 수도 있다고 답변이 왔고

실제로 몇 개월 뒤에 지랩 역사상 처음으로 가정집 설계를 시작하게 되었다.


나중에 알았지만 아내가 좋아하는 스테이들을 지랩이 설계했고 인천에서 서핑 브랜드를 운영하고 있는 친구도 지랩과 같이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었다.

세상은 참 좁고 만날 사람들은 어떻게든 다 만나게 된다는 말이다.


하지만 선배는 곧 다른 회사로 이직을 해서 카톡으로만 긴 한옥 공사가 잘 끝났다는 소식, 마침내 이사를 들어갔다는 소식만 뜨문뜨문 전해 듣고 한 번 찾아가 볼 기회가 없었는데 이렇게 마침 한옥 라이프를 시작하려고 한다는 좋은 구실이 생겨서 선배에게 조언을 구할 겸 오랜만에 걸쭉하게 막걸리도 마실 겸 연락을 해 정식으로 한옥집에 초대받게 되었다.


사실 그때까지만 해도 한옥집을 사는 것에 대해 여전히 반신반의 뜨뜻미지근했었는데

선배 집에 들어가는 순간 한 마디로 그냥... 반해버렸다.

고즈넉한 분위기, 고개를 들면 보이는 우직한 서까래, 손으로 만져지는 나무 바닥의 따뜻한 감촉, 피톤치드를 머금은 것 같은 공기, 오랜 세월의 온기와 애정이 깃들은 듯한 집안의 시선, 마치 집에 영혼이 있는 것 같은 포근함... 물론 선배 부부의 탁월한 감각으로 꾸며진 인테리어도 한 몫했지만 사진으로만 보던 것과 실제로 그 공간에서 머물러본 것과는 정말 차원이 달랐다.

광고쟁이 부부답게 게으를 라, 운치 운, 땅 지 를 써서 집에 효자라운지라는 이름을 붙여줬는데 그 이름답게

여유와 낭만이 시선이 닿는 곳마다 가득했다.


정말 이런 집에서 살고 싶다 라는 생각만 속으로 수십 번 했던 것 같다.

이런 집에서 매일 잠들고 눈뜨는 기분은 어떨까 상상하면 할수록

뜨뜻미지근 미온수 같던 내 마음의 끓는점이 점점 올라가

마침내 부글부글 부푼 기대감으로 끓어오르기 시작했다.


계란 프라이도 부칠 수 있을 것만 같은 팔팔 끓는 이 마음으로

힘껏 밀어붙여보자는 결심을 굳힌 순간이었다.


그래, 한옥 사자. 한옥에서 살자.


우리의 한옥 라이프 플랜에 풀악셀을 밟아준 막걸리 도인 선배 부부의 한옥집 효자라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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