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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육개월 Aug 04. 2022

1. 여보, 지금 한옥을 사야할 것 같아

서울에 내집을? 그것도 한옥을?

“여보, 지금 한옥을 사야 할 거 같아”


그것은 마치 안동할매청국장집에서

갑자기 이태리 가정식이 먹고 싶다는 말처럼

뜬금없는 말이었다.

적어도 나한테는 그랬다.


당황과 황당의 차이가

똥을 싸려고 힘을 줬는데 피식~~ 방귀밖에 안 나오면 황당이고

방귀를 뀌려고 힘을 줬는데 으라차차! 똥이 나오는 게 당황이랬나?


그렇다면 아내의 말은 나에게 당황에 가까웠다.

실제로 그 말을 듣고 똥이 찔끔 나올 만큼 겁이 났으니 말이다.


내가? 아니 우리가 집을 산다고?

그것도 한옥을? 그것도 서울에?


물론 개인적으로 한옥집을 싫어하는 건 아니었다.

아니, 오히려 로망에 가까웠다.


아내와 나는 연애 때부터 늘

한옥집을 꿈꿨었다.

누우면 고즈넉한 서까래가 보이고

마당에는 따뜻한 황토빛 컬러의 진돗개가 한가로이 하품을 하고

비가 오면 툇마루에 앉아

처마에 떨어지는 빗소리를 안주 삼아 막걸리 한 잔

낙엽 떨어지는 가을에는

바람에 흔들리는 풍경소리를 안주 삼아 막걸리 또 한 잔

사시사철 불철주야 막걸리가 목구멍으로 그냥 막 들어가는

무지막지하게 행복한 한옥 생활은

생각만 해도 로또를 산 금요일 저녁의 헛된 희망만큼

둥실둥실 가슴이 부풀었다.


그래서 늘 언젠가는 한옥집에 살아야지 하는

생각이 있었지만 그 언젠가가 전셋집을 2년 더 연장하고

고작 한 달밖에 지나지 않은 지금은 아니었다.


아내의 갑작스러운 제안에 나는 처음에 꽤 회의적인

반응이었다.

“지금? 전세계약 연장한 지 한 달밖에 안 지났는데?

일 년은 더 있다가 알아보는 게 좋지 않을까?”

하지만 아내는 이미 마음의 결단을 내린 듯했다.

늘 우물쭈물 미루기만 하는 인생을 살아왔던

나와는 달리 추진력이 나로호 뺨치게 출중한 아내는

그다음 날부터 성북동부터 서촌, 혜화동까지

근방의 한옥집 매물을 발에 땀나도록 보러 다니기 시작했다.


사실 아내의 이 급작스러운 결단엔 지난주 주말에

북한산에 함께 다녀온 친구 식이의 영향이 컸다.


단풍 구경도 할 겸 막걸리도 한잔 할 겸

가볍게 만난 북한산 산행길에서

가볍게 전한 식이의 아파트 매매 소식에

우리 부부는 가볍지 않은 충격을 받았다.


물론 당연히 축하하는 마음도 있었고

내심 부러운 마음도 있었지만

지금껏 집을 산다는 것은 주커버그가 수십조를 기부했다는 뉴스처럼

딴 나라 얘기라고 생각했었는데

가까운 사람, 비슷하게 사회생활을 하고 있는 친구가 집을 샀다고 하니

뭔가 한대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하지만 맷집이 좋은 난 그날 바로 회복했고

아내는 그 충격에 욱신욱신하며 그날부터 한옥집 매매 계획을

추진하기 시작했다.

아내의 한옥집 매매 결심에 결정적 동기부여가 된 그날의 산행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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